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투자 3.0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쉬울까

과거의 오늘을 챙겨 보는 편인데 아침에 2021년 오늘 찍은 사진을 봤다.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찍은 사진인데 10개의 기업을 2022년 예상 FwdPER와 성장률(두 조합이 PEG)로 찍은 것이다. 그레이엄이 가르친 가치 투자 1.0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10개 모두 엄두도 못낼 밸류에이션이고 버핏이 보여준 가치 투자 2.0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그래도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생필품에 가까운 아래 5개 기업에 눈이 먼저 갈 것이다. 물론 피터 린치(가치 투자 2.0 투자자)가 말한 PEG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애플이나 메타를 골랐을 수도 있겠다.

10개 기업 밸류에이션

그렇다면 내가 주장하는 가치 투자 3.0으로 진화한 투자자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4년이 지난 이 시점에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익숙한 표로 2025년 4월 현재 10개 기업 현황은 다음과 같다. FwdPER는 애널리스트 예상EPS 평균으로 내가 따로 계산한 것이다.

10개 기업 현재 밸류에이션

오늘 현재 S&P500 PER 28 수준인데 저 10개 기업 평균 PER 27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상위 5개 평균PER 28.3 하위 5개 평균PER 26.2 로 별 차이가 없다. FwdPER로 보면 둘 사이 차이가 조금 더 벌이진다. 5년 매출 성장률을 보면 10개 평균 10.7%에 상위 5개 16.9% 하위 5개 4.4%로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풍부한 현금흐름을 투자와 자사주매입을 통해 성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현금흐름의 거의 대부분을 배당(5개 평균 배당성향 72%)으로 돌려주고 있다.

10개 기업 투자 전략 지도

내가 고안한 투자 전략 지도로 보면 두 그룹을 따로 구분짓지 않더라도 상위 5개 기업과 하위 5개 기업이 자연스레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0×10 박스에 들어있는 4개 기업과 15×15 박스 밖에 있는 5개 기업이다. 가치투자 3.0을 이야기하는 내 논리는 심플하다. 이처럼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10개 기업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는가?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나온 가치투자 1.0 도구를 가지고 현재 기업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이들을 구분짓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투자자라면 이런 질문도 해야 한다. 아마존은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투자 전략 지도의 오른쪽으로 옮겨갈 수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코스트코처럼 현 위치를 고수할 수 있는가? 10×10박스 안에 있는 기업 중에서 박스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기업은 누구인가? 구글의 원은 왜 저렇게 작은가? 구글은 왼쪽 아래 박스로 떨어질 가능성은 얼마인가? 같은 질문..

10개 기업 주가 상승률

10개 기업의 과거 5년 주가 상승률을 그림으로 그려 보면 위와 같다. 10개 기업을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었다면 S&P500보다 괜찮은 수익률이었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투표기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체중계다. 포트폴리오 평균을 기준으로 우상단에 위치한 5개 기업과 좌하단에 위치한 5개 기업을 이처럼 명확하게 가른 건 과연 무엇일까? 1.0 가치투자자들이 천금같이 믿고 있는 평균회귀는 이루어 질 것인가?

2025년 지금 현재 주식에 피같은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돈을 던져 넣기 전(투자란 던질 투 재물 자)에 한번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다. 과거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워런 버핏이 그레이엄의 그늘아래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의 버핏은 없었을거다. 물론 늘 얘기했듯 당신은 버핏이 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업보고서를 읽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당대 최고의 투자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디저트를 먹을 무렵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연례 보고서와 10-K 및 10-Q를 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워런 버핏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포기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일종의 심리 치료와도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워런 버핏이 최고의 투자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워런 버핏의 최고 버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 가이 스파이어, 2007년 버핏과의 점심식사 낙찰자 with 모니시 파브라이

“제 생각에는 월스트리트 보고서를 읽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직접 해보고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40년 동안 월스트리트 보고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례 보고서(10K)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 워런 버핏

