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루 시각으로 본 찰리 멍거의 투자 철학

리 루는 최근 인터뷰에서 찰리 멍거의 투자 철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우선 버핏과 멍거는 그레이엄의 계승자로 그레이엄의 기본 원칙을 받아들였는데 첫째, 주식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라 회사 소유권의 일부다. 둘째, 시장의 존재 이유는 투자자를 돕기 위함이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안내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른바 ‘미스터마켓’ 개념이다. 셋째, 투자에는 충분한 안전마진이 있어야 한다. 리 루는 멍거가 여기에 두 가지를 추가했다고 봤다.

찰리 멍거의 투자 철학

첫째, 당신의 역량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회사를 구매해서 오래 보유하라. 둘째, 물고기가 있는 곳에서 낚시해라.

여기서 역량 범위(Circle of Competence) 개념이 특히 중요한데 자신의 역량 범위를 어디에서 찾을지, 역량 범위를 어떻게 구축할지, 구축한 역량 범위에 물고기들이 있는지, 역량 범위를 구축하기 쉬운지, 역량 범위를 구축하고 더 많은 선택지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레이엄과 초기 버핏과 멍거가 활약하던 시절 미국에서는 심각하게 저평가된 기업들이 많이 있었고(가치 투자 1.0), 버핏과 멍거의 전성기 시절 미국과 세계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훌륭한 기업들이 창발한 시기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런 훌륭한 기업들을 매수해서 오랫동안 보유하면서 성장하는 내재가치를 복리화하는 것이 적합한 투자(가치 투자 2.0)였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경험은 최악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 J. Paul Getty

특히 멍거는 여기에 미국 이외 지역으로의 확장까지 성공했다. BYD는 22년 동안 보유해 왔지만 주가는 최소 6~7차례 50% 이상 하락했고 심지어 80%까지 하락한 적도 있었지만, 매년 회사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가치는 매우 중요한데 투자자는 언제든지 회사 자체의 가치를 추정할 수 있어서 가격과 가치가 벗어나면 선택적으로 보유량을 늘릴 수도 있어야 한다.

찰리 멍거의 합리성

멍거가 말하는 합리성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것과는 다르고 최소한 4개 수준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 현실세계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지혜, 제 1 원리는 과학적인 사고방식, 물리학적인 사고방식
  •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고를 사용하는 것, 모든 학문을 요약하고 배우는 것
  • 체계적인 비합리성을 피하는 것, 인간이 계속해서 저지르는 체계적인 오류 경향 25가지
  • 상식에 기초하고 상식을 존중, 효과가 있는 것은 카피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피하기

찰리 멍거의 사고방식

가치 투자든 벤처캐피털이든 모두 확률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투자는 확률의 문제다. 멍거와 일론 머스크가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위험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머스크는 위험에 대한 내성이 높아서 성공할 확률이 5%만 있어도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VC의 생각과 같다. 5%의 성공확률로 100개 회사를 창업할 수 있고 그 중 일부는 성공할 수 있다. 찰리 멍거의 경우 성공하려면 80% 이상의 성공 확률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5개 회사만 투자하면 된다. VC의 방식으로 투자할 것인지, 멍거의 방식으로 투자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이고 사실 확률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성공확률이 80%인 회사를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성공확률 5%인 회사를 시작해야 할까. 이것은 기업가가 고려해야 할 질문이고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똑같으며 모두 확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실무를 하면서 저는 전 세계의 많은 투자자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가치 투자자가 항상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워런 자신도 가치 투자는 백신 접종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예방접종 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그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그 철학에 동의하거나 아니면 평생 그것을 실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기본 성격과 매우 관련이 있고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과 관련이 높지만 단기적인 성과와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시간이 충분히 긴 경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0년 이상 동일한 가치 투자 방법을 실천해 왔다면 일반적으로 그의 장기적인 성과가 문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리 루

감기가 지나가고 제일 먼저 제대로 집중해서 읽은 아티클은 리 루가 지난 12월 15일 찰리 멍거에 대해 회상하는 인터뷰였다. 구루의 글 하나를 읽는 것이 나같은 사람의 글 백 개를 읽는 것보다 낫다. 글을 읽다가 멍거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리 루의 큰 딸을 사고로 잃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두 비극을 통해 리 루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과 언제나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멍거의 유산은 버크셔해서웨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버크셔해서웨이

버크셔해서웨이는 찰리 멍거가 설계하고 버핏이 시공한 기업이다. 다음은 2023년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편지 일부다.

