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에 이른 책의 흐름

최근에 읽은 책이 “다산의 마지막 습관”이다. 다산(정약용의 호, 강진 유배시절 차가 많이 나는 산 이름을 따서 지음)이 말년에 ‘小學’으로 몸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돌아갔다는 내용(마음을 다스리는 ‘心經’은 ‘다산의 마지막 공부’로 같은 저자가 출간)인데 최근 계엄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책 내용이 내게 더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산의 생각처럼 우리가 배울 모든 것은 이미 초등학교에서 다 배웠으니 고위 공직자들이 몰라서 안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에게 하도 실망해서 이참에 여유당전서에 있는 ‘목민심서’를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왜 다산전서가 아니라 여유당전서일까 싶었다. 다산이 호라면 여유당은 두물머리에 있는 당호(집의 호를 말하지만 주인을 칭하기도 한다)다. 다산이 직접 당호를 지었다고 하는데 도덕경 15장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내 병은 내가 알고 있다. 용기는 있지만 지모(智謀)가 없으며,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마음에 따라 곧바로 행하고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만 둘 수 있는 일이지만 진실로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실로 마음에 걸리거나 통쾌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서는 일찍이 세속을 초월함에 치달리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과거공부에 빠져 돌아보지 않았으며, 서른 살이 넘어서는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깊이 진술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을 좋아하여 싫어할 줄을 몰랐으나 홀로 비방을 많이 받았다. 아! 이것 또한 운명인가? 성품이 이에 있으니 어찌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겠는가?”

정약용은 자신이 비방을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 바로 자신의 이런 기질에 있다고 본 것이다. 정약용이 지침으로 찾은 구절은 가장 널리 알려진 왕필본 도덕경 15장의 바로 이 구절이다.

豫焉若冬涉川(예언약동섭천) : 겨울에 개울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신중하다

이 구절의 첫 두 글자를 가져와 당호로 썼다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유’가 되어야 할텐데 왜 ‘여유’가 됐을까? 왕필본 보다 조금 앞선 하상공본 도덕경(이 두 개를 통상 통행본이라 한다)을 보면 다음과 같다.

與兮若冬涉川(여혜약동섭천) : 겨울에 개울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신중하다

1973년 호북성 장사시 마왕퇴 한나라 묘지에서 발견된 백서본(백서갑과 백서을, 전국시대 말기 추정) 도덕경에도 ‘예’가 아닌 ‘여’로 되어 있지만 200년 전 정약용이 백서본을 봤을리 없을테니 아무래도 왕필본이 아닌 하상공본 도덕경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중국에는 왕필본(학자층이 주로 사용)이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하상공본(중국 민간이 주로 사용)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1993년 중국 호북성의 곽점촌에서 죽간 형태로 발굴된, 현재로선 가장 오래된 곽점본 도덕경(전국시대 중 후기)에는 이것이 夜로 되어 있고 해설을 찾아 보니 豫의 가차자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추측컨대 한자의 予는 나/줄 여 라고들 하는데 ‘미리’를 뜻하는 豫의 약자로도 쓰인다. “予는 豫(미리 예)의 성부이며, 속자(俗字)이기도 하다. 다만 予는 쓰임이 그리 많지 않고, 與(줄 여), 豫(미리 예)에 대부분의 용례를 빼앗긴 형편이다.” 대충 이런 흐름으로 與가 되지 않았을까?!

대충 눈치 챘겠지만 다산의 책을 읽다가 기어이(?) 도덕경의 판본에 이르렀고 평소 벼르고 있던 도덕경의 가장 원형이라는 곽점본 도덕경을 읽기에 이르렀다..ㅋ

