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인상적인 장면

주말에 투자 전략 지도를 가지고 놀면서 또 하나 한 일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4회까지 시청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나는 항상 이런 것에 늦다. 이거 완전 오징어게임의 요리버전이구만 하는 생각으로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한식대첩 승자 백수저 이영숙님과 장사천재 흑수저 조사장의 대결이었다.

흑백요리사

우둔살을 재료로 한 대결이었는데 작은 놋그릇에 담긴 미소곰탕과 전립투구 위에 차려진 풍성한 샤브샤브가 대조적이었다. 바로 며칠 전, 단순함에 대한 글 하나를 올렸던터라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미소곰탕이름과 비슷하게 미소짓는 그림이다..^^

단순성 지도

요리나 투자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한다.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접목시켜 나가면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앞으로 전진하면서 차차 실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장사천재 조사장은 위 그래프의 6~8레벨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단계에선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될수록 더 많이 시도하고 싶어진다. 이영숙님은 몰라도 9~10레벨에 있지 않을까. 고수는 음식을 깊이 이해하여 몇 가지 고품질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여 겉보기에는 절제된 듯하지만 맛은 놀라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10년동안 되게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달려왔다 생각했는데, 참 덜어 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진짜 너무 크게 깨달았어요.” 대결이 끝난 후 흑수저 조사장의 말이다.

주말에 투자 전략 지도를 가지고 놀면서 흑백요리사를 봤기 때문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요리와 투자에 대한 생각들, 복잡함과 단순함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뒤엉켰다. 투자 전략 지도에서 더 빼야 할 것은 없는가? 이 지도만 보면 좋은지 나쁜지를 90% 이상 정확도로 가려낼 수 있는가? 그리고 흑백요리사 같은 프로그램을 투자분석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재야 고수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기업분석 대결같은..ㅋ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입니다. 무언가를 단순하게 만들고, 근본적인 과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우아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미니멀리즘이나 잡동사니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성의 깊이를 파헤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진정으로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필수적이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돌아가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거금을 들여 잭 니클라우스와 함께 라운딩하면서 지도를 바랬는데 라운딩 중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장이 조언을 부탁했더니 잭 니클라우스는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Do not head up.” 머리를 들지 마세요. 버핏에게 물으면 “절대로 돈을 잃지 마세요.”라고 할 것이다. 멍거는 아마도 “나쁜 기업은 멀리 하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끝으로 넷플릭스 투자 전략 지도. 요리가 결국 좋은가, 맛있는가로 귀결된다면 투자는 결국 좋은가, 싼가로 귀결된다. 넷플릭스는 좋은가? 그리고 싼가?

넷틀릭스 투자 전략 지도

넷플릭스의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굴까? 디즈니, 아마존, 웨이브, 쿠팡플레이와 티빙 같은 동종업체일까, 아니면 유튜브일까?

TV 점유율

단순함에 필요한 에너지

좋은 투자의 조건을 단순함이라고 했는데, 경험상 단순함으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소수의 천재들은 보는 즉시 단 한번에 단순함으로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둔재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많은 길을 굽이굽이 돌고 나서 보면 그제서야 단순함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으며 이를 되살리기 위한 주요 이니셔티브 중 하나는 애플의 제품 라인을 단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잡스는 회사의 제품 로드맵에 대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잡스는 분명히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만해… 미친 짓이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가서 2×2 행렬을 그려서 Apple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했는데, 그것은 4가지 제품에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매트릭스

처음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었을 때, 머릿속 디자인은 정말 단순했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버핏과 멍거의 머릿속을 기본 컨셉(이게 제일 어려운 일)으로 조건 한 두 개만 넣으면 내재가치와 가격이 나오는 구조였다. 이미 시나리오별 현금흐름할인법(DCF)를 하는 나만의 복잡한 분석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굳이 각잡고 분석으로 들어가기 전, 가볍게 10초 만에 계산할 수 있으면서 DCF와 비교해서 오차가 적은 계산기면 충분했다. 싼지 비싼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계산기.

그럼 지금 내재가치 계산기는 어떤 상태일까. 열역학 제2법칙 처럼 엔트로피(무질서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싼가 비싼가에 좋은가 나쁜가 까지 보고 싶어지면서 단순한 디자인에서 보고 싶은 숫자들을 하나 둘 추가하다보니 결국은 기존 복잡한 분석틀에 거의 가까운 모델이 되어 버렸다. 이럴거면 굳이 10초 계산기를 만들 이유가…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중요도가 낮은 정보들을 제거해 나갔다. 재밌는 건, 추가할 때보다 줄여 나갈 때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됐다.

이전에 주식 투자는 어렵다라는 글에서 장기 투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자를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불행히도, 장기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고 순식간에 매수매도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지금, 장기적으로 사고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졌다. 투자는 지능의 제일 높은 수준인 단순함과 인내를 통한 장기투자가 결합되어야 한다. 둘 모두 일반인이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그레이엄과 멍거와 버핏은 단순함에 이른 사람들이자 지능보다 기질의 중요성을 깨친 사람들이다.