“비교적 간단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연례 보고서를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실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찰리 멍거

빌 밀러가 말한대로 가치 투자란 무엇인가가 비싸 보인다고 배제하거나 무엇인가가 낮은 배수로 거래되기 때문에 싸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실제로 묻는 것이다. 높은 PER와 낮은 PER 모두에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관건은 투자자가 시장의 잘못 매겨진 가격을 알아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높은 PER지만 잘못 매겨진 가격일 수도 있고 낮은 PER지만 역시 잘못 매겨진 가격일 수도 있다. 맹목적으로 낮은 PER만 뒤지고 있진 않은가? 비싸 보이는 게 진짜 비싼가? 싸 보이는 게 진짜 싼가? 적어도 사업보고서(엊그제가 2024년 보고서 마감일^^)를 읽는 투자자라면 스스로 이 질문들에 답을 찾은 후에 투자를 시작하기 바란다. 투자하는 기업의 보고서도 안읽는 투기자라면 뭐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테고.

지금부터 5년 뒤 평균 회귀가 일어나면 어쩔려고 또 이런 글을… ㅉㅉ

추가) 우리나라에서 가치 투자 3.0 기업을 찾는다면 말리고 싶다. 기업에 따라 달라지듯 국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가치 투자 1.0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새로운 책을 안쓴다. 미국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나 벌어질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바야흐로 강도남작(Robber Baron) 전성시대 ㅍㅎ

우리나라 현금부자 20선

또 이런 리스트만 보고 혹할까봐 코멘트 남기자면, 시총대비 순현금비중 1위 세원물산을 간단히 보면 대주주 지분이 무려 78%를 넘는다..ㅋ 작년 순이익 220억은 영업이익 13억에 금융수익 63억, 자산처분이익 같은 일시적 기타이익 100억, 지분법 손익 76억에서 법인세(31억)를 제한 금액이다. 청년시절 버핏이 구사했던 행동주의를 할래야 할 수도 없는 기업으로 배당률을 보면 그저 대주주의 선의(?)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이다. 물론 일시적이라고 보지만 영업이익 13억 나오는 사업에 5년 평균 CAPEX는 370억 가까이 투자하고 있다. 역시 투자가 잘 돼서 이익이 급증하길 기대할 수 밖에..

세원물산 주가

세원물산 주가 보다가 상한가로 급등한 흔적이 있어 찾아보니 대선 관련주(이유조차 김문수 고향 경북 영천에 위치하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ㅋ)로 들어갔었다..ㅋㅋ 이래야 국장이지. 여기서 무슨 가치를 찾고 있을까. 대선 주자들 성이나 고향이나 학교를 뒤지는 게.

시간이 아주 많은 투자자라면 리스트의 다른 기업들도 하나하나 뜯어봐야 알겠지만 대체로 싼 기업은 싼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중에서 잘못 매겨진 가격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돌 하나 하나 뒤집어 봐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에선 이런 기업들이 있을수도 없지만 우리나라엔 즐비하다. 저평가된 기업이 많다고 마냥 즐거워만 할 일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일이다. 멍거 말대로 투자가 쉬울리가 없다. 왜 투자가 쉬워야 하나?!

피터린치 PEG

세상에 싼 건 싼 이유가 있는 법

해외 블로거의 글을 읽다가 피터린치의 방법으로 몇 개의 주식을 필터링한 글을 봤다. 엊그제 피터린치의 마젤란펀드에 대해 짧게 언급해서인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호흡으로 읽었다. 글쓴이는 피터린치 전략의 핵심을 PEG(Price Earnings to Growth ratio)로 봤다. 버핏과 멍거의 가치투자 2.0의 주 개념인 성장을 적정한 가격으로 구매한다는 GARP를 대표하는 핵심지표로 PEG를 본 것이다. PEG가 1보다 작으면서 부채비율과 같은 몇 가지 간단한 기준을 통과한 기업을 필터링한 전략이다.

