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운영 철학

세계적인 대기업 버크셔 해서웨이 홈페이지 화면이다. 그래픽 없다(가이코 로고정도). 메뉴없다. 그냥 방문자가 필요한 정보로 바로 클릭해서 들어갈 수 있는 하이퍼링크뿐이다. 하이퍼링크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텍스트 정보들과 역시 또다른 하이퍼링크로 구성됐다. 마치 초창기 인터넷 사이트를 보는듯한 기분이다. 돈을 잘 버는 회사에 방문했는데 허름한 사무실에 딱 필요한 인원만 분주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사이트를 방문하면 대략 그 기업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 블로그에는 어떤 운영 철학이 보일까?! 블로그 운영 철학이 보이긴 할까.

버크셔 해서웨이 홈페이지 화면

역시 초거대기업 구글 홈페이지 화면이다. 인터넷 모든 정보를 품고 있지만 초기 화면은 극도로 단순함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모습이다. 모든 광고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 광고도 없다. 모든 인터넷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보여지는 기술은 아무 것도 없다.

구글 홈페이지

더 이상 뺄 수 없을 때까지 덜어내는 것. 불필요한 게 단 하나라도 없는 상태. 샤넬은 문을 나서기 전 전신 거울을 보면서 딱 하나 뺄 게 뭐가 있는지를 살펴 봤다고 한다.

거창하게 운영 철학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먼저 제목 장사질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 장사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모두의 시간만 빼앗는 백해무익한 행위다. 키워드를 먼저 선정하고 거기에 맞는 글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누구 눈치 안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AI가 양산할 법한 뻔하디 뻔한 정보 나열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단순 정리하는 AI가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글로 채워지는 공간이 되길 추구했다.

광고 클릭을 유도하거나 광고 블록 프로그램 제거를 요구하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내 블로그 공간에 광고를 올릴 내 자유도 있고 독자가 광고를 블록해서 보지않을 자유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 경우 좋은 콘텐츠를 보면 자발적으로 블록 프로그램을 중단해서 광고를 띄우는 것으로라도 수고에 대한 작은 기여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그러거나 그러지 않거나 다른 누군가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위 두 개 사이트와 내 블로그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내 블로그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난 블로그에 복잡한 기능을 넣거나 현란한 디자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지금 블로그 디자인(워드프레스 기본 디자인 중 하나)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CMS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내 블로그의 첫 독자는 나이므로 현재는 내게 필요한 기능만 적절하게 들어가 있고 글쓰는 공간도 최대한 단순하게 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포탈에서 블로그를 할 때는 특정 글에 트래픽이 집중되면(아주 오래전이지만 하루에 만 명 이상 들어왔을 때도 꽤 있었다) 그 글을 비공개로 돌리는 일을 반복했다. 어떤 일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특정 글에 트래픽이 몰리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하나하나 몰린 글들을 모두 비공개로 돌렸었다. 지금 블로그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면 무슨 미친 짓이냐 싶을 행동이다. 언론에서 취재하겠다는 것도 두 번 정도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내 블로그에 오프라인 지인들이 어찌 알고 찾아 오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일부러 알리는 일도 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 블로그 서비스나 SNS는 이를테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 방 하나를 월세나 전세로 살고 있는 셈이고 이런 독립형 블로그는 전원주택을 직접 짓는 것과 비슷하다(쓰다보니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적은것 같아 검색하니 역시 있었다^^) 아파트는 북적거리는 맛이 있고 전원주택은 한적하고 조용한 맛(예상은 했지만 역시 댓글과 좋아요 같은 상호작용이 정말 없다..ㅋ)이 있다. 최근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것 같아 조금 움직여볼까도 싶다..ㅎ

“당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저 다른 사람 이야기의 일부가 될 뿐입니다.”
– 테리 프래쳇

이젠 나도 나이가 드니 오는 사람(트래픽)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검색이 몰리면 그런갑다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도 또 그런갑다 한다. 버크셔나 구글이 저렇게 단순한 홈페이지를 유지하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다른 기업들이 복잡한 디자인과 현란한 기술들을 홈페이지에 집어 넣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 각자 편한 자신만의 옷을 입고 산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블로그에 혼잣말 남겨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무수히 번성했다 사라진 콘텐츠들…내 블로그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이유가 없다. 언젠가 다 사라질 말들이다. 다들 그래서 책을 쓰나 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인상적인 장면

주말에 투자 전략 지도를 가지고 놀면서 또 하나 한 일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4회까지 시청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나는 항상 이런 것에 늦다. 이거 완전 오징어게임의 요리버전이구만 하는 생각으로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한식대첩 승자 백수저 이영숙님과 장사천재 흑수저 조사장의 대결이었다.

