블로그 9월 결산

내일이면 사라질 달력. 9월에도 제법 많이 썼다. 추석연휴가 중간에 들어 있어서 많이 빌 줄 알았는데 예약글 미리 써둬서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채웠다. 미리 예약글을 몇 개 올려 두면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ㅋ 지금 예약으로 걸어둔 글들이 다 올라가면 또 한동안 뜸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블로그 9월 결산이다. 열심히 썼을때 결산이란 글이라도 올려야 한다..^^

블로그 9월 결산

가끔씩 이렇게 인터넷 구석진 공간에 글을 올려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 검색에 걸린 글 하나 보고 찾아와서 2분 남짓 머물다 가는 그 찰나의 순간. 나역시 찰나의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두고자 이렇게 글로 조각조각 남기지만 그게 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는 블로그에도 잘 안들어오게 된다. 장자의 빈 배처럼 주인조차 없는 빈 블로그가 된다.

생각의 거미줄

글의 길이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고, 제목과 키워드가 일치해야 검색에서도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순위가 올라가야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더 많이 방문해야 구글 광고 수익도 올라가고 블라블라블라..다들 열심이다.

내 블로그에는 댓글을 승인받도록 해서 스팸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아예 차단했는데도 스팸광고가 꾸준히 등록되는 걸 보면 이런 광고를 하는 사람들, 혹은 봇들도 참 부지런하다. 그 부지런함의 반에 반만이라도 블로그 운영에 투입하면 좋을텐데..그럴 에너지가 없다.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나면 내버려 두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래도 방치했을 때랑 비교해서 뭔가를 쓰면 조회수는 올라간다.

블로그 조회수 방문자수

10월 첫 날은 임시공휴일이 됐다. 최근 집권당 모 국회의원은 50~60대 군 경계병 입법을 검토한다는 머릿기사를 봤다. 우크라이나 전쟁때 5~60대가 참전하는 영상을 보고 나라면 어떨까 잠깐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참..그런 수준의 경계병이라면 이제 로봇으로 해도 되지 않나?!

추가) 9월 목표걸음수를 달성한 날은 14일이다. 블로그 달력 채우기보다 10월에는 이걸 20일로 끌어 올려보자!

단순함에 필요한 에너지

좋은 투자의 조건을 단순함이라고 했는데, 경험상 단순함으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소수의 천재들은 보는 즉시 단 한번에 단순함으로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둔재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많은 길을 굽이굽이 돌고 나서 보면 그제서야 단순함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으며 이를 되살리기 위한 주요 이니셔티브 중 하나는 애플의 제품 라인을 단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잡스는 회사의 제품 로드맵에 대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잡스는 분명히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만해… 미친 짓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가서 2×2 행렬을 그려서 Apple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했는데, 그것은 4가지 제품에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매트릭스

처음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었을 때, 머릿속 디자인은 정말 단순했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버핏과 멍거의 머릿속을 기본 컨셉(이게 제일 어려운 일)으로 조건 한 두 개만 넣으면 내재가치와 가격이 나오는 구조였다. 이미 시나리오별 현금흐름할인법(DCF)를 하는 나만의 복잡한 분석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굳이 각잡고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 가볍게 10초 만에 계산할 수 있으면서 DCF와 비교해서 오차가 적은 계산기면 충분했다. 싼지 비싼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계산기.

그럼 지금 내재가치 계산기는 어떤 상태일까. 열역학 제2법칙 처럼 엔트로피(무질서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싼가 비싼가에 좋은가 나쁜가 까지 보고 싶어지면서 단순한 디자인에서 보고 싶은 숫자들을 하나 둘 추가하다보니 결국은 기존 복잡한 분석틀에 거의 가까운 모델이 되어 버렸다. 이럴거면 굳이 10초 계산기를 만들 이유가…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중요도가 낮은 정보들을 제거해 나갔다. 재밌는 건, 추가할 때보다 줄여 나갈 때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됐다.