저PEG 전략을 사용했을 때 수익률은 다음과 같다. 저PEG 20개 주식으로 구성된 월별 리밸런싱 포트폴리오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약 1,142.0%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 S&P 500을 667.4% 상회했다고 한다. 스스로 직접 백테스트를 했다면 믿음은 더 커진다..

저PEG 수익률

글에서 눈길을 끄는 해외 블로거가 뽑은 2월28일 현재 저PEG 상위 주식리스트는 단 9개 주식으로 다음과 같다. 저PEG의 당연한 특징이겠지만 리스트의 PER를 보면 대부분 10 내외의 비교적 싼 주식이다. 일반적으로 PEG에서 EPS성장률은 5년 정도의 기간을 이야기하는데 리스트에 나온 성장률은 정확히 어느 기간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저PEG 포트폴리오

구루같은 유명인이 뽑았든 아니면 내 노력으로 뽑았든간에 이런 리스트만 보고 일괄적으로 매수할 수 있을까. 앞에 쓴 글에서 개인적으로 퀀트를 보조적으로만 사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특정 필터들을 통과한 몇 개의 종목을 뭐하는 기업인지도 모른채 일괄적으로 매수했다가 월별, 분기별, 혹은 1년 단위로 리밸런싱하는 방법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에는 나는 너무 합리적이고(응?) 너무 인간적인 사람(기계가 아닌)이다..ㅋ

“최고의 투자자들은 10개, 20개, 30개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두 개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하지만 한두 개만 있으면 됩니다…교육기관들은 투자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천 개의 주식에 대해 충분히 알면서 아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정말 잘하고 싶다면 몇 개만 골라야 합니다. 저는 이를 종목 선택의 ‘우든 시스템1‘이라고 부릅니다.”
– 찰리 멍거

귀향길에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조언대로 세이렌(우리가 아는 그 사이렌이다)의 노래소리에 따라가지 않도록 하기위해 선원들의 귀에 밀랍을 넣은 것처럼 검증된 전략에 자신의 귀를 막고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지도 모르지만 난 귀를 막은 선원들보단 귀를 열어 둔 오디세우스에 가깝다. 아름다운 세이렌의 노래소리는 듣고 싶으니까..ㅋ 물론 스티븐 핑거가 오디세우스 기법2이라고 말한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PEG 투자 전략 지도

해외 블로거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었으니 이제 내 방식대로 이걸 재구성해야 한다. 내가 고안한 간단한 투자 전략 지도로 기업들을 재배치했다. 앞에 블로거가 표로 나열한 것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게 내겐 훨씬 더 유용하고 편리하다. 내 눈에는 이 9개의 기업들 평균만 놓고 보면 최근 5년 수익률은 벤치마크보다 아주 조금 높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S&P500보다 못한 집합으로 보인다. 꽤 괜찮은 집합이다. 자세한건 기업 하나 하나 뜯어 봐야 알겠지만 밸류만 놓고 보면 금융업종이 제법 포함됐으리라 추측된다. EWBC는 리 루 포트폴리오에서도 봤던 금융기업이다..^^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는 AX도 마찬가지로 금융기업이고.

리스트 중에서 특히 눈에 익은 중국 기업 바이두(BIDU)가 보인다. 9개 기업 중에서 5년 동안 주가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유일한 기업이다. 왜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을까? 역시 개별 투자 전략 지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10년동안 성장률과 수익률 모두 떨어지고 있다. 지도상 현재 위치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이런걸 턴어라운드라고 한다) 확신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쉽게 들어가기 힘들어 보인다.

바이두 투자 전략 지도

세상에 싼 건 싼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세상이 싸다고 한 이유가 자신이 보기에는 정확하게 틀렸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찰리 멍거가 말한 내 의견의 반대편에서 싼 이유를 말하는 최고 전문가와 논쟁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스스로 반대 근거를 가질 논리적인 이유가 된다. 본인의 피같은 돈을 투자한 기업마다 그럴 자신이 있는가?

