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으로 쓴 글

AI도 결국 의식의 흐름 아닐까

이번 글은 그저 생각나는대로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써 본다. 논리도 맥락도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공간에서 내가 생각나는대로 적겠다는데 누가 뭐라하겠는가.

며칠 전 갓난아기와 프로 권투선수가 함께 링 위에 서있는 그림을 올린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내 머릿속 권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록키’다. 어렸을 때 인상깊게 봤기 때문인지 권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대부분 록키의 장면들이다. 최근 어떤 글을 읽다가 록키의 아폴로 역(아폴로 크리드를 연기한 배우 칼 웨더스는 NFL 프로 풋볼선수 출신, 아래 사진의 왼쪽 선수)에 실제 권투 선수였던 켄 노턴이 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출연하지 못했다고 한다.

록키와 아폴로

켄 노턴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세상에…내가 최고의 권투선수라고 생각하는 알리를 이겼던 선수였다. 알리는 통상 5패를 했는데 그 다섯 명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켄 노턴에 대해 찾아보다가 그를 가르쳤던 코치 Eddie Futch를 알게 됐다. 에디 퍼치를 살펴 보니 세상에나!!! 알리를 이긴 5명의 선수 중 무려 4명이 에디 퍼치의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개의 AI에게 에디 퍼치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더니 여전히(?) 올바르지 않은 정보들이 뒤섞여 있기에 약간의 수정을 해서 눈에 띄는 부분과 궁금했던 부분들만 정리했다. 내게 AI는 여전히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한 신입사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내가 왜 얘를 가르쳐야 하지?! 내가 왜 얘가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말을 믿어야 하지?

“그는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 Joe Louis(조 루이스)와 스파링 파트너로 활동하며 권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았습니다. Joe Louis와의 스파링에서 루이스가 “너를 때리면 내가 날카로운 걸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빠르고 영리한 복서였습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트레이너의 길을 택했습니다.”

“에디 퍼치는 권투를 “과학”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는 “권투는 체육관에 들어가서 그냥 때리는 게 아니다. 기술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고 강조하며, 철저한 분석과 전략으로 유명했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제자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훈련을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레이저에게는 알리의 머리를 피하며 몸통을 공략하라는 지시를, 노턴에게는 잽 타이밍을 맞추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스핑크스1의 젊음과 스피드를 살려 알리를 지치게 했습니다. 홈즈는 알리보다 긴 리치를 이용해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게 했습니다. 퍼치는 “너무 가까이 붙지 말고 알리가 다가오면 잽으로 찔러라”라고 조언했고, 홈즈는 이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퍼치는 각 파이터의 신체 조건과 스타일을 고려해 훈련을 설계했습니다. 프레이저는 근접전, 노튼은 방어와 반격, 스핑크스는 스피드, 홈즈는 잽과 리치로 알리를 공략했습니다.”

갓난아기와 같은 권투 초보자를 그 사람에 맞는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과 철저한 분석을 통해 승리를 만들어 낸 사람. 지금 내가 매수하는 주식의 반대편에는 매도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사각의 링에서 죽기살기로 주먹을 교환하는 권투선수들과 다른 점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다는 점과 투자는 운의 영향이 권투보다 훨씬 크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대를 반드시 이겨야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에선 지지만 않아도 이긴다.

어쩌면 내가 블로그에서 별 영양가없는 투자관련 글을 쓰는 것도 나 자신 켄 노턴이 아니라 에디 퍼치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내 주변에 무수히 많은 챔피언들이 생겨나고 시장을 이기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최소한 시장에 지지만 않는 사람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퍼치는 될성부른 재목임은 분명한데 기가 거센 야생마를 조련하는데 명수였다. 87-90년 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말론 스탈링이 훈련중 거만을 떨자 “말론, 난 네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쳤어, 그러나 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아직)네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어”라고 콧대를 꺾어 놨던 일화는 유명하다.”

