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를 아무리 열심히 보고 많은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살펴 보더라도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래는 JYP의 임직원 현황을 년도별로 살펴 본 그림이다. 직원 수, 임원 수, 직원 급여총액, 임원 급여총액, 평균 급여 같은 숫자들은 재무제표만 살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당 매출액이나 인당 영업이익을 통해 생산성 숫자들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이 숫자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임직원이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해서 급여총액도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JYP같은 엔터산업은 유형자산보다 인적자산이나 무형자산이 훨씬 중요한 산업이다. 저 증가하는 임직원 중에 핵심인력이 이탈하고 평범한 인력들이 충원된건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래 매출을 좌우할 새로운 그룹의 준비상황을 알 수 있는가? 세계 진출을 위해 새롭게 충원한 인력에 대해 알 수 있는가? CEO가 어떤 생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가?
재무제표는 기업 분석의 시작일 뿐이다. PER 에서도 말했듯 모두가 아는 정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기업 분석은 남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보이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업이다. 물론 보이는 것을 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있는지를 돌아 보고 그런 능력이 부족하면 먼저 그 능력을 채워야 한다. 밸류에이션이나 투자는 그 다음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기업 분석을 도와주는 좋은 툴들이 많이 나왔다. 예시로 든 버틀러도 정말 좋은 사이트로 현재는 모든 정보를 무료로 제공중이다. 버틀러도 수익을 위해서 언젠가는 유료로 전환하겠지만 그 전까지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정리한 데이터를 이용할 때도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의 시각을 내 것으로 만들어 결국은 나의 분석모델을 업그레이드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버틀러에 들어 가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분석 정보를 남들과 똑같이 보면서 똑같은 시점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모델로 정리해서 나의 관점에서 기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저 위에 아무렇게나 나열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엄청난 지적 노가다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필립 피셔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했다). 투자할 자격은 그 다음에 얻어 진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직접 투자를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인덱스 투자를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서 인덱스 투자를 한다.
내 기업 재무제표 분석 속도는 어느 정도 일까? 딱 1년 전, 싸고 좋은 기업들이 제법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한 주동안 매일 하나의 기업을 골라 그야말로 간단하게 훑어봤던 적이 있었다. 기업 재무제표 분석이라는 게 간단하게만 봐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일주일이 7일이니 7개 기업을 주마간산으로 재무제표를 살펴 보고, 나름 미래를 예측해 보고, 재무건전성을 평가하고, CEO의 자본배분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략적으로나마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해 보고 현재 가격과 비교하는 작업도 했었다.
미리 걸러 선정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일주일 간단 분석한 7개 중 2개 정도는 꽤나 매력적인 숫자들이 나와서 향후 제대로 각잡고 사업보고서 몇 년치를 보면서 더 깊은 분석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생각만 하고 보다 깊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책을 쥐면 먼저 읽을 시간이 계산되듯 기업을 보면 얼마의 시간을 투입해야 할지가 계산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다.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은 한 달에 200개까지도 살펴본다지만 나같이 직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는 매일 하루에 하나씩만 시간을 쪼개 간단히 살펴봐도 1년에 대략 250~350개 정도밖에 볼 수 없다. 1년에 300개를 본다면 8년 정도면 2,400개를 볼 수 있다. 기업은 생물처럼 다이나믹해서 8년 전에 살펴 본 기업은 8년 뒤엔 완전히 다른 기업일 수도 있다. 속도를 높여 하루에 두 개씩 살펴본다면 1년에 600개로 총 4년 정도가 걸린다. 만일 2,400개가 아니라 1,000개 내외로 목표 기업을 좁히면 하루에 3개씩 1년이면 모두 살펴볼 수 있겠다.
직업이 있는 일반인이 하루에 3개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시스템만 갖추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본인만의 그 시스템과 재무제표를 보는 안목을 갖추는 데만 최소 3~5년이 걸린다. 표준속도는 바보들에게나 해당된다고 하지만 잘못된 시스템을 만들게 되면 살펴보는 작업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차트만 살펴 본다면 하루에 2,000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다.