주말 아침 해외 블로거의 글 하나를 읽으면서 또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네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아는거니?
넌 오디세우스처럼 몸을 묶지 않고 세이렌의 노래 소리에 목숨을 잃지 않을 자신이 정말 있는거니?
블로그에 남기는 건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다..

  1. 버핏은 사실상 최고의 선수 7명에게 거의 모든 출전 시간을 배분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 가장 자주 우승한 유명한 농구 감독인 존 우든의 승리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항상 2인자가 아닌 최고의 선수와 맞붙게 되고 최고의 선수들은 출전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평소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된다.

    “성공은 마음의 평화입니다.”라고 우든은 말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승리”라는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태도: 자신의 잠재력을 향상하고 극대화하면 성공한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 영혼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그것이 그가 정의한 성공의 모습입니다. 우든은 선수들의 마음에서 승리를 잊어버리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고, 매 시간, 매일매일 연습을 통해 작은 개선이 이루어지면 우승은 부산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우승은 완벽한 프로세스의 후행 지표에 불과했습니다. “하루하루를 걸작으로 만들어라.”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진실하세요. 매일을 걸작으로 만드세요. 다른 사람을 도우세요. 좋은 책을 깊이 음미하세요. 우정을 예술로 승화시키세요. 비오는 날을 대비해 대피소를 짓습니다.”

    “우든은 스카우트 보고서나 상대 팀 평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팀이 단순함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를 원했습니다. 비즈니스에 비유하자면, 경쟁사를 모방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매일 혁신하고 최고의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들이 벤치에 앉아 감독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타임아웃을 거의 부르지 않았습니다. 코치이자 스승으로서 그는 자신의 일은 대부분 연습 중에 끝난다고 믿었습니다. 경기는 선수들에게 기말고사나 다름없었죠. 스타 플레이어가 원정 경기를 위해 팀 버스에 2분이라도 늦으면 그 선수는 그날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UCLA가 첫 전국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16년 동안 코치로 재직하며 인내심에 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코치는 1년간의 저조한 성과로 해고됩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든은 위대함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2. “인간은 자기 통제를 성찰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것을 향상시킬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을 시켜 제 몸을 돛대에 묶었고,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았다. 배가 좌초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사이렌들의 유혹적인 노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불리하게 만드는 기법을 가리켜 오디세우스 기법 혹은 율리시스 기법이라고 부른다. 예는 무수히 많다.” – 스티븐 핑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과 같은, 고용주가 우리 월급 중 일부를 연금으로 떼어 놓도록 허락한다거나 소소하게는 잠잘 때 자명종 시계는 일어나서 끌 수 있어야 하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놓는 것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 ↩︎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투자관련 책들을 한동안 읽지 않았다. 신간이 나오면 훑어 보긴 했지만 각잡고 정독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해외 블로거들의 숙성된 글들을 읽는 게 들인 시간 대비 효율이 훨씬 더 나았다. 그러고 보면 난 철저히 합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자에 가깝다. 지난 주말, 언젠가 꼭 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었던 미국 드라마를 꽤 긴 시간(1부만 8회) 집중해서 봤는데 드라마 주인공의 삶에 대한 생각이 나랑 겹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마지막회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경험과 그에 대한 회상은 내 머리를 해킹한줄 알았을 정도..ㅎ

