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SNS에 잡힌 인질 하나 또 구출

“2022년 11월에 있었던 송년회때 대화를 하다가 생긴 아이디어를 계기로 해외주식 재무제표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일주일만에 만들었다. 데이터가 문제일 뿐, 분석방법이야 국내주식이나 해외주식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능했다.

그리고 2023년 중반쯤 벤저민 그레이엄을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공부하면서 새롭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의 머릿속 10초 분석을 생각하면서 초간단 내재가치 계산기를 하나 만들었다. 그레이엄이 쓴 모든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은 꽤 길었지만 만들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애시당초 이걸 만들려고 시작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쥔 건 계산기(또는 체중계)가 됐다.

초간단계산기이므로 그야말로 초간단했었는데 현재(24년 1월) 버전 5까지 오며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추가되면서 처음 컨셉인 초간단은 사라지고 온갖 정보들이 덕지 덕지 붙은 복잡한 계산기가 돼 버렸다. 만들고나서 처음엔 간단한 계산기니까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해 놓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런 저런 정보들(다른 곳에서 가져온 정보들도 있다)이 추가되면서 복잡해지고나니 그냥 조용히 나만 사용하자로 바뀌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사실이다. 고립된 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 일어나며 감소하지 않는다. 질서는 무질서로 바뀌기 마련이다. 다시 버전 1로 되돌리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보고싶은 정보에 대한 갈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비가역적이다. 경제학 용어로 비탄력적이라고 할까..ㅋ 이젠 간단히 10초만에 기업의 개요를 확인하고 기초체력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간단한 허들을 만든 셈이다. 작년에 V1.0일 때 기본 아이디어를 살짝 공개하긴 했었다~”

딱 1년 전 SNS에 남긴 글이다. 그리고 다음은 댓글로 남겨 둔 글.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 사업에 대해서 즉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알지 못한다면 한 달을 주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 워런 버핏

“버핏은 기업 매도를 위한 전화를 받는 순간 기업의 질적 측면을 즉시 이해한다며, 지금까지 매수한 기업들을 분석하는 데 기껏해야 5~10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제가 살펴보고 있는 기업에 대해 찰리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그는 처음 보는 기업인데도, 거의 10초 안에 끝냅니다. 머릿속에서 그렇게 빨리 처리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제가 몇 주 동안 살펴보고 있던 기업이었는데, 그는 바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 모니시 파브라이

“배런스 기사를 읽은 후, 주식에 대한 멍거의 실사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참 아이러니인게 난 누구처럼 탭댄스를 추며 출근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업 재무제표 하나하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어 10년 넘은 스터디도 그만 두고 직접투자도 거의 안하고 맡겼는데 정작 남는 시간에 재무제표 분석 시스템을 만들었다..ㅋㅋㅋ 물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자동화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라고 본다. 돈은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버틀러나 스톡워치 같은 국내 사이트들이 잘 되길 바란다.”

구루포커스의 DCF계산기(유료고객만 4만명이 넘는다)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유사해서 놀랐던 감상도 댓글에 적어놨었는데 바로 엊그제 그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내재가치 계산기를 제공하는 미국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료도 거부감없이 잘 받아들여서 그런지 이런 종류의 분석 서비스는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이다.

검을 든 버핏

추가로 작년 추석즈음엔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로 투자 전략 지도를 만들었다. 좋은 기업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계다. 이로써 좋은 가격인지 판단하는 내재가치 계산기와 함께 양날의 검을 가지게 됐다..ㅋ

성장성과 수익성

2014년 10월 7일, 워런 버핏은 포춘의 행사에서 절친 캐럴 루미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 중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내가 만든 투자 전략 지도의 두 축,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캐럴 루미스 : 어쨌든 저는 여러분이 버핏의 기준으로 좋은 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두 문단 정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자동차 딜러십 사업(당시 버핏이 인수한 Van Tuyl Group)이 좋은 사업으로 보이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워런 버핏 : 좋은 비즈니스는 유형 자산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비즈니스입니다. A good business is the one that earns a high rate of return on tangible assets.

캐럴 루미스 : 정말 심플하네요.

워런 버핏 : 네, 아주 간단합니다. 최고의 비즈니스는 유형 자산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성장하는 비즈니스입니다. 하지만 성장하지 않는 사업이라도 유형 자산에서 높은 수익을 올린다면, 그리고 물론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좋은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익률로 인해 시작하기에 좋은 사업이지만,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좋은 사업이 나쁜 투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부실 기업을 너무 싼 가격(bad business at a really cheap price)에 인수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약 20~30년이 걸렸습니다.”

투자 전략 지도 예

내가 만든 투자 전략 지도에서 성장성과 수익성, 둘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살짝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도에서 좌측 상단의 테슬라와 우측 하단의 2024로 표시된 점을 보면 테슬라처럼 성장성은 뛰어나지만 수익성은 아직 저조한 비즈니스와 2024로 표시된 점처럼 수익성은 뛰어나지만 성장성은 다소 저조한 비즈니스가 있고 투자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물론 이것은 다소 극단적인 예를 위해서 가져온 것이고 2024로 표시한 기업은 에너지 기업으로 단기간 이익이 급증한 탓에 저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지속성 여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수익성은 낮지만 향후 수익성이 증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그런 기대때문에 PER도 높다.

