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이 낮으면 싼가?

싼 게 비지떡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최근 눈길을 끈 뉴스들 중 하나는 우리나라 주식시장 PBR을 다른 나라 PBR과 비교하는 그림이었다. 친구공개만 하는 SNS라면 그림을 그냥 복사해서 가져오겠지만 그래픽 하단에 저작권 표시와 구매하기 버튼이 따로 기재돼 있는 까닭에 이렇게 모두에게 공개된 블로그에는 동의없이 가져올 순 없다. 그 기사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코스피200의 PBR이 2024년 결산 재무제표 기준으로 0.8배 수준인데 이는 선진국 전체 평균 3.5뿐만 아니라 신흥국 전체 평균 1.8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 가치에 못 미칠 정도의 저평가 의미”라고 명시했다.

각 국의 PBR을 보면 미국 4.8 중국 1.5 일본 1.5 대만도 2.6이다. 우리나라 우량기업의 PBR이 0.8 수준이라면 크게 저평가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얼마전 이재명 대표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1, 0.2인 회사들이 있는데 빨리 사서 청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장의 물을 흐리는 것은 반드시 정리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고 그에따라 저PBR 주식 리스트1가 회자되기도 하고 주식시장도 밸류업에 대한 기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말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PBR 0.8에 샀다가 1.2에 나오는 전략의 승률이 높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판단 지표였다.

코스피 코스닥 스냅샷

내게 예전 같은 열정이 있었다면 국내 주식 전체의 PBR을 직접 계산했을거다. 이젠 그냥 쉽게 볼 수 있는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들어가 PBR을 조회해 본다.

코스피 PBR

코스피 PER 12.73 PBR 0.87 배당수익률 2.14로 조회된다. ROE는 6.83%(PBR/PER)가 된다. 기사에서 말한 코스피200은 PER 11.12 PBR 0.85 배당수익률 2.33 수준이고 ROE는 7.64%다. 코스피에서 200개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600개 넘는 기업들의 평균 PBR은 겨우 0.62다. ROE가 4.38% 수준으로 낮다. PBR을 볼 때는 항상 ROE를 함께 봐야하고 ROE를 볼 때는 부채비율을 함께 봐야한다. ROE가 요구수익률보다 낮다면 당연히 PBR은 1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예전 PBR 설명글에서도 언급했듯이 PBR은 f(ROE,Payout,R,G) 함수다. ROE가 높고 주주환원을 잘하고 성장을 잘하면 높은 PBR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거부터 성장 위주로 매출 확대에 집중하면서 이익률(Margin)이 낮은 사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낮은 이익의 대부분조차 CAPEX 투자로 빠져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주환원을 할 FCF 자체가 부족하고 그마저도 사내유보로 쟁여놓거나 본업과 상관없는 부동산을 산다. 그래서 ROE가 낮고 주주환원을 잘하지 못하고 성장도 부족하기 때문에 낮은 PBR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만의 큰 문제가 있다. 과거 재벌의 순환출자구조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하면서 자회사, 손자회사의 최소 지분요건을 완화함에 따라 지주회사 디스카운트와 자회사 중복상장2 문제가 있다. 지주회사의 순자산이 과대평가되면 분모가 부풀려져 PBR이 인위적으로 낮아져 PBR 왜곡이 발생한다. 지주회사 대주주 입장에선 낮은 PBR이 지배구조나 상속 관련해서 오히려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굳이 PBR을 높일 유인이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의 낮은 PBR은 낮은 ROE의 수준을 반영하며, 이는 자본의 과대평가(더블카운팅)와 올바른 자본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순이익의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단순히 낮은 PBR 숫자만 보고 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직접 계산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지주회사와 금융주를 제외한 현재 PBR은 충분히 1을 넘을 것이다.

아래는 AI가 정리한 우리나라와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의 차이점에 관한 표다(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라 당연히 환각관련 정확성은 검증하지 않았다). 이사회가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3조차 불가능한 나라에 너무 큰 기대는 말아야 한다. ㅠ.ㅠ

일본과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가) 우리나라 현재 PBR이 낮은 기업들 중에서 몇 가지 간단한 필터를 통과한 기업 리스트. 왜 22개인가? 2,500개 기업중에 내 필터를 통과한 기업이라 내가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니다..^^ 1년 뒤 이 리스트의 수익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예전엔 이런 리스트 뽑는 것조차 투자자의 경쟁우위였지만 이젠 1초면 리스트가 나오는 시대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투자자 역시 자신만의 경쟁우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이런 리스트는 크게 의미가 없고 다만 이를 바탕으로 보석인지 비지떡인지 하나하나 들춰 봐야 한다. 버핏도 그렇게 시작했다.

우리나라 저PBR 리스트

다음은 아이투자 저PBR 리스트. 필터가 다르면 리스트도 달라진다. 라임을 맞춰서 22개로..ㅋ

아이투자 저PBR리스

다음은 버틀러에서 약간의 필터를 적용한 결과다.

버틀러 저PBR

명목상 66개 기업 리스트가 됐지만 일부 중복을 감안하면 60개 내외가 될 터. 이 기업들의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를 하나씩 뜯어 보면 보석같은 종목들도 들어 있을 것이다. 주식 투자로 돈은 벌고 싶지만 사업보고서를 읽기는 싫다?!

“오랫동안 최고의 아이디어는 뉴스 헤드라인을 쫓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서 발견된다.”
– 워런 버핏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전에 평균 6분 정도만 조사를 한다고 한다. 주가 차트(주식 리서치 시간의 73%)만 바라보고 매수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다. 기업의 실적이나 배당, 재무제표 등 본질적인 요소에 들어가는 시간은 전체의 14%에 불과했고, 위험 분석에는 단 6초만 할애했다고. 주식 시장을 카지노로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카지노에서 승자는 결국 하우스가 된다..ㅋ

우리나라 주식 시장 PBR이 낮아서 기회가 있다는 말에는 별로 동의를 못하겠지만 우리나라엔 주식 시장을 카지노로 보는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서 기회가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있겠다. 씁쓸한 현실이다.