죽간에 반영된 노자의 언어

이 책을 읽어 보면 우리가 알던 도덕경이 도덕경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도덕경하면 누구나 먼저 떠오르는 제 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조차 곽점본에는 없다. 백서본에서부터 있는데 이조차 ‘도가도 비상도’가 아니라 道可道 非恒道다. 한나라 5대 황제의 이름을 피휘해야 해서 후대에 恒을 常으로 바꿔썼다. 이런 피휘는 문서의 작성 연도를 파악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마천 사기에 적힌대로 노자가 함곡관을 넘어가면서 5천자 도덕경을 남겼다고 했지만 곽점본 원형을 보면 단 2002자 뿐이다. 또 백서본을 보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으로 도경이 뒤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노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오래전 읽은 노자 도덕경(왕필본을 읽었다)은 내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책이다. 특히 36장이 특별하게 다가왔었는데 이번에 읽어 보니 곽점본에는 내가 좋아하는 36장이 없었다. 아마도 후대 도가, 법가들이 도덕경에 통치술을 추가하면서 들어간 부분일텐데 36장 뒷 부분은 얼마전 읽은 장자 외편에도 그대로 나오는 걸로 봐선 메이광 교수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36장의 ‘거두어들이고자 한다면’이 포함된 구절에 대해 왕필은 횡포에 대항하고 폭동을 없애는 수단을 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논변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팩트는 매우 간단합니다. 이런 장절(가령 7장, 36장)들은 후대에 추가시킨 것들이며 원래 ‘노자’의 내용에는 속해 있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 메이광

이번에 도덕경 판본을 따라가면서 또 느꼈지만 모든 원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현학적이지 않고 투박하다. 곽점본 제일 첫 장은 다음으로 시작한다. 통행본 19장 내용으로 곽점본 노자 출간 이후 철학사상계에 가장 큰 파장을 가져다 준 장절 중 하나다. 특히 도가가 유가를 배척하는 대표적인 구문으로 알려져 왔던 통행본 문장(절성기지, 절인기의, 효와 자애)이 곽점본에는 다르게 적혀 있다(절지기변, 절위기려, 계자).

앎과 말재주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된다. 술수와 이익을 버리면 도적은 사라진다. 행하려는 마음과 사사로운 걱정을 버리면 백성들은 아이처럼 순수한 상태로 돌아간다. 이 세 문구로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또 이렇게 당부할 수도 있겠다. ‘투박함을 지니고 사리사욕을 줄여라’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투자관련 책들을 한동안 읽지 않았다. 신간이 나오면 훑어 보긴 했지만 각잡고 정독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해외 블로거들의 숙성된 글들을 읽는 게 들인 시간 대비 효율이 훨씬 더 나았다. 그러고 보면 난 철저히 합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자에 가깝다. 지난 주말, 언젠가 꼭 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었던 미국 드라마를 꽤 긴 시간(1부만 8회) 집중해서 봤는데 드라마 주인공의 삶에 대한 생각이 나랑 겹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마지막회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경험과 그에 대한 회상은 내 머리를 해킹한줄 알았을 정도..ㅎ

다시 투자로 돌아가서 책을 안읽다가 삶의 어떤 흐름때문인지 지금은 많이 시들해진(?) 퀀트에 대한 책을 연달아 3권 읽었는데 하나는 퀀트의 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과 실행 방법, 특히 백테스트를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꽤 성실하게 설명하는 책으로 퀀트 초보자용 책이다. 이전 퀀트책들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사항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책들이 많았다. 다른 하나는 퀀트를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회 초년생들을 주 타겟으로 한 책으로 책의 특성상 금융공학에 대해 꽤 깊숙히 들어가긴 했지만 전문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약간 길을 잃은듯 보였다. 직업으로 퀀트를 하려는 특정 소수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두 책 모두 퀀트에서 내가 찾던 내용은 전혀 없었다. 주식 관련 책을 읽거나 동영상을 보고 나서 모두가 하는 질문, ‘그래서 뭐 사요?’ 와 마찬가지로 퀀트 책을 읽는 목적은 하나다. ‘그래서 어떤 전략이 제일 좋은거요?’ 물론 나를 포함 모두들 성배를 꿈꾸며 이런 질문으로 책을 찾지만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뭘 사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필터링해서 어떤 전략을 사용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뭘 사도 손실을 볼 수 있고 어떤 퀀트 전략을 사용하더라도 돈을 잃을 수도 있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 동안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며, 한 해도 손실없이 연평균 29.2%의 수익률을 기록한 피터 린치에 의하면 자신의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돈을 번줄 알았지만 나중에 살펴 보니 가입자의 절반 정도는 수익이 아닌 손실을 보고 떠났다고 한다. 마젤란 펀드가 높은 수익률일 때 뉴스를 보고 들어왔다가 손실이 나자 너무 빨리 다른 펀드로 갈아 탔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선 황소도 돈을 벌고 곰도 돈을 벌지만 돼지는 도살당한다.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그래서 잡은 세번째 책은 제목처럼 퀀트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오쇼너시가 쓴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이다. 비쌀 때 사는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책에서는 역시 싸게 살 것을 강조한다. 투자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물론 싸다는 것에도 많은 함의가 숨어 있다). 초판에서는 필립 피셔의 아들 켄 피셔가 주창한 PSR을 최고 전략으로 소개했지만 이번 4판(미국에서는 2011년 출간)에서는 VC2 전략(PER PBR PSR PCR EV/EBITDA 주주수익률)을 권하면서 가격 모멘텀(6개월)을 추가했다. PSR이 1년에 한번으로는 좋은 전략이었지만 1년을 매월 새로 진입하는 12번으로 나눠 분석해 보니 VC2전략이 더 나았다고 한다.

