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제표 분석 속도

내 기업 재무제표 분석 속도는 어느 정도 일까? 딱 1년 전, 싸고 좋은 기업들이 제법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한 주동안 매일 하나의 기업을 골라 그야말로 간단하게 훑어봤던 적이 있었다. 기업 재무제표 분석이라는 게 간단하게만 봐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일주일이 7일이니 7개 기업을 주마간산으로 재무제표를 살펴 보고, 나름 미래를 예측해 보고, 재무건전성을 평가하고, CEO의 자본배분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략적으로나마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해 보고 현재 가격과 비교하는 작업도 했었다.

미리 걸러 선정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일주일 간단 분석한 7개 중 2개 정도는 꽤나 매력적인 숫자들이 나와서 향후 제대로 각잡고 사업보고서 몇 년치를 보면서 더 깊은 분석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생각만 하고 보다 깊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책을 쥐면 먼저 읽을 시간이 계산되듯 기업을 보면 얼마의 시간을 투입해야 할지가 계산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다.

워런 버핏 주주서한

(워런 버핏 주주서한 중 : 버핏은 재무상태표의 자산을 항목별로 할인했다)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은 한 달에 200개까지도 살펴본다지만 나같이 직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는 매일 하루에 하나씩만 시간을 쪼개 간단히 살펴봐도 1년에 대략 250~350개 정도밖에 볼 수 없다. 1년에 300개를 본다면 8년 정도면 2,400개를 볼 수 있다. 기업은 생물처럼 다이나믹해서 8년 전에 살펴 본 기업은 8년 뒤엔 완전히 다른 기업일 수도 있다. 속도를 높여 하루에 두 개씩 살펴본다면 1년에 600개로 총 4년 정도가 걸린다. 만일 2,400개가 아니라 1,000개 내외로 목표 기업을 좁히면 하루에 3개씩 1년이면 모두 살펴볼 수 있겠다.

직업이 있는 일반인이 하루에 3개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시스템만 갖추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본인만의 그 시스템과 재무제표를 보는 안목을 갖추는 데만 최소 3~5년이 걸린다. 표준속도는 바보들에게나 해당된다고 하지만 잘못된 시스템을 만들게 되면 살펴보는 작업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차트만 살펴 본다면 하루에 2,000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다.

투자가 어려운 것은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올바른 방법으로 기업들을 샅샅이 살핀다고 해서 실적이 쏟아 부은 노력에 비례해 좋아지지 않아서(원숭이가 임의로 찍은 종목의 수익률이 더 좋은 시기도 많다) 중간에 좌절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히 끈기와 인내와 맷집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작업은 인내와 용기의 기이한 조합이 반드시 필요한 지적 노가다(이 두 개도 다소 기이한 조합) 작업이다. 또 분석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고(의미 있는 규모의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모을 때 기술과 투자할 때 필요한 기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운과 실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운좋은 원숭이들도 많다. 운좋은 원숭이들을 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의 시험을 해 보면 된다.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1년 전, 첫 주엔 7개 중 2개 발견, 다음 주엔 9개 중 1개 발견, 3주 차엔 열심히 해서 17개를 살펴 2개를 건졌었다. 3주에 30개를 살폈으니 대략 내 속도는 1주에 10개 정도, 1년에 500개 정도다. 물론 그것도 아주 열심히 했을 때 이야기다. 대략 3개월 동안 170개를 살피고 그만 두었었다. 그 중 30개 정도가 괜찮아 보였으니 약 17%로 10개를 뒤집으면 숫자가 괜찮은 기업 1~2개를 만날 수 있었다. 1년 뒤 30개가 조금 넘는 이 기업들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약 10% 정도.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란 말이 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을 말하고, 견문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을 말한다. 시청과 견문은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시청`하면서 `견문`했다고 착각한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데도 `시청`이라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본 사람이 흘려 본 사람을 이기고, 흘려본 사람은 제대로 본 사람을 앞선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제대로 보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청에 머물 게 아니라 견문을 넓히는 연습이 무던히도 필요한 나날이다.”

재무제표를 간단분석하면 생길 수 있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