  1. 미국 위키피디아를 보니 “그가 훈련시킨 선수로는 무하마드 알리를 물리친 5명 중 4명인 조 프레이저 , 켄 노튼 , 래리 홈즈 , 트레버 버빅이 있다.”라고 적혀 있다…ㅋㅋ ↩︎

30년이 지나 보게 된 드라마 모래시계

내 나이또래 사람 중에서 드라마 모래시계를 안 본 사람이 있을까? 넷플릭스에 올라온 모래시계를 30년 만에 처음으로 보면서 왼쪽 상단에 표시된 날짜를 보니 1995년 1월 9일 방영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날은 약 한 달동안 합숙교육을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첫 달을 아예 TV를 볼 수 없던 곳에 있어 당시 귀가시계라고 불리면서 방영되는 시간엔 도로에 차가 없었단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드라마가 됐다. 나중에 재방송이나 어찌어찌 보려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보진 않고 지금까지…SBS 콘텐츠가 이번에 넷플릭스에 풀리면서 30년이 지나 이제는 당시 내 나이랑 비슷해지는 아이와 함께 보게 됐다.

30년이 지나 보면서 느낀 점. 아무리 제6공화국 초반 문민정부 시절이라지만 당시 80년 광주를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자료화면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드라마가 나왔다는 점에 놀랐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벌써 30년 전 드라마에서 그대로 묘사됐다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홍콩느와르식 조폭영화 아류인줄로만 알았었는데 내 선입견은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여지없이 깨졌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남성훈, 조경환, 김영애, 김인문 같은 훌륭한 연기자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정재, 조민수, 이승연, 김보성, 김정연, 홍경인, 손현주 같은 주연 배우들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발되기 전 정동진역 같은 90년대 중반 풍경과 당시 사람사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 추억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너스였지만 정의로운 검사나 사명감있는 기자 같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유물(?)을 보는 씁쓸함도 있었.

모래시계 마지막 장면

평균 시청률 46%에 위 장면이 들어가는 마지막 회 시청률이 무려 64.5%였다고 하니 이 드라마를 안 본 나같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듯..사진은 딱 봐도 지리산!! 95년 아님 96년인가 여름에 지리산 3박 4일 종주했던 기억도 난다..^^ 지리산 종주를 한 이유는 모래시계때문에 간 게 아니라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는 50명 남짓한 사람들 속에서 뜻밖에 아는 사람을 만났던 기억때문에 내겐 잊지 못할 산이다.

“이제 그만 보내줘.
어디로
어디든 여기 아닌데로

이 사람 이렇게 보내는 걸로 뭐가 해결됐어?
아직은 아무것도..
그런데 꼭 보내야 했어?
아직이라고 말했잖아. 아직은 몰라..

그럼 언제쯤이냐고 친구는 묻는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먼저 간 친구는 말했다.
그 다음이 문제야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그걸 잊지말라고.”

두 친구 중 한 사람은 계엄군으로 한 사람은 시민군으로 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두 사람의 삶은 큰 변곡점을 맞는다. 주인공 내레이션처럼 ‘그 다음이 문제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다시 비정상적인 계엄을 경험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 것인지 그걸 잊지말아야 한다.

제목이 모래시계인 이유는 드라마 중 혜린 아버지 윤회장(박근형)이 혜린(고현정)에게 엄마랑 해외 여행을 갔다가 엄마가 사면서 들려줬다는 대사에서 나온다 : “이거 봐. 뭔가 뜻이 있는 거 같지 않냐. 한쪽 모래가 다 떨어지면 끝나는 게 꼭 우리 삶 같아.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끝이 있는 법이지.”

새로 접한 재밌는 설정, 삼국지평화

왜 고리타분한 삼국지 이야기일까? 삼국지평화는 또 뭘까? 최근 즐겨 보는 EBS 위대한 수업에서 팡베이천 쓰촨대 교수의 정사 삼국지 강의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 삼국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또 아주 우연한 기회로 ‘삼국지평화’ 이야길 들었다. 찾아서 읽진 않겠지만 삼국지평화는 근래 새로 접한 흥미롭고 재밌는 설정이었다..^^

팡베이천 교수가 유비를 언급하는 강의 도입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도원결의(정사 삼국지에는 없다고 한다. 다만 침대를 같이 썼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있다고)를 맺은지 23년이 지났지만 실패만 거듭하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던 47살 유비가 화장실에 갔다가 일어서질 못하는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髀肉之嘆(비육지탄 : 허벅지 살을 보며 한탄하다) 하는 장면이었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며 근육으로 가득 찼던 허벅지가 살만 쪄있는 걸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기의 부족한 점에 대해 처음으로 각성하게 된다. 바야흐로 유비가 왕조로 레벨업 하게 되는 시작이 된 깨달음이다.