  1. 더벨 SR(서치앤리서치)본부가 코스피 상장사 808개, 코스닥 상장사 1675개 등 2483개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2024년 말 기준 PBR이 0.3배에 미달한 기업은 225개로 집계됐다. 코스피 151곳, 코스닥 74곳이 PBR 0.3 밑이다. ↩︎
  2. 금융정보 업체 LSEG에 따르면 지난 2024년 2분기 말 기준 국내 중복상장 비율은 18.43%로 일본 4.38%, 대만 3.18%, 중국 1.98%, 미국 0.35%에 비해 크게 높다.  ↩︎
  3.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상법 개정안 통과 및 공포 후에도 시행되기까지 유예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에 상장 지주회사들이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을 서둘러 추진할 수 있다”면서 “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여지가 있는 합병이나 중요한 영업·자산의 양수도 등이 급증할 수 있다”고 짚었다. ↩︎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를 되돌아 본다

이번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의 “저는 앞으로 50~60년 동안 일본 무역회사의 주식을 계속 보유할 계획입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매각은 고려하지 않는다. 버핏은 예전에도 일본 종합상사에 대해서 “앞으로 100년 동안, 아니 영원히 살아남을 기업”이라고 말했었다. 과거 글을 뒤져보니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를 보고 쓴 글이 있었다.

다음은 5년 전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를 보고 적어 놓은 글이다. 그때도 난 일본 5대 상사 투자는 단순히 버핏의 가치투자 2.0으로 봐선 안된다고 봤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버핏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

“특히 이번 일본에 대한 투자는 2004년 버핏이 지인의 권유를 받고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사례가 떠오른다. 4시간정도 상장주식 책자를 훑어 보고 저PER, 저PBR, 고ROE 회사 20개를 골라 골고루 총 1억 달러를 투자한 벤 그레이엄에게 배운 방법 그대로다. 기업의 세부적인 내용은 건너 뛰고 그저 저평가된 기업을 골고루 싸게 매수하는 방법이다. 단일 기업을 매수하지 않고 일본의 종합상사 5개 기업을 골고루 매수하는 방법에서는 2004년 우리나라 투자와 비슷하지만 이번 일본 투자는 아무래도 초창기 버핏의 3가지 투자방법 중 두번째에 속하는 차익거래의 일종으로 보인다.

물론 표에서 보는 것처럼 2018년과 2019년 가치지표들을 보면 10이하 저PER, 1이하 저PBR, 10이상 고ROE를 보이지만 특히 주목할 점은 배당률이다. 2019년 기준으로 평균 4.56%. 이번 주식매수는 버크셔의 National Indemnity(보험업)가 했는데 배당수익(4%시 약 2억6천만불)에 대한 세금은 기존 소득에 대한 법인세에 비해 훨씬 낮은 14%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배당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최근 3개 회사는 자사주매입도 해서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고려 했을 것이다.

버크셔는 2019년 9월 약 4B 정도의 엔화 표시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후 올해 초에 2B 상당의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해 총 6,255억 엔 규모의 엔화 표시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버크셔가 발행한 장기 회사채 금리는 0.17%~1.1% 정도라고 한다. 1%이내의 돈(엔화)을 빌려 4%이상 배당수익률이 기대되는 저평가된 일본의 대표기업 5곳에 골고루 투자한 셈이다. 향후 달러가 하락하고 엔화의 가치가 유지된다고만 해도 환차익은 덤으로 얻는 것이다. 완벽한 차익거래 기회다. 현재 5%정도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향후 9.9%정도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전략 지도

이토추상사의 투자 전략 지도를 보면 왜 가치투자 2.0이 아닌지 알 수 있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10×10 박스 안으로 들어가 있다. 미쓰비시도 살펴 보니 이토추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

“자본을 투자하지 않고도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항상 더 낫습니다.”

“저는 손익계산서보다 재무상태표를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월가는 재무상태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지만, 저는 손익계산서를 보기 전에 8년 또는 10년 단위의 재무상태표를 살펴봅니다. 재무상태표에는 숨기거나 조작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워런 버핏

5개 종합상사 현재 숫자들은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ROIC 10%도 안되는 기업들을 가치투자 2.0으로 투자했을리가 없다..ㅎ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올라 배당률은 예전보다 낮아졌고(배당성향 33%) 버핏이 좋아하는 자사주매입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5대 종합상사 현재

버핏처럼 엔화로 저이자 대출이 불가능하고 세금을 줄일 수 없는 개미로선 매력적이지 않은 투자로 봤지만 5년 평균 주가상승률 30%에 달하는 초대박투자(엔화 약세로 달러 환산시 CAGR -6.2% 고려해야지만 버핏처럼 장기투자시 무의미)였다. 특히 마루베니(8002.T) 상승이 눈부시다. 물론 여기엔 일본의 주주중시 정책 드라이브와 특히 버핏의 후광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익 증가와 자사주매입/소각과 함께 PER자체가 리레이팅(평균6.8 -> 9.5)됐다.

일본 5대 종합상사 주가상승률

이토추 상사 투자 전략 지도 살펴본김에 10초 내재가치 계산도 자동으로.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 장벽으로 국가간 무역을 주 비즈니스로 하는 종합상사들의 단기 전망은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물론 단기적으로.

이토추 상사 10초 내재가치 계산

“신속하게 행동할 준비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지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 그렉 아벨, 버크셔해서웨이 차기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