다시 투자로 돌아가서 책을 안읽다가 삶의 어떤 흐름때문인지 지금은 많이 시들해진(?) 퀀트에 대한 책을 연달아 3권 읽었는데 하나는 퀀트의 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과 실행 방법, 특히 백테스트를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꽤 성실하게 설명하는 책으로 퀀트 초보자용 책이다. 이전 퀀트책들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사항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책들이 많았다. 다른 하나는 퀀트를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회 초년생들을 주 타겟으로 한 책으로 책의 특성상 금융공학에 대해 꽤 깊숙히 들어가긴 했지만 전문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약간 길을 잃은듯 보였다. 직업으로 퀀트를 하려는 특정 소수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두 책 모두 퀀트에서 내가 찾던 내용은 전혀 없었다. 주식 관련 책을 읽거나 동영상을 보고 나서 모두가 하는 질문, ‘그래서 뭐 사요?’ 와 마찬가지로 퀀트 책을 읽는 목적은 하나다. ‘그래서 어떤 전략이 제일 좋은거요?’ 물론 나를 포함 모두들 성배를 꿈꾸며 이런 질문으로 책을 찾지만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뭘 사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필터링해서 어떤 전략을 사용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뭘 사도 손실을 볼 수 있고 어떤 퀀트 전략을 사용하더라도 돈을 잃을 수도 있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 동안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며, 한 해도 손실없이 연평균 29.2%의 수익률을 기록한 피터 린치에 의하면 자신의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돈을 번줄 알았지만 나중에 살펴 보니 가입자의 절반 정도는 수익이 아닌 손실을 보고 떠났다고 한다. 마젤란 펀드가 높은 수익률일 때 뉴스를 보고 들어왔다가 손실이 나자 너무 빨리 다른 펀드로 갈아 탔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선 황소도 돈을 벌고 곰도 돈을 벌지만 돼지는 도살당한다.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그래서 잡은 세번째 책은 제목처럼 퀀트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오쇼너시가 쓴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이다. 비쌀 때 사는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책에서는 역시 싸게 살 것을 강조한다. 투자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물론 싸다는 것에도 많은 함의가 숨어 있다). 초판에서는 필립 피셔의 아들 켄 피셔가 주창한 PSR을 최고 전략으로 소개했지만 이번 4판(미국에서는 2011년 출간)에서는 VC2 전략(PER PBR PSR PCR EV/EBITDA 주주수익률)을 권하면서 가격 모멘텀(6개월)을 추가했다. PSR이 1년에 한번으로는 좋은 전략이었지만 1년을 매월 새로 진입하는 12번으로 나눠 분석해 보니 VC2전략이 더 나았다고 한다.

“스토리가 좋아서 주식을 매수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주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악의 성과를 냈다. 모두가 이들을 이야기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종종 PER, PBR, PSR이 매우 높다. 단기적으로는 매우 호소력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치명적이다. 이들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항상 개별 주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전략 관점에서 생각하라. 한 기업의 데이터는 매우 설득력 있을 수 있지만 무의미하다. 반대로 단순히 단기적으로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로 시장이나 주식을 피하지 말라…그러나 도입부에 인용한 괴테의 말처럼 행동은 어렵고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략을 사용할 수 없어서 그날그날 주목받는 주식에 사로잡힌다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크게 낮아진다.”
– 제임스 오셔너시,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핵심은 PER든 PBR이든 PSR이든 PCR이든 EV/EBITDA든 어떤 지표로 분석하더라도 비싼 그룹보다 싼 그룹의 수익률이 거의 대부분 좋았다는 것을 백테스트를 통해 밝혔다. “시장은 오랜 기간 여러 순환 주기에 걸쳐 어떤 특성(예컨대 저PER, 저PCR, 저PSR)에는 일관되게 보상하고, 어떤 특성(고PER, 고PCR, 고PSR)에는 일관되게 응징한다.” 책은 800페이지가 넘는 두께지만 퀀트 결과를 동일하게 분석한 부분이 많아 금방 읽었다. 마지막 우리나라 시장에 적용한 결과도 읽어 볼만 했다.