이전에 주식 투자는 어렵다라는 글에서 장기 투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자를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불행히도, 장기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고 순식간에 매수매도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지금, 장기적으로 사고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투자는 지능의 제일 높은 수준인 단순함과 인내를 통한 장기투자가 결합되어야 한다. 둘 모두 일반인이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그레이엄과 멍거와 버핏은 단순함에 이른 사람들이자 지능보다 기질의 중요성을 깨친 사람들이다.

“저는 항상 하나의 인사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사업을 소유하는 것에 찬성하는 논거는 한 줄짜리 9포인트 글꼴로 몇 페이지에 걸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투자의 결과는 명함 뒷면에 여백을 두고 모두 적을 수 있습니다.”
– 피터 키프, Rockbridge capital management

블로그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함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이것 저것 기능이나 플러그인이 추가되기 시작하면 곧 단순함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제외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블로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투자나 블로그나 비슷한 점이 많다.

블로그 지난 달 결산

문득 블로그 지난 달 결산을 해봤다. 지나보니 이번 8월엔 8일을 뺀 23일 글을 올렸다. 1년 전 이맘때쯤 마음먹고 연속으로 30일쯤 글을 쓴 이후 가장 많은 글을 올린 달이 됐다. 주제는 아무래도 신변잡기보단 투자에 대한 생각들을 좀 집중적으로 썼던 것 같은데 반응은 별로 시원찮다. 인생에도 주기가 있듯 블로그도 열심히 쓰다가 또 소홀해 졌다가 하면서 반복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1년 전에도 열심히 쓰다가 손을 놨고 이번에도 또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8월 글 쓴 날

블로그 사이드바에 이 달력을 배치한 이유는 파란색으로 채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파란 칸 없이 흰색 칸으로만 채워진 달력…유통기한이 지나 주인이 들어오지 않는 블로그는 썰렁하다. 사람이 살지않는 빈 집처럼 잡초와 거미줄이 제집인양 자리잡는다. 이 블로그도 한 동안 거미줄이 쳐진 그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인터넷 한 귀퉁이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처럼 오랜 시간 지내왔다. 이제 겨우 하루 20명 정도 드나드는 곳이 되었지만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다. 고즈넉하니 좋기도 하고 적적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역시 오락가락이다. 시끌벅적한 SNS보다는 훨씬 낫다..ㅋ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첫 번째 독자는 나다. 내가 적어 놓은 내 글을 읽기 위해 내 블로그에 들어 오게 된다. 과거에 올려 놓은 글을 찬찬히 다시 읽다 보면 내가 이런 글도 남겼었나 싶은 글들도 있다. 벌써 치매가 올 나이도 아닌데 신기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그 순간의 생생한 느낌이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그것보다 더 좋은 블로그 존재 이유는 없다. 특히 어느 순간 특정 기업의 사진을 찍어 놓는 용도로는 딱이다. 투자자가 블로그를 하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워드프레스는 비공개 글로 나만 볼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목적없이는 힘들 것 같은데 꼭 돈이 목적일 필요는 없을테니 뭔가 다른 목적을 찾아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목적이 이끄는 삶. 그러고보니 돈이 목적이어야 투자에서 돈을 많이 벌텐데 난 그렇지도 않고, 블로그도 대부분 돈을 목적으로 열심히 운영하는데 난 또 그렇지도 않다. 버핏의 투자 제 1원칙은 “돈을 최대한 많이 벌어라”가 아니라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다. 블로그 운영 원칙 역시 “어떤 방법으로든 최대한 유입 고객을 늘려라”가 아니라 “한번 블로그에 들어온 고객을 절대로 잃지 마라”가 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매력적인 글, 독자가 찾아와서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내겐 여전히 모자란 재능이다.

추가) 매사 꼭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뭔가를 일단 꾸준히 하다 보면 처음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목적을 찾는 경우도 있다. 삶이 이끄는 목적쯤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