“미친 짓이란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유비, 조조, 손권으로 기억되거나 유비, 관우, 장비 혹은 제갈량으로 기억되는 삼국지에서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의 충격은 최후의 승자가 사마의라는 반전이었는데 근래에 접한 재밌는 설정은 ‘삼국지평화’라는 게 있어 삼국지 인물들의 전생을 초한지 인물들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거다. 삼국지 정사와 구전으로 내려 오는 내용을 나관중이 함께 엮어 삼국지연의를 썼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삼국지평화가 실제로 내려 오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삼국지평화 : 평화가 유행한 시대는 원대초기. 삼국지연의보다도 이전에 쓰인 삼국지 창작물로 당시 만담가였던 강사들의 화본이다. ‘평화’는 우리말로 하면 ‘구어체’ 정도 의미인데,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듯 쓴 역사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 말에 성은 사마, 이름은 모, 자는 중상(仲相)이라는 천재가 익주에 살고 있었다. 사마모는 매우 영리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나, 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던 영제 시절이라 가난한 그는 50살이 되도록 초야에 묻혀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염라대왕이 된다면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불평하는 원사를 써서 태웠는데 옥황상제가 그의 뜻을 알고 하룻밤 동안 임시 염라대왕을 시켰다. 옥황상제는 지옥에 35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송사들이 있는데 사마모가 이것을 공정하게 판결하면 내생에 복을 받고 그러지 못하면 방자하게 입을 놀린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사마모는 자신 있게 송사를 판결해 보겠다고 했고 이에 판관이 네 가지 송사를 내놓았다. 모두 전한 초기의 사건으로 350년 이상 끌어 온 것이었다. 사마모는 문서를 읽고 원고와 피고를 모두 부르고 관련 있는 사람들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판결을 내렸다.”

“책은 후한 말기의 혼란과 십상시의 전횡을 묘사하며 바로 소설로 진입하는 ‘삼국지연의’와 달리 조조·유비·손권의 환생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의 건국 과정에 큰 공을 세우고도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팽월·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해서 한 헌제로 환생한 고조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유방에게서 독립하라고 말하는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군사로 활약한다. 저승의 판결을 내린 사마중상은 사마의로 환생해 진나라 건국의 기초를 놓는다.”

독서하는 제갈량


어릴적 삼국지를 읽을 때부터 워낙 제갈량을 좋아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전쟁에서 돋보이는 장수나 호걸 영웅보다 전략을 세우고 지략으로 승부하는 제갈량에 눈길이 갔다. 팡베이천 교수의 강의를 듣다 보니 제갈량은 27년 동안 준비를 하고 27년 동안 실행을 한 후 54세에 삶을 마감했는데 특히 27년 준비의 대부분은 친구와의 사귐과 무엇보다 주경야독(제갈량은 12년간 농사를 직접 지었다)의 독서, 특히 제갈량의 독특한 독서법은 주로 역사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육지탄 후 각성한 유비가 인재를 찾아 돌아다닐 때 그때 교우를 나눈 스승(사마휘)과 친구(서서)의 천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친구들과의 정보 교류와 독서를 통한 올바른 정세 판단으로 천하삼분지계를 유비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

“유비가 조금 전 양양성에서 채모에게 암살당할 뻔한 일을 털어놓자, 사마휘는 유비에게 계속 그런 수난을 당하는 건 밑에 쓸 만한 인재가 없어서 그렇다고 얘기했는데, 유비는 이에 놀라면서 비록 세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도 관우, 장비, 조운, 간옹, 손건, 미축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여럿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마휘는 이에 대해 관우나 장비, 조운은 분명 만 명의 적군을 능히 당해낼 만한 용맹한 장수들이지만 그들을 제대로 부릴 인재가 없다고 했고, 간옹, 손건, 미축은 시무에는 능하나 군략은 부족한 이들이라 가장 중요한 군사(軍師)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와룡봉추(제갈량과 방통, 제갈량이 정석을 기반으로 한 완벽하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정파같은 전략을 세운다면, 방통은 대담하고 훨씬 유동적인 상황 변화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데 능해 마치 사파와 같은 전략을 많이 세웠다) 같은 인재를 얻어야 하며, 이들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유비는 제갈량을 만난 후 승승장구했고 버핏은 그레이엄을 만난 후 승승장구했다. 제갈량과 멍거의 독서법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미래를 결정하는 데 역사보다 더 나은 교사는 없습니다… 30달러짜리 역사책에는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답이 있습니다.”
– 찰리 멍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