몇 년 전 이미 퀀트에 대해 깊이 공부했었지만 아무래도 난 합리적 실용주의자인지라 퀀트로 나온 몇 십개의 기업들을 한꺼번에 샀다가 1년이나 혹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일괄적으로 리밸런싱하는 식의 방법을 무조건 수용하긴 어려워 퀀트를 보조적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퀀트의 핵심은 성공률이 높은 전략을 찾아 내서 백테스트를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결과가 벤치마크보다 뒤처지더라도 꾸준히 전략을 따라가는 데 있는데 그러려면 전략에 대한 올바른 백테스트와 결과에 대한 믿음이 핵심이다. 대부분은 올바른 백테스트에서부터 실패한다. 특히 믿음은 직접 흘린 땀에서 나온다. 시장을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무디스의 모든 페이지를 두 번이나 넘기며 기업을 찾았습니다. 세상은 좋은 거래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내야 합니다.”
– 워런 버핏

투자에선 황소가 됐든 곰이 됐든 일관성을 가지고 끝까지 버틴 인내심 많은 사람에게 돈이 가게 된다. 물론 시장에는 투자자든 트레이더든 퀀터든간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인간 본성 탓에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는 과거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돼지같은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인덱스펀드가 효과적인 이유는 대형주를 매수하는 아주 단순한 전략을 일관되게 실행하게 해서 시장의 수많은 돼지를 ‘강제로’ 황소로 바꾸기 때문이다. 인덱스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늑대나 여우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자들의 공통점 하나는 바로 일관성이고 이는 높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일관성 유지가 열쇠
장기적으로 초과수익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합리적인 투자 전략을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모닝스타의 10년 단위 분석에 의하면 펀드의 70%가 S&P500 성과에 못 미쳤다. 펀드매니저들이 한 가지 전략을 시종일관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장기 성과가 망가진다.”
– 제임스 오셔너시, 월가의 퀀트투자 바이블 서문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간지 사시사이에 들어 있는 빛나는 인용문이다^^

  • 좋은 정보가 전투의 90%를 좌우한다 – 나폴레옹
  •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 괴테
  • 우리는 적을 만났다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월트 켈리
  • 정돈과 단순화는 한 분야에 통달하는 첫걸음이다 – 토마스 만
  • 돈 버는 일에는 모두의 종교가 하나다 – 볼테르
  • 관습에 반하는 길을 가라 거의 언제나 잘 풀릴 것이다 – 장 자크 루소
  • 현명해지려면 진리를 발견하는 것보다 환상을 깨는 것이 낫다 – 루트비히 뵈르네
  • 가던 길을 바꾸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노자
  • 사람은 사실을 보고 싶은 대로 그리기 십상이다 – 이솝
  • 전망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예술이다 – 조너선 스위프트
  • 나의 불행보다는 남의 불행을 통해 현명해지는 것이 훨씬 낫다 – 이솝
  • 합리적인 인간은 네스호의 괴물처럼, 보았다는 사람은 많아도 사진에 찍힌 적은 아주 드물다 – 데이비드 드레먼
  • 발견은 남들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 아는 것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는 게 아닌 것 때문에 피해를 본다 – 아르테무스 워드
  • 언제나 가장 빠른 자가 경주에서 이기고 가장 힘센 자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기를 걸 때에는 여기에 걸어야 한다 – 데이먼 러니언
  •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다 – 토머스 헉슬리
  • 인간의 감정은 아는 것에 반비례한다 더 적게 알수록 더 쉽게 뜨거워진다 – 버트런드 러셀
  • 모든 진리는 일단 발견하고 나면 이해하기 쉽다 요점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 팩트는 무시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 올더스 헉슬리
  • 모든 것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본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 노자
  •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 미래를 판단하는 기준은 과거뿐이다 – 패트릭 헨리
  • 생각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 괴테

추가) “근본적으로, 저는 평생 인용구 중독자였어요. 똑같아요. 그래서 저는 인용구로 가득 찬 공책을 보관했어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21살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제 생각에, 그것들을 합치면 엄청난 펀치를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큐레이팅하면요. 월가에서 효과가 있는 것들을 읽으면, 저는 모든 장을 짧은 인용문으로 시작해요.” – 오쇼너시

이번에 새 책(Two Thoughts, A Timeless Collection of Infinite Wisdom)을 썼는데 인용문 모음집과 비슷한 책인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0명의 사상가로부터 얻은 500가지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