흑백요리사

우둔살을 재료로 한 대결이었는데 작은 놋그릇에 담긴 미소곰탕과 전립투구 위에 차려진 풍성한 샤브샤브가 대조적이었다. 바로 며칠 전, 단순함에 대한 글 하나를 올렸던터라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미소곰탕이름과 비슷하게 미소짓는 그림이다..^^

단순성 지도

요리나 투자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한다.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접목시켜 나가면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앞으로 전진하면서 차차 실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장사천재 조사장은 위 그래프의 6~8레벨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단계에선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될수록 더 많이 시도하고 싶어진다. 이영숙님은 몰라도 9~10레벨에 있지 않을까. 고수는 음식을 깊이 이해하여 몇 가지 고품질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여 겉보기에는 절제된 듯하지만 맛은 놀라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10년동안 되게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달려왔다 생각했는데, 참 덜어 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진짜 너무 크게 깨달았어요.” 대결이 끝난 후 흑수저 조사장의 말이다.

주말에 투자 전략 지도를 가지고 놀면서 흑백요리사를 봤기 때문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요리와 투자에 대한 생각들, 복잡함과 단순함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뒤엉켰다. 투자 전략 지도에서 더 빼야 할 것은 없는가? 이 지도만 보면 좋은지 나쁜지를 90% 이상 정확도로 가려낼 수 있는가? 그리고 흑백요리사 같은 프로그램을 투자분석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재야 고수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기업분석 대결같은..ㅋ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입니다. 무언가를 단순하게 만들고, 근본적인 과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우아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미니멀리즘이나 잡동사니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성의 깊이를 파헤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진정으로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필수적이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돌아가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거금을 들여 잭 니클라우스와 함께 라운딩하면서 지도를 바랬는데 라운딩 중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장이 조언을 부탁했더니 잭 니클라우스는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Do not head up.” 머리를 들지 마세요. 버핏에게 물으면 “절대로 돈을 잃지 마세요.”라고 할 것이다. 멍거는 아마도 “나쁜 기업은 멀리 하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끝으로 넷플릭스 투자 전략 지도. 요리가 결국 좋은가, 맛있는가로 귀결된다면 투자는 결국 좋은가, 싼가로 귀결된다. 넷플릭스는 좋은가? 그리고 싼가?

넷틀릭스 투자 전략 지도

넷플릭스의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굴까? 디즈니, 아마존, 웨이브, 쿠팡플레이와 티빙 같은 동종업체일까, 아니면 유튜브일까?

TV 점유율

단순함에 필요한 에너지

좋은 투자의 조건을 단순함이라고 했는데, 경험상 단순함으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소수의 천재들은 보는 즉시 단 한번에 단순함으로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둔재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많은 길을 굽이굽이 돌고 나서 보면 그제서야 단순함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으며 이를 되살리기 위한 주요 이니셔티브 중 하나는 애플의 제품 라인을 단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잡스는 회사의 제품 로드맵에 대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잡스는 분명히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만해… 미친 짓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가서 2×2 행렬을 그려서 Apple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했는데, 그것은 4가지 제품에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매트릭스

처음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었을 때, 머릿속 디자인은 정말 단순했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버핏과 멍거의 머릿속을 기본 컨셉(이게 제일 어려운 일)으로 조건 한 두 개만 넣으면 내재가치와 가격이 나오는 구조였다. 이미 시나리오별 현금흐름할인법(DCF)를 하는 나만의 복잡한 분석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굳이 각잡고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 가볍게 10초 만에 계산할 수 있으면서 DCF와 비교해서 오차가 적은 계산기면 충분했다. 싼지 비싼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계산기.

그럼 지금 내재가치 계산기는 어떤 상태일까. 열역학 제2법칙 처럼 엔트로피(무질서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싼가 비싼가에 좋은가 나쁜가 까지 보고 싶어지면서 단순한 디자인에서 보고 싶은 숫자들을 하나 둘 추가하다보니 결국은 기존 복잡한 분석틀에 거의 가까운 모델이 되어 버렸다. 이럴거면 굳이 10초 계산기를 만들 이유가…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중요도가 낮은 정보들을 제거해 나갔다. 재밌는 건, 추가할 때보다 줄여 나갈 때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됐다.

이전에 주식 투자는 어렵다라는 글에서 장기 투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자를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불행히도, 장기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고 순식간에 매수매도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지금, 장기적으로 사고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투자는 지능의 제일 높은 수준인 단순함과 인내를 통한 장기투자가 결합되어야 한다. 둘 모두 일반인이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그레이엄과 멍거와 버핏은 단순함에 이른 사람들이자 지능보다 기질의 중요성을 깨친 사람들이다.

“저는 항상 하나의 인사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사업을 소유하는 것에 찬성하는 논거는 한 줄짜리 9포인트 글꼴로 몇 페이지에 걸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투자의 결과는 명함 뒷면에 여백을 두고 모두 적을 수 있습니다.”
– 피터 키프, Rockbridge capital management

블로그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함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이것 저것 기능이나 플러그인이 추가되기 시작하면 곧 단순함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제외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블로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투자나 블로그나 비슷한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