“버크셔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좋은 경제성을 갖춘 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어떤 비즈니스는 오랫동안 번창하는 반면 어떤 비즈니스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답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착각에 빠져 있거나 사기꾼입니다. 버크셔는 특히 미래에 높은 수익률로 추가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드문 기업을 선호합니다. 이러한 기업 중 하나만 소유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거의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주의 상속인조차도 – 어! – 때로는 평생을 여유롭게 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선호 기업이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자에 의해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이는 더 어려운 판단입니다. 하지만 버크셔도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1863년 미국의 초대 감사관이었던 휴 맥컬록은 모든 국립 은행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의 지침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기꾼이 당신을 속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사기꾼을 상대하지 마십시오.” 사기꾼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은행가들이 맥컬로크 씨의 조언에서 지혜를 얻었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진심과 공감은 쉽게 속일 수 있습니다. 이는 1863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 필수 요소의 조합은 오랫동안 기업 인수에 있어 우리의 목표였으며, 한동안은 평가할 후보가 많았습니다. 인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한 곳을 놓치면 항상 다른 곳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제 버크셔는 미국 기업 중 가장 큰 GAAP 순자산을 기록했습니다. 기록적인 영업 이익과 주식 시장의 강세로 인해 연말에는 5,610억 달러의 순자산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기업의 총아로 불리는 S&P 499개 기업의 총 GAAP 순자산은 2022년에 8조 9,000억 달러였습니다. (S&P의 2023년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9조 5,000억 달러를 크게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수치로 보면 버크셔는 이제 전 세계의 거의 6%를 점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버크셔는 주식 발행(순자산을 즉시 증식하는 행위)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5년 안에 이 거대한 기반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나라에서 버크셔를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회사는 소수에 불과하며,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끝없이 선택해 왔습니다.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면 매력적인 가격이어야 합니다.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버크셔의 자본 배분에 의미 있는 옵션이 될 만한 후보가 사실상 없습니다. 결국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크셔를 경영하는 일은 대부분 재미있고 항상 흥미롭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면, 5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버크셔는 가중치를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의 미국 대기업보다 다소 나은 전망을 가진 다양한 사업체의 일부 또는 100%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운과 운에 따라 수십 번의 결정에서 몇 명의 큰 승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65를 그저 또 하나의 생일로 여기는 소수의 장기 근속 관리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추가) 버크셔해서웨이 사외이사였던 분(이름은 까먹었…크리스 데이비스^^)의 20분짜리 인터뷰를 들었는데 버크셔 이사회에 들어간 느낌을 말해달라고 하니, 버크셔는 겉과 속이 똑같았다는 말이 기억난다. 바깥에서 봤던 거랑 안에서 본 게 정확히 일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멍거와 버핏 사후 버크셔해서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스탠다드오일의 세번째 CEO가 누구인지 기억하느냐고 역으로 물었다..^^

“스탠다드오일은 1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존 D. [록펠러]는 현금을 생산하는 데 매우 긴 수명을 가진 엄청난 자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대공황, 세계 대전, 인플레이션 등 온갖 혼란을 견뎌낼 수 있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월가를 거부하고 단기주의를 거부하는 문화입니다.”

