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미국 시장이 비싼 이유

토드 콤스가 말한 “할인율 10%에서 PER 26이 되려면 성장률이 15%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한창 밸류에이션 공부할 때 만들었던 그림인데 이 정도만 공유해도 전체 그림의 내용을 대충은 알아볼 듯. 빨간선 4개, 빨간 점선 2개, 그리고 파란선 2개.

밸류에이션 그림

현재 미국 S&P500 PER 30 수준이고 포워드PER 22 수준이다. PER 22는 토드 콤스의 계산대로라면 성장률이 대략 12%가 되어야 한다. S&P500의 최근 5년 성장률이 대략 8.6% 내외 수준이고 10년으로 길게 놓고 보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미국시장은 AI 같은 테마로 현재 고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 열풍이 불 때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현재 밸류가 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S&P500 PER

그레이엄 시대에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하는 기업들을 성장주로 봤었다. 주말에 S&P500 가운데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세어 봤더니 거의 50%에 육박했다. 5년 성장 평균이 8.6%니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엄이 성장주라고 부를 기업이 거의 반 이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가치 투자 3.0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필립 피셔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이유다.

“저는 작은 수익을 많이 벌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아주 큰 수익을 원합니다.”
– 필립 피셔

필립 피셔의 15가지 질문 가운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도 있다.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이는 내재가치 계산기에서 “당신의 시간지평은 몇 년인가?” 와 같은 말이다. 내 어림 계산에 의하면 첫 문단에서 토드 콤스의 시간지평은 최소 7~10년이다. 버핏의 시간지평도 거의 비슷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오랫동안 소유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
– 워런 버핏

“기다림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연된 보상 유전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 찰리 멍거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좋은 기업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복리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도록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목에는 약간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인내에는 어마어마한 기질이 필요하다.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기질은 귀하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없는 기질을 활용하기 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능을 활용해서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가르쳤다.

“어떤 회사를 사야 할지 분석하는 데 천재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인내심과 용기가 없다면 평범한 투자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좋은 투자자와 나쁜 투자자를 가르는 것은 항상 두뇌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규율입니다…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장기 투자자이며, 주식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어떤 사람들에게 장기 투자자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보일 것입니다. 요즘은 장기 투자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주식이 폭락할 때 진짜 시험이 옵니다.”
– 피터 린치

내재가치 계산기 추가

분석가의 역할은 주식을 채권처럼 바꾸는 것

블로그에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애초에 인터넷에 공개하려고 했다가 정보들이 너무 많아져서(유료인 구루포커스와 비슷할 정도) 포기했던 내재가치 계산기를 정말 핵심적인 기능만으로 방금 공개했다. 블로그 메뉴의 Calculator를 누르면 바로갈 수 있다. 90%의 투기자들에겐 아무 필요도 없는 기능이고 5~10%의 투자자들에겐 가끔씩 싸다 비싸다를 참고할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끔씩 올리는 10초 내재가치 계산기의 로직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기업분석 전에 사용해 본다면 나처럼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버전은 구루포커스와 거의 유사하다. 내가 먼저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고 나중에 구루포커스 DCF 계산기를 알게 됐는데 내가 만든 것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었다. 내 버전도 국내외 기업명만 입력하면 입력 변수가 자동으로 들어가도록 세팅되어 있다. 거기서 변수를 사용자가 직접 변경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구루포커스도 같은 방식..^^ 오늘 블로그에 공개한 계산기는 사용자가 참고자료 없이 직접 변수들을 알아서 입력해야 하는 기본 버전으로 UI도 거의 손대지 않은 거친 버전이라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충분히 참고할 수준은 되니 한번씩 사용해 보시길~

계산하는 뇌

“내재가치란 여러분이 미래에 대해 모두 알고 있고, 지금부터 심판의 날까지 기업이 여러분에게 줄 현금을 모두 예측할 수 있다면 적절한 할인율에 반대되는 숫자를 말합니다. 이 숫자가 바로 기업의 내재가치, 즉 지금 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하는 유일한 이유는 나중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죠? 그것이 바로 투자의 목적입니다.

이제 채권을 보면 미국 국채를 보면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매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채권에 바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자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나와 있습니다. 원금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채권의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이자율이 변하면 내일 바뀔 수 있지만 현금 흐름은 채권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 현금 흐름은 주권에 인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비즈니스에 대한 지분을 나타내는 주권을 채권으로 바꾸어, ‘앞으로 이 주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워런 버핏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좋아하는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이 나온 걸 얼마전에 알았다.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라는 제목으로 암호화폐 세계를 다룬 논픽션으로 한때 뉴스를 뒤덮었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BF)에 관한 이야기다. 연휴동안 책을 다 읽고 FTX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몇 개의 AI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DeepSeek의 결과가 제일 마음에 들 정도로 정리가 깔끔했다.

고잉인피니트 책표지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암호화폐 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창립자 샘이 금융시장의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m)라는 사실도, 알고 보니 ADHD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예, 아니오로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바로 이 점때문에 트레이딩도 게임처럼 초연할 수 있어 초단타 매매회사인 제인스트리트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엔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다가 파멸을 맞았다.

