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을 생각하면서 미션을 할 수 없어요. 속도, 기습, 맹렬함이 핵심입니다. 총에 맞으면 맞는 거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알고리즘으로 뜬 “강철부대3” 한 장면이다.
(출처 : 채널A)
예전에 영화 2개, “범죄도시”와 “남한산성”을 동시에 봤던 기억이 있다.
“범죄도시”를 보면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동석의 액션도, 윤계상의 변신도 아닌 조연배우 진선규의 연기였다. 극중 윤계상의 오른팔 격인 위성락으로 나온다. 윤계상이 연기한 두목 장첸과 마찬가지로 위성락은 두려움없이 막나가는,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준다. 상대가 쇠파이프를 들든, 칼을 들고 목을 겨누든, 혹은 수십명이 에워 싸든 그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마동석 같은 하드웨어가 탁월한 인물들을 거리에서 마주치면 시대를 달리 태어났다면 장군감인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극중 윤계상이나 진선규 같은 일말의 두려움없는 불굴의 깡을 가진 인물들이 전쟁의 시대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인물들은 평화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몸이든 깡이든 둘 모두 총칼을 든 무관에게 어울리는 기질이라 생각했다.
며칠 뒤 영화 “남한산성(나중에 알았지만 오징어게임을 만든 황동규 감독 작품이다)”을 봤다. 사람들은 주인공인 김상헌과 최명길, 혹은 인조에 집중했겠지만 내눈에는 먼저 봤던 영화 “범죄도시” 때문인지 거기에 나왔던 배우 두 명이 먼저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이 진선규였는데 휘하에 100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는 초관으로 나왔다. 무관이 된 그가 위성락과 같은 캐릭터로 나왔다면 꿀잼이었겠지만 “남한산성”에서 그는 당시에 흔하디 흔한 무관 캐릭터로 나왔고 나중엔 무관답지 못한 최후를 맞는다. 또다른 한 명은 용골대로 분한 허성태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청의 무장들이 내가 생각했던 전쟁시대 무지막지한 무관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장첸과 위성락도 만주 지방의 조폭들이었다.
“남한산성”을 보는내내 나를 사로잡은 장면은 첫장면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수만의 군대와 최명길의 조우. 혈혈단신 청의 대군에 홀로 맞서 인조가 무사히 남한산성으로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장면을 잘 표현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쇠파이프와 칼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위성락이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 불굴의 깡과 두려움없는 용기를 글이나 읽었을 한낱 문관에게서 볼 줄이야.
전쟁의 시대 무관들만 생각하다가 문관들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몸의 하드웨어만 생각하다가 소프트웨어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한산성”은 내가 잡고 있다가 잠깐 놓치고 있었던 소프트웨어를 다시 되새겨준 영화였다. 그리고 이번에 강철부대 3편을 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평화의 시대에도 이런 전사들을 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장이 아니라 비지니스 전쟁터에서다. 애플의 스티브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알리바바의 마윈, 그리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을 보면 재무제표나 살피고 보고서나 읽으며 회의실에 앉아 있는 점잖은 사장이라기 보단 전쟁터 한복판의 장군에 가깝다.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 같은 세계적인 투자자들 역시 전쟁터의 장군들이다. 수 천만불의 투자나 손실에도 결코 평상심을 잃지 않는다.
“총에 맞으면 맞는 거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