감기 앓고 나서 블로그를 지켜 보면서

감기 앓고 나서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고 두었는데도 곧잘 트래픽이 들어왔다. 그래서 통계를 보니 인기있는 글 중 하나가 기업의 내재가치 계산하기다. 내재가치란 검색어 자체가 워낙 대중성이 없고 인기없는 검색어인지라 트래픽 자체가 크진 않지만 어쨌든 기업의 내재가치 계산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검색으로 조회해서 내 블로그로 들어 온다. 검색이란 게 어떤 방법이 궁금해서 검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특정 방법들에 대해 정리한 글이 인기가 좋다. 물론 내 글은 좀 불친절하지만,

그 글에서 내가 내재가치 계산에 큰 도움을 받은 책 제목까지 적어 놓고 말미에는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내게 어떻게 10초도 안걸려 75만 달러라는 숫자가 나왔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내가 순순히 가르쳐 주겠는가? 당신이라면 이 방법을 유튜브를 찍어서 알려 주겠는가? 전자책을 써서 알려 주겠는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은 어려울 수도 있고, 간단하고 쉬울 수도 있다. 사실 10초만에 DCF를 하는 방법을 안다고 투자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세상엔 자신만 아는 비법들을 가르쳐 주지 못해 안달난,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추천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 수는 없다.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10초만에 내재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이기 때문에 블로그에 거리낌없이 결과를 올릴 수 있다. 만일 내가 각잡고 기업에 대해 많은 시간 분석했다면 내가 계산한 내재가치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10초만에 나왔다고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아니고 오래 분석한다고 결과가 옳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10초 내재가치를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는 기업의 내재가치라는 것을 계산하고 투자하는구나를 예시로 보여주기 위함도 있고 DCF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투자란 게 계산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금흐름 할인법(DCF)로 계산하는 방법이나 엑셀로 DCF 계산하는 양식(이전에 다모다란 교수의 양식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은 책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면 이미 남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자료들이 나온다. 투자하기 전에 그 방법들을 하나 하나 익히고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만들면 된다. 이건 아주 쉽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 만든 방법들을 실제 기업분석에 한번씩 적용해 나가면서 업종별로 수정해서 업그레이드하면 제대로 된 투자자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조금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번 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쉬운 방법을 찾아 남이 만들어준 양식을 덥석 받아서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다보면 곧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 방법들이 통하지 않는 많은 사례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음식점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을 주방장에게 맡겨선 안되고 주인 스스로도 간단한 음식은 만들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주식 투자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전문가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투자자 스스로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기업 분석의 마지막은 결국 밸류에이션이다. 참여하는 투자자의 수만큼 다양한 내재가치 평가법이 나올 수 있고 나는 그저 나에게만 의미있는 나의 계산 결과를 잠깐 블로그에 (내가 기억하기 위해) 공개할 뿐이다. 그러니 성장률이 얼마인지 할인율이 얼마인지 영구성장률이 얼마인지 기간을 얼마로 예상했는지 같은 가정들은 어찌보면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모든 투자는 결국 확률의 문제일 뿐, 누구 계산이 옳고 정확하며 누가 틀렸는지를 판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아도 잃을 수 있고 틀려도 벌 수 있는 세상에는 절대로 계산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결정은 숫자를 더하면 이성적인 답이 나오는 스프레드시트에서 내려지지 않습니다. 정량화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렵고 원래 목표에서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인간적 요소가 있습니다.”
– 모건 하우절

DCF가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예 중 하나가 가치 투자 3.0 기업들이다. 요즘은 블로그에 가치 투자 3.0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최근에 가치 투자 2.0과 가치 투자 3.0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가치 투자 1.0에 해당하는 기업과 가치 투자 2.0에 해당하는 기업의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오래전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을 일들을 몇 가지 했었다. 만일 내가 그것에 대해 책을 쓴다면 남들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내가 한 일에 대해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자세히 쓰겠지만 블로그에 그런 내용을 세세하게 쓸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2.0과 3.0의 차이에 대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고 있지만 굳이 내가 알게된 것들을 이곳에다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책을 쓴다해서 자신의 지식을 모두 공개하는 사람도 거의 없긴 하다. 현재는 책을 쓸 생각도 없고.

망치만 들고 못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유료지만 무료보다 못한 콘텐츠들도 많다. 비법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의 비법은 결국 뻔한 이야기거나 망치인 경우가 많았다. 교과서나 요즘은 유튜브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과거 MBA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무슨 대단한 정보인양 포장해서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말 가치있는 비법(그런 게 있다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하기보단 숨기려 할 것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이 영원히 비밀로 유지되듯이 버핏과 멍거 역시 본인들의 정수는 공개하지 않고 두리뭉술하게만 이야기했다. 내재가치에 대한 질문에 버핏은 항상 이솝우화로 답한다..^^ 뻔한 이야기나 시장에 널려 있는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은 투자자 스스로 할 일이다.