“스토리가 좋아서 주식을 매수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주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악의 성과를 냈다. 모두가 이들을 이야기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종종 PER, PBR, PSR이 매우 높다. 단기적으로는 매우 호소력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치명적이다. 이들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항상 개별 주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전략 관점에서 생각하라. 한 기업의 데이터는 매우 설득력 있을 수 있지만 무의미하다. 반대로 단순히 단기적으로 상황이 나쁘다는 이유로 시장이나 주식을 피하지 말라…그러나 도입부에 인용한 괴테의 말처럼 행동은 어렵고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략을 사용할 수 없어서 그날그날 주목받는 주식에 사로잡힌다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크게 낮아진다.”
– 제임스 오셔너시, 월가의 퀀트 투자 바이블

핵심은 PER든 PBR이든 PSR이든 PCR이든 EV/EBITDA든 어떤 지표로 분석하더라도 비싼 그룹보다 싼 그룹의 수익률이 거의 대부분 좋았다는 것을 백테스트를 통해 밝혔다. “시장은 오랜 기간 여러 순환 주기에 걸쳐 어떤 특성(예컨대 저PER, 저PCR, 저PSR)에는 일관되게 보상하고, 어떤 특성(고PER, 고PCR, 고PSR)에는 일관되게 응징한다.” 책은 800페이지가 넘는 두께지만 퀀트 결과를 동일하게 분석한 부분이 많아 금방 읽었다. 마지막 우리나라 시장에 적용한 결과도 읽어 볼만 했다.

몇 년 전 이미 퀀트에 대해 깊이 공부했었지만 아무래도 난 합리적 실용주의자인지라 퀀트로 나온 몇 십개의 기업들을 한꺼번에 샀다가 1년이나 혹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일괄적으로 리밸런싱하는 식의 방법을 무조건 수용하긴 어려워 퀀트를 보조적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퀀트의 핵심은 성공률이 높은 전략을 찾아 내서 백테스트를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결과가 벤치마크보다 뒤처지더라도 꾸준히 전략을 따라가는 데 있는데 그러려면 전략에 대한 올바른 백테스트와 결과에 대한 믿음이 핵심이다. 대부분은 올바른 백테스트에서부터 실패한다. 특히 믿음은 직접 흘린 땀에서 나온다. 시장을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무디스의 모든 페이지를 두 번이나 넘기며 기업을 찾았습니다. 세상은 좋은 거래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내야 합니다.”
– 워런 버핏

투자에선 황소가 됐든 곰이 됐든 일관성을 가지고 끝까지 버틴 인내심 많은 사람에게 돈이 가게 된다. 물론 시장에는 투자자든 트레이더든 퀀터든간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인간 본성 탓에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는 과거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돼지같은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인덱스펀드가 효과적인 이유는 대형주를 매수하는 아주 단순한 전략을 일관되게 실행하게 해서 시장의 수많은 돼지를 ‘강제로’ 황소로 바꾸기 때문이다. 인덱스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늑대나 여우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자들의 공통점 하나는 바로 일관성이고 이는 높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일관성 유지가 열쇠
장기적으로 초과수익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합리적인 투자 전략을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모닝스타의 10년 단위 분석에 의하면 펀드의 70%가 S&P500 성과에 못 미쳤다. 펀드매니저들이 한 가지 전략을 시종일관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장기 성과가 망가진다.”
– 제임스 오셔너시, 월가의 퀀트투자 바이블 서문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간지 사시사이에 들어 있는 빛나는 인용문이다^^

