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프레스는 집짓기다.

우리는 모두 인터넷에 집을 짓는다. 어쩌면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 블로그,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파트나 빌라 같은 대규모 건물의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이 이미 다 지어놓고 살고 있는 곳에 아이디 하나 달랑 들고 들어가서 마치 내 집처럼 쉽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다. 어지간히 필요한 건 이미 다 구비되어 있고 일정량의 사람들(트래픽)도 거의 보장된다.

반면 워드프레스 같은 설치형 블로그는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짓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틀이 있긴 하지만 블로그 구성의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찾아보고, 비교하고, 선택하고, 세팅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고장이 난다. 고장이 나면 또 찾아보고…세팅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최근엔 사이드바 구독메뉴가 작동이 안되서(보안 플러그인과 충돌) 헤맸고 아카이브 위젯이 동작을 안해서(SEO 플러그인 설정) 고생했다.

초기에 이런 작업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항상 모든 것은 등가교환이 이루어 진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편리함을 추구하면 속도를 희생해야 한다. 화려한 테마, 편리한 플러그인들을 깔기 시작하는 순간 곧 잃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이렇게 힘들게 집을 짓고도 트래픽은 거의 없다. 사람이 아예 없다. 어쩌면 저 넓은 우주 공간 속 이름없는 별 한 구석에 혼자만의 집을 지은 것과 같다.

우주공간에 집짓는 사람


그러면 왜 돈도 안들고 편하기만 한 남의 집 살이를 안하고 호스팅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자신의 집을 새로 짓는가? 바로 자유때문이다. 이 것 하나때문에 그 많은 수고를 감내하게 된다. 내 집을 어느 곳에 어떻게 짓건, 광고판을 어디에다 달건, 집에서 무슨 말을 하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특히 내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없기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오롯이 내 공간이다. 그래서 내 집에 들어오면 편하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오늘은 집의 어디를 좀 손볼까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누가 우리집에 찾아왔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사람은 죽기 전에 자기가 살 집 한 채 정도는 지어 보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블로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워드프레스로 집짓기는 자유를 향한 좋은 출발이다.

워드프레스를 만든 회사는?

워드프레스를 잘 사용하다보니 워드프레스를 만든 회사가 궁금했다. 사실 난 예전부터 워드프레스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정리 차원에서 이 글을 쓴다.

2003년 매트 뮬렌웨그(1984년 생)와 마이크 리틀이 b2/cafelog를 기반으로 워드프레스를 만들어 오픈소스로 배포했었고, 2005년 오토매틱(automatic이 아니라 설립자 이름을 탄 automattic이다)이라는 워드프레스 관련 서비스 용역 회사를 설립했고, 2010년 워드프레스 재단을 만들어 그가 만든 워드프레스를 사회에 기부했다.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회에 기부하고 자신은 그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는 복제할 수 있을지라도 생태계는 복제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워드프레스

다음은 이 회사의 사훈이다.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 사훈은 이랬다.

“나는 배움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앞으로 할당된 업무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결코,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열정적이고 충직한 고객들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우리 사업을 구축할 것이다. 동료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절대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다. 오픈소스는 우리 세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사랑 가운데 하나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 않는 우리에게 의사소통은 생명수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소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에서 경주하고 있다. 목표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거기에 이르는 길은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방법뿐이다. 시간만 있으면 극복하지 못 할 문제가 없다.”

15년 12월 기준 전세계 웹사이트의 25.6%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2023년 현재는 전세계 웹사이트의 약 43%가 워드프레스를 이용하고 있다. 압도적인 1위다. CMS(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로는 무려 약 64%를 점유하고 있다.

워드프레스 점유율

제일 마지막 2014년 투자유치때 $1.16B 으로 가치평가를 받았지만 현재 가치로는 약 7.50B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일 이 회사가 상장한다면 꼭 주식으로 가지고 싶은 회사다. 전 세계 약 2,000명 내외의 직원이 있으며 코로나 이전부터 원격근무를 주로 하고 있는 원격 근무의 대표 기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직원은 2명인 것으로 조회된다. 워드프레스 사이트 중 한국어 사이트 비중을 보면 적은 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워드프레스 한국어 사이트 비중



내 주위에 있으면 좋은 것들

주말 아침이라 좀 말랑말랑한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 있으면 좋은 것들이 있으면 어떤 걸까? 같은. 최근에 올린 글들을 훑어 보니 좀 재미없고 딱딱한 글들이 많다. 어깨에 힘 빼고 가볍게 들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매일 관리자 화면의 트래픽을 보다 보니 어느샌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다. SNS에서만 도파민이 나오는 줄 알았더니 블로그에도 그런 요소들이 없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이 방문했는지, 몇 개의 글을 봤는지, 얼마 동안 머물렀는지…같은 숫자로 보이는 것들이 끊임없이 내 주의를 뺐는다.

집 근처에 좋은 원두를 뽑아 내는 적당한 규모의 카페 하나 쯤 있으면 참 좋다. 그런 카페가 주위에 없으면 원두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야 한다. 다행히 내 주위 500m 이내에 그런 카페가 하나 있다. 원두가 떨어질 때 쯤이면 부담없이 가서 하나를 들고 온다. 굳이 1kg 이상으로 많이 살 필요도 없다. 200g 만 사서 들고 오면 매일 아침 신선한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다.

노동요로 CBS 라디오를 즐겨 듣는 편인데 그나마 잡담 타임이 거의 없는 편으로 음악을 주로 틀어 주는 FM채널이긴 하지만 가끔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좋은 음악 채널 하나 쯤 알고 있으면 좋다. 저렴한 BOSE 스피커를 하나 두고 있는데 여기엔 채널 6개를 등록해서 버튼만 누르면 들을 수 있다. 최근에 괜찮은 채널을 하나 찾았다. 국내 외 음악을 아무런 나레이션 없이 틀어주는 데 음악 선곡이 나랑 잘 맞는다.


주변에 잠시 시간이 나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가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다. 30분 내외로 걸을 수 있는 길이면 적당하다. 흙 길이면 좋고, 나무도 적당히 길 주위에 있어서 그늘과 햇빛이 교차하면 더 좋다. 한가로이 쉬는 사람들이 군데 군데 있으면 좋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곳이면 더 좋다.

한 때는 친한 친구들이 내 주변에 살고 있으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었다. 생각날 때 전화해서 30분 이내에 만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한 명 이상의 친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은 좀 엹어 졌고, 오히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편하게 모였다가 흝어 지는 그런 모임 공간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잘 아는 편한 공간과 잘 모르는 약간은 불편한 사람들 같은. 사실 이것 때문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관리자 화면의 숫자들 중에서 가장 내 시선을 끄는 숫자는 체류 시간이다. 내 블로그에 들어 와서 얼마나 머물렀다 가는지를 알 수 있는 숫자인데 이 숫자가 늘어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글을 음미하면서 읽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 좋겠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