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났는가. 그것을 실재론(또는 합리론)이라고 하든 경험론이라고 하든(합리론은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어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경험론은 로크로부터 버클리 데이비드흄으로 이어진다) 상관없이 세상은 소리가 났다는 사람과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사람으로 갈린다. 그리고 이 철학적 화두는 후에 양자역학으로도 이어지고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이어진다.

데모크리토스는 빛은 입자이라고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빛은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과학자 뉴턴은 빛은 수많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자설을 주장했고 네덜란드의 과학자 호이겐스는 빛이 공기 중의 어떤 특별한 매질을 통해 진행하는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빛이 파동일까, 입자일까 하는 문제는 이후 무려 150년 동안이나 논란이 되다가 19세기에 토머스 영이 그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1801년)을 통해 빛의 파동설을 지지해서 일단락되는 듯하다가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이 ‘빛은 입자다’라는 전제를 통해 광전효과를 설명한 논문을 발표(1905)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이후 사람들은 빛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 모두를 가졌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만 일어난다고 하여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만들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연 또는 확률, 곧 예측 불가능성이 이 우주를 지배하게 된다. 즉, 양자 이론은 비록 우리가 우주의 현재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 예측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그렇다면 저기 있는 달이 내가 보지 않는다면 없다는 것인가?” 라고 반박하며 그 유명한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1가 나왔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포스터

“18세기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주교였다)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고 말했는데, 뒤집으면 ‘지각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그는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나는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닐스 보어는 “어떠한 사물도 관측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특성이란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포스터2

“아인슈타인은 가까운 젊은 후배 물리학자 에이브러햄 파이스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정말 자기가 달을 쳐다봤기 때문에 달이 거기 존재한다고 믿는가?” 파이스의 답. “나는 아인슈타인이 왜 그토록 과거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현대 물리학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식 인과율을 끝까지 고집했다.” 케인스가 말했듯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옛 것에서 빠져 나오기가 훨씬 더 어렵다.

관찰자가 없는 상태에서 빛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응시하는 순간 입자로 바뀐다.2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가도 누군가 소리를 듣는(찾는) 순간 소리가 났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나 하고 못들은 혹은 없는 소리를 들으려 할 수도 있다. 그 목적이 돈(집 값)이 됐든 귀찮음이 됐든 상관없이 누군가는 소리를 아예 없었던 양 못들은 척 할거고 누군가는 또 들은 척 할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다.

소리를 듣는 사람이아니라 소리를 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내가 소리를 냈는 데 아무도 못들은 척 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무심코 돌을 던지는 사람의 입장.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이 하나의 의견이 되고 나중에는 상식이 된다. 사회가 거기에 이르면 희망을 찾기 어렵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나 벌거벗은 임금님은 역사책이나 동화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 재밌고 즐겁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였다.

  1. 닐스 보어는 “신에게 참견하지 말라(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고 했다. ↩︎
  2. 양자역학계에서 표준으로 채택된 이론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현실에 대한 양자 역학의 설명이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 회의감을 갖고 아인슈타인과의 토론 끝에 현재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불리는 한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이 실험은 원래 양자 역학의 불완전한 면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양자 역학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고 실험이 되어버렸다)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문을 여는 순간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운데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의 상태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었으나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이것을 간단히 “파동 함수가 붕괴된다”고 표현한다. 파동 함수가 수축한다, 파동의 붕괴 또는 수축으로 표현해도 ‘관측 시 하나의 값으로 확정된다’는 의미는 같다. 요즘은 코펜하겐 해석을 뛰어 넘어 멀티유니버스로 불리기도 하는 ‘다세계 해석’이 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있는 세계가 모두 존재하며 관측하는 순간 어떤 한쪽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해석이다. ↩︎

넷플릭스 NFLX 10초 간단 내재가치 계산

1년 전 넷플릭스 NFLX 10초 내재가치 계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스에는 넷플릭스 계정 공유 금지(일부 국가)로 인해 가입자가 6백만명 가까이 늘었고 매출 3%, 순이익도 6% 증가했다.

넷플릭스 2023년 내재가치

1년전 수행했던 내재가치 모델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시 넷플릭스 매출 성장률이 과거와 달리 감소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매출 성장률을 아주 보수적으로 추정했었다. 최근 5년 넷플릭스 매출 성장률을 보면 한 자릿수 성장으로 수렴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두 자릿수 성장은 힘들다고 봤었다.

넷플릭스 매출 성장률

하지만 내가 간과한 점은 매출 성장률 둔화와 달리 넷플릭스의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9년 영업이익률 12.9%에서 2023년 20.6%로 2019년 순이익률 9.3%에서 2023년 16%로 올랐다. 회사가 비용통제를 잘 하면서 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특히 넷플릭스는 장부상 이익뿐만 아니라 FCF도 급증하고 있었는데 이는 CAPEX도 잘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 주가

(야후파이낸스)

이익의 증가로 주가역시 올해에만 35% 가까이 상승하고 있고 PER(TTM) 39.53 수준, Forward PER 34.6 이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 향후 5년 성장률을 20~25%로 예상하고 있다.

넷플릭스 목표주가

(야후파이낸스)

얼마전 발표된 올 2분기 실적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트했다. 넷플릭스 가입자도 급증했다는 뉴스와 함께 전문가들의 목표주가도 상향조정되고 있다. StreetAccount에 따르면 예상 2억 7,440만 명 대비 전 세계 유료 회원 수는 2억 7,765만 명이고, 광고 지원 멤버십이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고 한다.

US 스크린 타임

(출처 : 넷플릭스)

현재 성장하고 있는 스트리밍 부문에 투자하고자 하는 투자자라면 넷플릭스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좋은 회사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좋거나 적당한 가격인 걸까? 넷플릭스의 적정 내재가치는 얼마일까?

전문가들의 성장 예상치를 가지고 넷플릭스 적정 내재가치를 10초만에 다시 계산해 봤다. 과거처럼 매출이 아닌 이익 성장치로 계산한 결과다. 성장률과 타임라인을 얼마나 둘 지에 따라 결과는 당연히 달라진다. 넷플릭스와 같은 성장주의 경우 실적이 성장 예상치를 하회하거나 성장률이 감소되는 경우 주가는 예상치 하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감소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장주 투자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추정은 더욱 보수적으로 해야 하고 언제든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넷플릭스 내재가치

초보자가 처음 수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 수영을 하는 초보자가 아무런 안전장구도 없이 수심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수영을 못하는 초보자가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로 바로 나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눈에 성장주 투자는 수심이 깊고 높은 파도가 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