투자가 어려운 것은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올바른 방법으로 기업들을 샅샅이 살핀다고 해서 실적이 쏟아 부은 노력에 비례해 좋아지지 않아서(원숭이가 임의로 찍은 종목의 수익률이 더 좋은 시기도 많다) 중간에 좌절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히 끈기와 인내와 맷집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작업은 인내와 용기의 기이한 조합이 반드시 필요한 지적 노가다(이 두 개도 다소 기이한 조합) 작업이다. 또 분석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고(의미 있는 규모의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모을 때 기술과 투자할 때 필요한 기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운과 실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운좋은 원숭이들도 많다. 운좋은 원숭이들을 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의 시험을 해 보면 된다.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1년 전, 첫 주엔 7개 중 2개 발견, 다음 주엔 9개 중 1개 발견, 3주 차엔 열심히 해서 17개를 살펴 2개를 건졌었다. 3주에 30개를 살폈으니 대략 내 속도는 1주에 10개 정도, 1년에 500개 정도다. 물론 그것도 아주 열심히 했을 때 이야기다. 대략 3개월 동안 170개를 살피고 그만 두었었다. 그 중 30개 정도가 괜찮아 보였으니 약 17%로 10개를 뒤집으면 숫자가 괜찮은 기업 1~2개를 만날 수 있었다. 1년 뒤 30개가 조금 넘는 이 기업들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약 10% 정도.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란 말이 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을 말하고, 견문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을 말한다. 시청과 견문은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시청`하면서 `견문`했다고 착각한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데도 `시청`이라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본 사람이 흘려 본 사람을 이기고, 흘려본 사람은 제대로 본 사람을 앞선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제대로 보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청에 머물 게 아니라 견문을 넓히는 연습이 무던히도 필요한 나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4개 안을 올렸다가 국민연금 인상에 대한 반대여론에 밀려 제 1안인 현행유지로 5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는 무려 24개 시나리오를 정부에게 넘겼다고 한다.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24개 안이라고 하지만 결국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로 올리고 수급개시 연령을 현행 1969년생 부터 65세에서 순차적으로 늘려 68세로 연장하고, 쌓아 놓은 기금 수익률을 1%p로 상향하는 안이 유력하다. 이 세가지가 포함된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금 수익률 1%p 상향하는 안이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보험료 인상(12%, 15%, 18%)이나 수급개시 연령을 68세로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작 기금 수익률 1%p 상향하는 거라고?! 국민연금 공단 통계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수, 국민연금 지급액, 국민연금 1인당 월 지급액 평균이 나와 있다. 현재 1인당 지급액 평균을 보면 과연 국민연금이 노후생활을 보장해 줄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 딱 좋은 숫자다.
현재 매월 약 3조가 조금 넘는 돈이 지급되고 있으므로 12개월로 계산하면 36~40조가 적립금에서 빠져 나간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이 금액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현재 적립금이 990조 쌓여 있고 과거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운용수익률이 5.11% 정도다. 이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1%p 올리겠다는 안이다. 현재 기준으로 9.9조를 더 벌겠다는 이야기다. 무슨 방법으로 운용수익률을 1%p 올릴 것인가는 아마도 구체적인 안이 없을 것이다. 현재 나가는 돈 40조의 25%인 10조를 추가로 벌어들이겠다고 목표를 제시한 것인데 부디 구체적인 안이 있길 바란다.
많은 저항이 있겠지만 보험료율을 올리고 수급개시 연령을 뒤로 연장하는 안은 정부의 의지로 가능하지만 수익률 1%p 올린다는 것은 정부의 의지만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모두가 걱정하는 기금 고갈 시기를 자연스레 뒤로 연장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는 주식(국내/외) 45.1%, 채권(국내/외) 39.2%, 대체투자 15.7% 로 분산되어 있다. 설정후 수익률(1988~2022)은 대체투자가 9.94%, 해외주식 8.5%, 국내주식 5.22%, 국내채권 3.33%, 해외채권 3.24% 순이며 전체 수익률은 5.11%다.