이 지도의 활용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떤 궤적을 보이고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업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지도를 통해 예측해 볼 수도 있다. 내가 내린 답은 투자 전략 지도의 두 축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난 주저없이 수익성(Total Return)이다. 버핏의 말대로 “최고의 비즈니스는 유형 자산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성장하는 비즈니스지만 성장하지 않는 사업이라도 유형 자산에서 높은 수익을 올린다면 (비싸게 사지 않는 한)좋다” 일반적으로 성장성은 수익성을 훼손하지만 수익성은 적절한 자본 배분을 통해 성장성을 만들 수 있다.

애플 투자 전략 지도

물론 자주 예시로 든 애플처럼 아름다운 궤적을 보이면서 성장성과 수익성을 모두 갖춘 훌륭한 기업들도 있다. 그런 좋은 비즈니스를 좋은 가격에 찾으면(버핏은 2014년 작은 점을 봤다. 같은 위치의 테슬라와 비교하면 얼마나 작은가) 황금비가 내리니 양동이를 들고 뛰어 나가면 된다..^^

좋은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라는…말은 쉽다. 문제는 그런 좋은 비즈니스를 좋은 가격에 찾기 위해선 너무나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너무나 오래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고 인내했음에도 나쁜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살 수도 있고 좋은 기업을 나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멍거의 말처럼 나쁜 기업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나서 적당한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거나(가치 투자 1.0) 좋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거나(가치 투자 2.0) 위대한 기업을 비싸보이는 가격에도 살 수 있어야 한다(가치 투자 3.0). 그리고 수익성(Total Return)은 그것을 구분하는 좋은 기준이다.

퀄리티 투자

얼마 전 품질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 신간안내 메일에서 관심가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퀄리티 투자”로 지은이를 보니 워런버핏 에세이를 쓴 로렌스 커닝햄이 들어있다. 다른 두 사람은 AKO 캐피털 사람들이다. 이 책은 AKO 캐피털이 그동안 해왔던 투자 전략을 분석하고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은 기업의 본질적 특성에 주목하며, 강력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 창출 능력, 지속적인 자본 수익률, 그리고 매력적인 성장의 기회를 겸비한 ‘퀄리티 기업’을 분석한다. 또한, 퀄리티의 정의와 성공 요인부터 투자 패턴, 위험 관리, 실행 전략까지 퀄리티 투자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투자 전략을 바탕으로 투자자들이 성공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AKO 캐피털 수익률

AKO 캐피털은 영국에 있는 투자 회사로 설립자(국가 정보기관 출신)가 2020년 노르웨이 국부펀드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회사인데 현재 약 22B을 운용하고 있고 최근 수익률은 위와 같다. 호기심이 생겨 현재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기업 숫자들을 내 관점에서 살펴 봤다. 대체로 좋은 데 비싸네?!

AKO 캐피털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내가 좋아하는 투자 전략 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10×10박스를 벗어나 있는 것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투자 철학처럼 퀄리티 기업을 목표로 하는 게 지도에도 보인다.

AKO 캐피털 포트폴리오 투자 전략 지도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기업 사례들을 시간나면 하나씩 분석해 보고 싶지만 요즘 내겐 그럴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 많은 분들이 알아서들 하시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다…책에서 다양한 성장 동력의 예로 지역 확장 전략을 사용하는 유니레버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투자 전략 지도만 살펴 봤는데 10×10 박스 안에서 성장을 하고 있다.

유니레버 투자 전략 지도

퀄리티 투자가 맞나 싶어 바로 다음에 있는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예로 든 무형의 아름다움을 제공한다는 로레알 투자 전략 지도를 살펴 봤다. 10×10 박스를 뚫고 나오는 좋은 움직임이다.

로레알 투자 전략 지도

우호적인 중개자 사례로 얘기하는 게버릿(수조 및 피팅을 포함한 화장실 설치 기술 및 수세 시스템, 건물 배수 및 공급 시스템으로 구성된 배관 시스템)의 투자 전략 지도도 봤다.

게버릿 투자 전략 지도

책을 읽으면서 나처럼 이렇게 사례로 제시된 기업을 함께 찾아 보면서 읽으면 훨씬 나은 독서가 되겠지만 노파심에 추가하면 우리나라엔 훌륭한 퀄리티 기업을 찾기가 아주 힘들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책은 이렇게 생겼다. VIP자산운용 최준철 대표 추천(내가 직접 운용하는 대표 펀드의 이름이 왜 ‘하이퀄리티 밸류’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이 책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유형과 이와 연관된 종목 사례를 접하고 나면 성장주 투자와 퀄리티 투자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이니 책 내용이야 믿을만 하지 않을까.

퀄리티 투자

“우리가 보기에 어떤 기업이 퀄리티 기업임을 시사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강력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 창출 능력, 둘째, 높은 수준의 지속적인 자본 수익률, 셋째, 매력적인 성장의 기회다. 이 재무적 특징들은 하나하나가 이미 매력적인 요소지만, 이들이 한데 합쳐졌을 때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간만에 쓰는 글을 아직 읽지도 않은 새로 나온 책 소개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