“저는 항상 하나의 인사이트를 찾고 있습니다. 사업을 소유하는 것에 찬성하는 논거는 한 줄짜리 9포인트 글꼴로 몇 페이지에 걸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투자의 결과는 명함 뒷면에 여백을 두고 모두 적을 수 있습니다.”
– 피터 키프, Rockbridge capital management

블로그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함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이것 저것 기능이나 플러그인이 추가되기 시작하면 곧 단순함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제외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물론 블로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서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투자나 블로그나 비슷한 점이 많다.

좋은 투자의 조건, 단순함 그리고 명확함

심플한 것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디자인이 심플하고 단순한 걸 좋아한다. 일상 속 루틴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걸 선호하는 편이다. 뭔가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뭔가를 깊이 이해하고 나면 군더더기를 걷어 낸 핵심만 남게 된다는 주의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체크리스트를 만들 게 되지만 시간과 경험이 늘어날수록 체크리스트는 줄어든다. 만약 충분히 줄어들지 않았다면 아직 충분히 깊이 들어가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좋은 투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투자고민

내게 좋은 투자의 조건,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단순함이다. 투자아이디어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 단 한 줄로 투자이유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엑셀이 필요하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투자대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단순해진다.

그래서 능력 범위(circle of competence)가 중요하다. 자신이 가진 능력 범위의 경계를 스스로 아는 게 중요하고 능력 범위를 넓혀 가는 게 중요하다. 능력 범위의 크기보단 스스로 경계나 한계를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능력 범위는 누구나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법은 변호사를 찾고, 아프면 의사를 찾고, 배고프면 요리사를 찾는다. 하지만 투자에서 그렇지 않다. 건설회사에도 투자하고 식품회사에도 투자하고 헬스관련 기업에도 2차전지, 반도체, 생명공학이나 제약 기업에도 투자에 거침이 없다.

“좋은 아이디어에는 명확성이 필요합니다. 왜 무언가가 좋은 사업인지, 어떻게 그리고 왜 저렴한지, 왜 일시적으로 저렴한지, 그리고 평소라면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워런 버핏이 말했듯이, 당신은 스프레드시트의 40페이지에 앉아서 사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당신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명확하지 않거나, 생각만큼 인상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식을 소유하는 이유를 몇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힘든 일은 여러분을 그 지점으로 이끄는 가정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일을 했다면 실제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해집니다. 우리가 벌어들인 돈 중 가장 많은 것은 우리가 한 방식으로 보면 꽤 명백한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 조엘 그린블라트

아인슈타인도 이런 단순함의 힘을 일찌감치 인식했다. 그는 지능의 5가지 수준이 “똑똑함, 지성적, 훌륭함, 천재성, 단순함”이라고 언급하면서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능이라고 말했다. 투자할 때, 한 줄로 설명하지 못하고 엑셀을 실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패스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경고 신호다.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능력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경고 신호다.

아인슈타인

그래서 내재가치 계산은 마지막 단계다. 밸류에이션 계산으로 들어가기 전 전제조건이 있다. 버핏은 눈 앞에 있는 기업이 절대적으로 확실해야 한다고 했다. 경영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이 향후 십 년 이상 확실하게 들어온다는 절대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10년 후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씨즈캔디는 팔릴거고 10년 후에도 코카콜라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선택될 것이고 10년 후에도 사람들은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할 것이다. 만일 10년 뒤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데 베팅하는 사람이 있다면 버핏은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그럴것이라는 데 베팅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위에 있는 분야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요. 나는 사람들이 나보다 유리한 게임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현명하고 나는 멍청한 게임에서는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나는 현명하고 남들은 멍청한 게임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잘 작동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멍청한 경쟁자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들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줍니다.”

“당신은 당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적성을 가지고 있고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게임을 한다면, 당신은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예측만큼이나 확실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우위가 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역량 범위 내에서 플레이해야 합니다.”

– 찰리 멍거

멍거에게도 이 점은 명확했다. 자신이 반대의견을 가질 자격이 있으려면 적어도 자신의 반대편에 서있는 가장 똑똑한 사람과도 토론해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릭 게린은 멍거를 처음 만나자마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멍거의 거래상대자가 아니라 멍거쪽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오늘도 당신의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 건너편에는 당신에게 주식을 매도하거나 매수하려는 거래 상대방이 있다. 적어도 그 사람보다 당신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는가? 당신이 매수하거나 매도하려는 회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만약 10년 동안 거래소 문이 닫히고 증권사 문이 닫혀 매수매도를 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동요가 없을 수 있겠는가? 10년 후에도 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당신은 그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가? 인생에 단 20번만 거래가 가능하다면 지금 그 한 번을 사용하겠는가? 매수 이유를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가?

“결국, 거기에는 거대한 우주가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만큼 그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어서 특정 종류의 투자를 남겨두어야 한다면,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기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찰리 멍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