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 유니버스 영화 발레리나 2025
훌륭한 투자자는 유전자가 만든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 규율이 만든 ‘철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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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투자자는 유전자가 만든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 규율이 만든 ‘철저한 사람’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AI가 쓸 수 없는 글을 고민한다는 얘기로 시작하는 글을 하나 썼었다. 엊그제 들은 팟캐스트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 ‘미키17’을 만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얘기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계약서에 감독판 편집 외 워너브러더스가 만든 편집판을 가지고 시사 관객들에게 일종의 A/B테스트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다고 했다. 거액을 투자하는 제작사의 입장도 있었겠지만 비록 감독의 거부권이 있었다고해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기분나쁠 일이다. 다행히(?) 평가는 감독판이 더 나은 것으로 나왔지만 이로인해 영화 개봉 일정이 예정보다 6개월 정도 지연됐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좋아하는 작가 장강명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선 차기작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AI 물결이 휩쓸고 간 바둑계를 취재한 이야기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에 바둑계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AI가 쓸 수 없는 글을 염두에 뒀듯 알파고 이후 바둑기사들 중에서는 AI가 둘 수 없는 수를 연구할 것이라는 기사들도 꽤 있었는데…지금 그런 말을 하는 프로기사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젠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오직 AI의 수를 새로운 정석으로 받아들이고 AI를 열심히 연구하는 기사들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알파고 이후 바둑의 모든 수는 확률로 계산된다. 이 수를 착점하면 승률이 2.48% 향상됩니다 같이 모든 착점은 숫자로 치환되는 세상이다. 지금 내가 블로그를 쓰는 걸로 예를 들면 이 단어를 사용하면 블로그 조회수가 0.73% 올라갑니다 쓰시렵니까? 혹은 영화를 예로 들면 이 장면보단 이 장면이 사람들의 몰입도를 1.57% 올릴 수 있습니다…같은 세상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시간에 골든크로스가 일어날 확률이 94%인 000주식을 매수하고 1.5% 수익이 난 순간에 자동 매도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예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AI가 로직대로 자동으로 매수매도를 반복하는 세상이다.
최초 알파고는 세상에 있는 기존의 모든 바둑 기보들을 미리 학습하는 방식으로 했다가 곧바로 기본적인 바둑 규칙만 알려 주고 스스로 바둑을 두면서 학습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인간이 1,000년 걸릴 시간의 대국을 AI는 3일도 안걸려 두고나서 기존 바둑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를 박살냈다. 투자에도 이와 비슷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 백만개의 미래를 본 뒤에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처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이런 수없이 많은 미래 시나리오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쓴 책에서도 사용했던 곳에 가면 누구나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볼 수 있다.
물론 규칙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바둑과 규칙이 매일 변하는 투자와는 다를 것이다. 어제까지 있었던 공매도가 하루아침에 금지되거나 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규칙들이 수도없이 추가되는 세상이다. AI가 지키는 규칙을 어기는 수많은 불법과 편법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들의 감정은 또 어떤가. 공포와 탐욕에 영향을 받는 감정의 기복을 감정이 없는 AI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AI학자 중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진정한 AGI가 되기 위해서는 AI도 인간의 몸을 가져야 한다고. 진정한 투자 전문 AI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게 가능하긴 할까.