  • 좋은 정보가 전투의 90%를 좌우한다 – 나폴레옹
  •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 괴테
  • 우리는 적을 만났다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월트 켈리
  • 정돈과 단순화는 한 분야에 통달하는 첫걸음이다 – 토마스 만
  • 돈 버는 일에는 모두의 종교가 하나다 – 볼테르
  • 관습에 반하는 길을 가라 거의 언제나 잘 풀릴 것이다 – 장 자크 루소
  • 현명해지려면 진리를 발견하는 것보다 환상을 깨는 것이 낫다 – 루트비히 뵈르네
  • 가던 길을 바꾸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노자
  • 사람은 사실을 보고 싶은 대로 그리기 십상이다 – 이솝
  • 전망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예술이다 – 조너선 스위프트
  • 나의 불행보다는 남의 불행을 통해 현명해지는 것이 훨씬 낫다 – 이솝
  • 합리적인 인간은 네스호의 괴물처럼, 보았다는 사람은 많아도 사진에 찍힌 적은 아주 드물다 – 데이비드 드레먼
  • 발견은 남들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 아는 것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는 게 아닌 것 때문에 피해를 본다 – 아르테무스 워드
  • 언제나 가장 빠른 자가 경주에서 이기고 가장 힘센 자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기를 걸 때에는 여기에 걸어야 한다 – 데이먼 러니언
  •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다 – 토머스 헉슬리
  • 인간의 감정은 아는 것에 반비례한다 더 적게 알수록 더 쉽게 뜨거워진다 – 버트런드 러셀
  • 모든 진리는 일단 발견하고 나면 이해하기 쉽다 요점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 팩트는 무시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 올더스 헉슬리
  • 모든 것을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본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 노자
  •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 미래를 판단하는 기준은 과거뿐이다 – 패트릭 헨리
  • 생각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 괴테

추가) “근본적으로, 저는 평생 인용구 중독자였어요. 똑같아요. 그래서 저는 인용구로 가득 찬 공책을 보관했어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21살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제 생각에, 그것들을 합치면 엄청난 펀치를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큐레이팅하면요. 월가에서 효과가 있는 것들을 읽으면, 저는 모든 장을 짧은 인용문으로 시작해요.” – 오쇼너시

이번에 새 책(Two Thoughts, A Timeless Collection of Infinite Wisdom)을 썼는데 인용문 모음집과 비슷한 책인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0명의 사상가로부터 얻은 500가지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역시^^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좋아하는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이 나온 걸 얼마전에 알았다.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라는 제목으로 암호화폐 세계를 다룬 논픽션으로 한때 뉴스를 뒤덮었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BF)에 관한 이야기다. 연휴동안 책을 다 읽고 FTX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몇 개의 AI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DeepSeek의 결과가 제일 마음에 들 정도로 정리가 깔끔했다.

고잉인피니트 책표지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암호화폐 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창립자 샘이 금융시장의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m)라는 사실도, 알고 보니 ADHD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예, 아니오로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바로 이 점때문에 트레이딩도 게임처럼 초연할 수 있어 초단타 매매회사인 제인스트리트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엔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다가 파멸을 맞았다.

역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 알라메다 리서치를 먼저 설립해서 암호화폐 트레이딩을 했다가 후에 암호화페 거래소 FTX를 만들었다. 거래소로 들어온 고객들의 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옮겨 전용하다가 손실을 크게 봐서 뱅크런이 왔을 때 줄 돈이 없어 파산한줄 알았는데 나중에 정산해 보니 고객들에게 돌려주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ㅋ 문제는 단기로 들어 온 돈을 다른 암호화폐나 비상장기업 투자(트위터나 AI업체) 같은 중장기로 투자해서 만기일 미스매치가 난 게 컸다. 당시 암호화폐 가격의 급락에 따른 인출요구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지만 몇 가지 안좋은 일이 연속으로 겹치면서 시장에 미스매치가 드러나면서 먹잇감이 됐다.