모니터 뒤편의 수많은 사람들


이제 음식점을 시작하려거나 초보 음식점 사장이 자신의 고민을 먼저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혹시라도 길을 아는지 친절하게 문의한다면 먼저 그 길을 지나가며 무수한 실수를 한 사람으로서 고민한 결과와 경험을 아는대로 설명할 용의가 있지만 온라인에서 이런 친절을 기대하기는 무리란걸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지금 내겐 그런 에너지조차 별로 없기 때문에 설령 내게 그렇게 묻는다해도 남들처럼 뻔한 답을 짧게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버핏이 말한 이솝우화에 진리가 숨어 있는 것처럼 뻔한 답을 하는 이유가 있고 때로는 뻔한 답에 진짜 답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만 아는 비밀이란 것도 사실 내가 알면 또 얼마나 알겠는가. 기껏해야 10초 계산기 뿐인걸.

“한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간범위, 목표, 야망 및 위험 허용범위를 갖는다면 모든 것이 계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5% 하락한 후 공황 상태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장기 투자자라면 끔찍한 생각이고 전문 트레이더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당신이 보는 모든 비즈니스 또는 투자 결정이 당신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해야 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 모건 하우절

나보다 훨씬 고수 한 분이 내가 만든 투자 전략 지도 개념이 마음에 들어 그 아이디어를 카피해서 업종에 따라 서로 다른 세 가지 팩터를 가지고 비슷한 지도를 만들어 봤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또 누군가는 내가 만든 5년치 현금흐름표 그림을 바탕으로 10년치 현금흐름표를 만들어 봤다고도 했다. 내가 올리는 다소 불친절한 글이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인사이트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감기에 걸려서도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고..^^

2025년 한국의 개

전광판만 바라보는 운동선수가 될 것인가

연초엔 나 혼자 SNS에 미국 ‘다우의 개’를 카피한 ‘한국의 개’를 올렸었다. 올해부턴 블로그에~ 작년 연초부터 정부에서 밸류업을 내세우면서 한국의 개처럼 시가총액이 크면서 배당수익률이 높은 주식들의 성과가 특히 좋았다.

2024년 한국의 개

(2024년 한국의 개, 1년 수익률 34.58% + DY 4.45%)

미국 다우 30개 기업 중 배당수익률이 높은 순서로 10개를 뽑는 것처럼(미국은 작년에 다우의 개 수익이 별로였을 것이다…DY 4.17% + 수익률 -3.7%) 우리나라 코스피, 코스닥 구분없이 시총 순서대로 상위 40개(이 숫자도 내 맘대로) 중에서 배당수익률이 높은 순서로 10개를 뽑는다. 다우의 개야 누구나 조회해 볼 수 있으니 내가 뽑는 한국의 개 올해 리스트만 올려 보면…역시 과거처럼 금융주가 많다.

2025 한국의 개

배당률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리스트가 될텐데 대충 5% 넘는 배당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고 지난 1년 수익률이 22%로 이미 많이 올랐다. 지난 해 우리나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모두 마이너스였던 힘든 시장이었는데 배당과 수익률 둘을 합하면 27% 넘는 수익률이니 작년에 이 전략을 사용했거나 금융주 투자자들은 꽤 좋은 한 해가 됐을거다. 당연히 과거 수익률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 배당주들의 지난 1년, 서로 다른 결과가 재밌는데 다우의 개나 한국의 개와 같은 배당금 투자 전략은 2022년 미국과 작년 우리나라처럼 하락장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

2025 다우의 개

(2025년 다우의 개 리스트, 평균 DY 3.5%, 지난 1년 수익률 7.77%)

궁금해서 밸류업으로 뉴스검색을 해보니 “증시 전문가들 “밸류업 이대로면 효과없다”…법·제도 개정필요” 기사가 눈에 들어 온다. 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 밸류업이 별 효과가 없을거라는 전망이 우세하고 낮은 주주환원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법, 자본시장법 등 법개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기사에 정책 담당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 많이 보인다.