역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 알라메다 리서치를 먼저 설립해서 암호화폐 트레이딩을 했다가 후에 암호화페 거래소 FTX를 만들었다. 거래소로 들어온 고객들의 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옮겨 전용하다가 손실을 크게 봐서 뱅크런이 왔을 때 줄 돈이 없어 파산한줄 알았는데 나중에 정산해 보니 고객들에게 돌려주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ㅋ 문제는 단기로 들어 온 돈을 다른 암호화폐나 비상장기업 투자(트위터나 AI업체) 같은 중장기로 투자해서 만기일 미스매치가 난 게 컸다. 당시 암호화폐 가격의 급락에 따른 인출요구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지만 몇 가지 안좋은 일이 연속으로 겹치면서 시장에 미스매치가 드러나면서 먹잇감이 됐다.

마이클 루이스는 21년 말 샘과 주식교환을 검토하는 지인의 요청(샘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 달라는)으로 샘을 만나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고 이 책을 썼다. 공교롭게도 FTX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 본 목격자가 됐다. 21년 FTX의 매출은 10억 달러(20년 1억 달러)였는데 마이클 루이스가 처음 만나서 어느 정도의 돈을 제안하면 FTX를 매각하고 돈 버는 것 이외의 일을 할 것이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한 뒤 1,500억 달러라고 답한 뒤, “무한 달러”라고 생각한다고 번복했다. 아마도 이 말때문에 책 제목을 고잉 인피니트로 한 것 같다.

“무한은 그 어떤 경험, 관찰, 지식에 호소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유가 그 대상과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사유 과정이 대상의 실제 진행 과정과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현실에서 사유를 제거할 수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샘은 효율적 이타주의자였기 때문에 무한 달러가 필요한 이유는 지구상의 생명체인 인류가 맞닥뜨릴 수 있는 주된 존재적 위협을 해소할 계획(그것도 40세 이전에)을 세웠기 때문이다. 위협에는 핵전쟁,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전염병,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AI)도 포함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격들(트럼프도 그런 사람으로 판단했고 후에 얼마를 주면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인가 비밀 접촉을 한 것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한다..ㅋ) 산책이 끝날 무렵 마이클 루이스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샘과 주식을 교환해도 된다고 확답한다…여전히 샘이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로.

“언젠가 샘은 한국의 일부 종목이 오르면 정확히 12시간 뒤에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일본의 특정 종목이 덩달아 오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데이터를 찾아보자 과거에도 몇 달 동안 관련 종목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한국 주식이 오를 때 곧바로 일본 주식을 매수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인 스트리트 시스템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주식 가격이 오르고 12시간 뒤에 일본 주식이 상승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샘은 더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ETF가격을 한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마다 이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는 한국과 일본에서 대량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일과를 마치기 전에 한국 주식을 매수한 다음 일본 주식은 도쿄에 주재하는 동료가 일과 중에 주문하도록 맡겼다. 이제 제인 스트리트의 트레이더는 한국 ETF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 독일인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어떤한 비용을 야기했는지 깨닫기 전까지 신나게 일본 ETF를 매수하면 되는 것이다. 샘은 많은 거래의 성공이 다른 트레이더나 매매 알고리즘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다.”

샘은 암호화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다.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는데 이는 제인 스트리트에서 했던 일이다. 다만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7일 내내 돌아가므로 사람이 직접 하기보단 봇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는데 고등학교 수학캠프에서 만났고 같은 MIT 출신 중국계 게리 왕을 영입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게리가 암호화폐 거래소 선물시스템을 혼자 몇 일 만에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눈을 의심했다..ㅋㅋ

“한국에서 비트코인이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될 때 리플 코인은 25퍼센트 이상 더 비쌌다. 리플은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비정상성을 이용할 길을 터줬다. 한국에서 XRP를 매도해 확보한 원화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비트코인을 미국으로 보내 매도해서 달러를 마련한 다음 그 달러로 XRP를 매수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은 한국에서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되었지만 리플 토큰에서 얻은 25퍼센트의 수익으로 충분히 매수할 수 있었다. 거래에서 기대되는 수익은 당초 2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줄어들었지만 제인 스트리트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매매에 5~30초가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한때 샘은 차세대 워런 버핏으로 추앙받았던 사람이었다. 금융계에서 떠오른 신성이자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었지만 책을 보면 조직 경영은 한마디로 엉망 진창이었다. 들어온 돈 233억 3500만 달러, 나간 돈 144억 4300만 달러, 예탁금 30억 달러를 빼면 60억 달러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해킹(10억 달러)도 포함됐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다른 예도 들었습니까?

네. 세계를 위한 선에 대해 고민하는 맥락에서 동전 던지기를 언급했습니다. 뒷면이 나오면 세계가 멸망하지만 앞면이 나오면 선이 두 배로 증가한다면 동전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암호화폐 가격의 급등으로 예치금을 맡긴 사람들은 자신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라는 기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판사는 피고가 지구상의 생명체과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더라도 재앙을 모면할 확률이 미세하게 높을 뿐인 동전 던지기를 기꺼이 할 사람이자 이런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의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향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에 했던 그런 일들을 몇 번이고 반복할 사람으로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물론 모범수로 잘 생활하면 반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