마이클 루이스는 21년 말 샘과 주식교환을 검토하는 지인의 요청(샘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 달라는)으로 샘을 만나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고 이 책을 썼다. 공교롭게도 FTX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 본 목격자가 됐다. 21년 FTX의 매출은 10억 달러(20년 1억 달러)였는데 마이클 루이스가 처음 만나서 어느 정도의 돈을 제안하면 FTX를 매각하고 돈 버는 것 이외의 일을 할 것이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한 뒤 1,500억 달러라고 답한 뒤, “무한 달러”라고 생각한다고 번복했다. 아마도 이 말때문에 책 제목을 고잉 인피니트로 한 것 같다.

“무한은 그 어떤 경험, 관찰, 지식에 호소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유가 그 대상과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사유 과정이 대상의 실제 진행 과정과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현실에서 사유를 제거할 수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샘은 효율적 이타주의자였기 때문에 무한 달러가 필요한 이유는 지구상의 생명체인 인류가 맞닥뜨릴 수 있는 주된 존재적 위협을 해소할 계획(그것도 40세 이전에)을 세웠기 때문이다. 위협에는 핵전쟁,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전염병,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AI)도 포함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격들(트럼프도 그런 사람으로 판단했고 후에 얼마를 주면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인가 비밀 접촉을 한 것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한다..ㅋ) 산책이 끝날 무렵 마이클 루이스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샘과 주식을 교환해도 된다고 확답한다…여전히 샘이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로.

“언젠가 샘은 한국의 일부 종목이 오르면 정확히 12시간 뒤에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일본의 특정 종목이 덩달아 오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데이터를 찾아보자 과거에도 몇 달 동안 관련 종목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한국 주식이 오를 때 곧바로 일본 주식을 매수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인 스트리트 시스템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주식 가격이 오르고 12시간 뒤에 일본 주식이 상승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샘은 더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ETF가격을 한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마다 이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는 한국과 일본에서 대량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일과를 마치기 전에 한국 주식을 매수한 다음 일본 주식은 도쿄에 주재하는 동료가 일과 중에 주문하도록 맡겼다. 이제 제인 스트리트의 트레이더는 한국 ETF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 독일인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어떤한 비용을 야기했는지 깨닫기 전까지 신나게 일본 ETF를 매수하면 되는 것이다. 샘은 많은 거래의 성공이 다른 트레이더나 매매 알고리즘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다.”

샘은 암호화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다.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는데 이는 제인 스트리트에서 했던 일이다. 다만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7일 내내 돌아가므로 사람이 직접 하기보단 봇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는데 고등학교 수학캠프에서 만났고 같은 MIT 출신 중국계 게리 왕을 영입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게리가 암호화폐 거래소 선물시스템을 혼자 몇 일 만에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눈을 의심했다..ㅋㅋ

“한국에서 비트코인이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될 때 리플 코인은 25퍼센트 이상 더 비쌌다. 리플은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비정상성을 이용할 길을 터줬다. 한국에서 XRP를 매도해 확보한 원화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비트코인을 미국으로 보내 매도해서 달러를 마련한 다음 그 달러로 XRP를 매수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은 한국에서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되었지만 리플 토큰에서 얻은 25퍼센트의 수익으로 충분히 매수할 수 있었다. 거래에서 기대되는 수익은 당초 2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줄어들었지만 제인 스트리트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매매에 5~30초가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한때 샘은 차세대 워런 버핏으로 추앙받았던 사람이었다. 금융계에서 떠오른 신성이자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었지만 책을 보면 조직 경영은 한마디로 엉망 진창이었다. 들어온 돈 233억 3500만 달러, 나간 돈 144억 4300만 달러, 예탁금 30억 달러를 빼면 60억 달러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해킹(10억 달러)도 포함됐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다른 예도 들었습니까?

네. 세계를 위한 선에 대해 고민하는 맥락에서 동전 던지기를 언급했습니다. 뒷면이 나오면 세계가 멸망하지만 앞면이 나오면 선이 두 배로 증가한다면 동전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암호화폐 가격의 급등으로 예치금을 맡긴 사람들은 자신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라는 기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판사는 피고가 지구상의 생명체과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더라도 재앙을 모면할 확률이 미세하게 높을 뿐인 동전 던지기를 기꺼이 할 사람이자 이런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의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향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에 했던 그런 일들을 몇 번이고 반복할 사람으로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물론 모범수로 잘 생활하면 반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