예전에 삼성전자와 애플의 재무제표를 비교 분석하면서 왜 두 회사의 주가는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를 꽤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젠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그런 종류의 글을 적을 에너지가 내겐 없다. 방금 미국 야후파이낸스에서 검색해 보니 삼성전자 시가배당률 2.71%, 애플 시가배당률 0.4%로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 1년 수익률 -32.91%, 애플 1년 수익률 30.07%로 배당률과 다른 방향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전처럼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단 내가 만든 그림 두 장만 올린다. 먼저 애플의 5년 평균 현금흐름표다. 이 그림을 보는 방법은 대충 이자까지가 순이익, 운전자본변동까지가 FCF로 보면 된다. Cash Conversion(FCF/순이익)을 바로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애플 같은 회사는 운전자본변동이 플러스다..^^ CAPEX와 감가상각이 거의 같은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배당보다 훨씬 큰 자사주매입이 눈에 띈다. 애플은 최근 5년동안 영업이익의 거의 대부분을 주주들에게 배당과 자사주매입으로 돌려주고 있다. 버핏의 영향이다.

애플 5년 현금흐름

그리고 삼성전자의 최근 5년 평균 현금흐름이다. 영업이익 자체가 최근 5년 평균이 최근 10년 평균과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면서 이익의 거의 대부분을 CAPEX에 쏟아붓고 있다. 투자가 제대로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투자 전략 지도를 보면 짐작은 할 수 있다. 순이익과 FCF 차이가 크다. 주주들에겐 배당보다 자사주매입/소각이 더 좋은데 여전히 배당에 집중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 거의 대부분은 자사주매입 후 소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애플과 달리 운전자본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이런 현금흐름을 보이고 있다. 찍히는 돈은 잘 버는 것 같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유지보수나 신규 투자를 위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돈이 대부분이라 주주에게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 줄 수가 없는 상황 같은.

삼성전자 5년 현금흐름

저렇게 많이 투자를 하고 있는데도 내가 계산하는 숫자로 계산한 성장률은 삼성전자 2% 내외(정부에서 발표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예상도 1.8% 수준), 애플 10% 내외로 거의 5배 차이가 나고 밸류 역시 삼성전자 PER 11 애플 PER 41로 큰 차이가 난다. 두 기업의 수익률 차이는 성장률보다 더 큰 차이가 난다.

돈 잘 버는 회사의 주가는 이익(FCF)과 함께 올라간다. 단순히 배당만 일시적으로 늘린다고 주가가 올라가진 않는다. 회사로 들어온 이익을 높은 이익이 예상되는 사업에 재투자하거나 좋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좋은 인력을 영입하거나 미래 먹거리를 위해 투자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부채를 갚거나 혹은 주주에게 배당이나 자사주매입, (국내기업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자사주소각을 하는 것과 같은 자본배분을 통해 기업 가치를 적극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면 주가는 자연스레 기업 가치 증가와 함께 따라 올라가기 마련이다. 선수는 오로지 운동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전광판만 쳐다 본다고 승리하지 못한다.

국내 기업들이 회사의 이익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여전히 현금만 끌어 안고 있거나 부동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업과 크게 관련없는 부동산만 사들이거나 (이런 일들이 모두 ROE를 떨어뜨린다) 우수인력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외면하거나 이익을 빼돌리는 편법증여를 모색하거나 주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경영이 계속되면 아무리 일시적인 배당을 높게 주더라도 밸류업은 구호에만 그칠 것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을 찍히는 이익이 아니라 FCF로만 바라봐도 투자할 기업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순이익이 아니라 주주이익으로 바라보는 것, 버핏의 혜안은 무엇보다 여기에 있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감기약을 먹고 헤롱한 상태에 써 둔 글인지라 두서도 없고..난 왜 이런 글들을 그냥 올리고 있는걸까ㅋㅋ 올해가 뱀의 해라고 하는데 죽지 않기 위해선 제대로 탈피해야한다. 나도 기업도 대한민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