얼마전 TV에 방영된 7세 고시 이야기를 다큐로 보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신문기사에는 더나가 4세 고시도 있다고 한다. 1년 전쯤 TV에서 10살 아이의 목표가 살아남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뜨악했던 기억도 난다. 어제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수능 만점을 받고 의대에 갔던 아이가 강남에서 연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내용이 나왔다. 장강명 작가에 의하면 이제 바둑을 관전하는 시청자들도 더이상 프로기사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두는 한수 한수를 음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옆에 AI프로그램을 놓고 대국을 따라 두면서 프로기사들의 착점을 AI 수와 비교하고 비판하면서 본다고 한다. 판사의 판결을 더 뛰어난 AI판결과 비교할 수 있는 세상, 의사의 진단을 더 정확한 AI진단과 비교할 수 있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지금처럼 판사와 의사들을 키워야 하는가. 4세부터 고시를 치루며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서 명문대에 보내고 나면, 의사와 판검사가 되어 그들이 마주칠 세상은 정녕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같을거라고 생각하는가. 뭐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러겠지만,
영화 ‘Her’의 AI는 마치 사랑스런 연인같다. 항상 좋은 말을 해주고 내 감정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붇돋아준다. 늘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해준다. 죽을때까지 연애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나를 위해 쓴소리 하나 없이 좋은 말만 해주는 연인이 옆에 있다면 행복할까? 내 주위나 SNS에 그런 사람들(혹은 AI들)로만 가득 있으면 내 기분은 좋아질까? 4세 고시를, 7세 고시를, 혹은 명문대를 들어가는 저 아이들 주변에는 쓴소리를 해줄 친구나 어른들이 있을까. 아니 그렇게 힘든 경쟁들을 통과하고나면 AI보다 더 잘 외울 수 있을까? AI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습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결국 진짜 AI를 만나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사이비 AI들을 만들어내고 있진 않은가? (이런 생각을 남기고 있는 나역시 옛날 사람이자 꼰대..ㅋㅋ)
이젠 아이들 모두 성인이라 비오는 날이면 아주 가끔씩 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아이들에게 삼겹살 먹자고 하면 삼겹살만 구워내는 게 아니라 버섯이며 마늘이며 신김치며 이것 저것 함께 구워 내준다. 삼겹살 먹자는 소리에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곁들여 준비하면 내가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마음이다. 소주도 한 잔 하자고 하면 아빠 건강생각해서 먹지말자고 손사레치며 말린다. 난 안먹을테니 너희들이라도 먹으라고 해도 옆에서 먹으면 먹고싶어 진다면서 자기들도 안먹겠다고 내게 쓴 소리와 배려를 함께 건넨다.
언젠가 무심코 한 말 중에 내 아이들을 (권리와 의무를 가진)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시켜 제 몫을 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물론 다른 시민들도 동시에 배려할 수 있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 아이가 군복무를 잘 마치고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기뻤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할 때도 정말 기쁠 것이다. 지금처럼 사이비 AI로 자라서 굳이 진짜 AI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설령 가정을 꾸리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더라도 굳이 남들이 다 가는 4세 7세 고시 같은 그런 길은 피하길 바란다. 그저 건강하고 따뜻한 인간 시민이면 됐다. 물론 이것도 쉽진 않다..^^
여름 휴가의 시작을 “퍼펙트 데이즈”와 함께 했고 휴가의 끝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와 함께 했다.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요즘은 영상도 활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제대로 각잡고 영화를 본 지도 오래 됐고 휴가를 다녀온 지도 벌써 까마득하다. 예전같으면 바로바로 여행기고 독후감이고 영화감상문을 SNS에 올렸겠지만 이젠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그냥 느꼈으면 됐지 굳이 남겨야 하나…생각이 앞선다.
그래도 이 영화는 보고 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았기에 이렇게라도 흔적을 남긴다. ‘괴물’을 볼까 ‘퍼펙트 데이즈’를 볼까 아주 짧게 고민하다 이 영화를 골랐는데 지나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중에 ‘괴물’을 챙겨 봤는데…생각보단 별로였다. 퍼펙트 데이즈는 생각보다 좋았고.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도쿄 시내 화장실 청소부의 반복된 하루를 켜켜이 쌓아서 보여준다.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 사람들과도 거리를 둔 채, 자신의 하루를 꾹꾹 채워 평범하지만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 간다.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친밀감, 그것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삶. 내가 노년에 꿈꾸는 삶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을 볼 줄 아는 삶. 미래를 위해 미루지 않고 지금 현재, 지금 이 순간, 찰나에 깨어 있는 삶.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맥주 한 잔, 지인들과의 스몰 토크…블로그에 글 하나 남길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그러고 보니 블로그도 유튜브나 틱톡같은 숏폼에 밀려 이젠 옛스런 느낌마저 든다.
숏폼에 밀린 블로그처럼 핸드폰 같은 디지털카메라에 밀린 필름카메라나 음원에 밀린 카세트테이프 같은 옛 것들, 아날로그 감성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서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음악도 귀에 익은 옛 것들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 잠들기 전 영화 포스터처럼 머리맡에 놓인 작은 등을 켜고 주말마다 들르는 헌책방에서 산 책을 읽는다. 윌리엄 포크너 책(야생 종려나무)을 읽기에 나중에 검색도 해봤었다. 아마도 빔 벤더스 감독에게 영감을 준 책이라 생각했다.
헌 책방 주인은 주인공이 골라 든 책에 대해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하며 덧붙인다. “같은 단어라도 이 작가가 사용하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같은 방식으로. 주인공이 화장실의 모든 부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책방에 있는 모든 책을 읽고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그런 주인이 카운터를 지키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헌 책방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