앞서 워런 버핏의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20% 내외였다고 썼었다. 물론 1,000조 가까운 돈을 운용하면서 20% 수익률을 바란다는 게 맞지 않는 일이지만 예일대 기금을 운용한 데이비드 스웬슨의 34년간(1985~2019) 연평균 수익률은 약 13%였다. 2019년 예일대 투자 포트폴리오는 헤지펀드와 벤처캐피털 23.5%, 사모펀드 17.5%, 해외주식 11.75%, 부동산 9.5%, 채권/현금 7.5%, 원자재 7.5%, 미국주식 2.3% 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운용을 맡았던 1985년 10억 달러였던 예일대 기금은 2020년 321억 달러로 30배 이상 불어났다.
스웬슨이 개인투자자에게 권한 포트폴리오 자산배분은 예일대 포트폴리오와는 조금 다르다. 15% 미국 재무성 채권, 15% 인플레이션 연동 채권, 70%는 미국주식뿐만 아니라 선진국 증시, 이머징 증시에 나눠서 투자하라고 했다. 그레이엄의 60/40, 버핏의 90/10과 비슷한 70/30을 이야기한 것이다.
만약 국민연금 운용 총괄 책임자가 워런 버핏이나 데이브드 스웬슨 같은 사람이라면 현재 5%에 머물러 있는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10%나 20%로 끌어 올리는 게 가능할까? 만약 우리나라에 버핏이나 스웬슨 같은 투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의 가치는 얼마일까? 단순하게 계산해서 현재 국민연금 1,000조를 운용해서 기존 수익률보다 5%p 초과 수익을 낼 수만 있다면 초과수익금 50조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런 초과수익을 5년만 지속할 수 있다면 무려 250조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
만약 1년동안 국민연금 초과수익 50조를 낸 사람에게 5조를 성과금으로 지급한다면, 아니 1조를 성과금으로 지급한다면, 아니 1천 억을 지급한다 그게 말도 안되는 일일까?! 물론 단기간 성적으로만 성과금을 지급하면 그 성과가 그 사람의 능력때문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다.
여기서도 버핏을 살펴 보자. 그는 자신의 투자부문 후계자 2명에게 처음엔 약 50억 달러를 운용하게 맡겼다가 현재는 약 150억 달러를 맡아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이 둘 과의 계약구조를 살펴 보자. 먼저 관리하는 돈의 0.1%를 급여로 받는다. 10조라면 100억원이다. 그리고 성과급으로 S&P500 수익률을 초과하는 금액의 10%를 받는다. 단 성과급은 일시불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3년간 각각 3분의 1씩 지급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버핏이나 스웬슨, 아니면 버핏의 투자부문 후계자인 토드 콤스나 테드 웨슬러 같은 가장 투자를 잘하는 제일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국민연금 운용수익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 운용 과실에 따라 적합한 대우를 해줘서 목표로 하는 1%p가 아니라 5%p 초과 수익을 지속적으로 낼 수만 있다면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얼마를 더 내고 얼마나 늦게 받을 것이냐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버핏이라고 하더라도 1,000조의 돈을 운용해서 20% 수익을 내기는 힘들 겠지만 그래도 10%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우수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스템,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체계, 긴 시간지평…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조직 문화. 단 하나라도 부족하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1%p 수익률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1%p 수익률을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답이 없는 개혁안이라면 결국 보험료율 얼마 올리고, 받는 시기 언제로 늦추냐는 싸움에만 중점을 두는, 어렵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개혁안에 머물 것이다.
우리나라에 버핏이나 버핏의 후계자나 스웬슨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해외에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정말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알아 채고 발굴할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채용하고 운용을 맡기고 감독할 것인가? 성과보상 체계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얼마의 기간동안 맡길 것인가? 운과 실력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이런 진짜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1%p라도 가능할 것이다.
버핏과 그의 후계자들은 업무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뭔가를, 특히 책을 읽는데 보낸다. 우리나라 조직에서 업무 시간에 책을 꺼내 읽으면 어떤 평가가 따라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