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삼스럽게 다가 온 찰리 멍거의 말

그래도 재무제표를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실패하거나 좌절하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이유. 찰리 멍거의 말.

“우리는 [투자 기회]를 과거 기록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만약 그 일이 형편없는 과거 기록과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칠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내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실 내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정말 간단한 생각입니다. 희생자처럼 느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완벽하게 비참한 방법입니다.”

– 찰리 멍거

전진하는 병사

제갈공명이 유비와 함께 떠나는 조자룡에게 비단 주머니 3개를 전해 주면시 곤경에 처해 힘들거나 어려울 때 꺼내 읽으라고 했던 ‘금낭묘계(錦囊妙計)’처럼 찰리 멍거의 말은 가끔씩 힘들 때 꺼내 읽으면 묘한 위안을 준다. 멍거의 삶 또한 힘들었기 때문이다.

“장애물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디딤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웃고, 밟고, 그것이 당신을 더 나은 것으로 인도하게 하세요.”
– 에니드 블라이튼

9월 18일 부터 오늘까지 30일 연속으로 글을 남겼다. 또 하나의 힘든 장애물을 넘었다~

투자에서 내재가치가 정말 중요할까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 필연적으로 기업의 내재가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블로그로 들어오는 트래픽을 봐도 내재가치로 검색하는 비중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내재가치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투자에서 내재가치가 정말 중요할까, 내재가치로 계산해서 나온 숫자는 정확할까.

내재가치 계산은 기업분석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하는 작업이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바텀업 방식에서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문서의 양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가장 먼저 관심가는 기업이 레이더에 들어왔다면 그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를 읽어 봐야 한다. 일단 여기서 대부분의 투자자는 탈락한다. 관심가는 기업의, 혹은 직접 자신의 피같은 돈을 투자하는 기업의 사업보고서도 읽지 않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서 못했다고 핑계라도 댔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정도로 정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DART라는 곳에 가면 모든 기업들의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를 조회해 볼 수 있다.

재무제표 숫자의 의미

사업보고서 제일 앞부분에는 사업의 개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읽어 봐도 무슨 일을 하는 기업인지, 돈을 어떻게 버는지 잘 모르겠다면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말고 패스하면 된다. 버핏과 멍거도 들어오는 투자 아이디어의 거의 대부분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너무 어려움” 폴더에 던져 놓고 다른 기업을 살펴 보면 되는 것이다.

사업보고서 읽기의 하이라이트는 재무제표다. 투자자라면 회계사 수준의 지식까진 필요하지 않겠지만 투자의 언어인 재무제표는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면 아무 말도 못하는 나라 한 가운데 어떤 도구도 없이 홀로 놓여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재무제표를 보는 관점은 여러 기업을 보면 볼수록 새롭게 생겨나고 또 바뀌게 된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급적 쉽게 설명하는 회계 기본서 1권을 끝까지 몇 번 읽은 후 제일 먼저 투자 구루들이 좋다고 말하는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후에 자기가 관심가는 기업의 사업보고서 재무제표를 좋다고 말하는 기업들과 비교해 가면서 살펴 보면 된다.

숫자들을 볼 땐, 최소 5년, 권하기는 10년 정도의 기간을 살펴보는 게 좋다. 5년이라 치면 사업보고서 5개, 분기보고서 포함하면 20개를 읽어 봐야 한다. 또한 경쟁업체 2~3개도 함께 비교하면서 봐야 하기 때문에 관심기업이 추가될수록 읽어야 할 문서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흔히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의 관점에서 재무제표 숫자들을 많이 보지만 나는 특히 지속가능성을 중점으로 본다. 그럴려면 소위 경제적 해자라 불리는 경쟁우위 요소를 재무제표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서 또 대부분의 기업들이 탈락한다. 그러니 내재가치 계산 단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탈락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들도 몇 개 더 거치고 나서 비로소 마지막이 내재가치 계산이다.

그럼 나는 왜 제일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내재가치 계산을 빨리, 그것도 먼저 하려고 할까? 나는 왜 각잡고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10초만에 계산하는 간단 내재가치 계산을 할까?

투자자에게 내재가치는 정말 중요하다. 가격이 계산한 내재가치보다 비싸면 구매하지 않고, 내재가치보다 싸면 구매를 결정하는 게 투자다. 그래서 투자자라면 투자하고자 하는 대상의 내재가치를 당연히 알아야 한다. 버핏이 정의한 내재가치는 “기업의 남은 수명 동안 회수할 수 있는 현금의 할인된 가치”다. 존 버 윌리엄스 옹께서 말한 그 현금흐름할인법(DCF)를 의미하지만 멍거는 버핏이 DCF를 계산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DCF 계산 방법은 널리 알려졌지만 비즈니스의 남은 수명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지 추정하는 것은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쉽다.

“내재가치와 안전마진을 결정할 때 단순히 컴퓨터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버튼을 누르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많은 모델을 적용해야 합니다. 골종양 병리학자가 빨리 될 수 없는 것처럼 빨리 훌륭한 투자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업의 정확한 가치를 추정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너무 어려움’ 더미에 넣고 몇 가지 쉬운 것만을 걸러냅니다.”

“워런은 할인된 현금 흐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가 실제로 계산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계산을 해봐도 잘 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다음 아이디어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 찰리 멍거, 2007

아무리 정밀하게 계산한다 하더라도 결국 내재가치는 추정치일 뿐이다. 버핏 말대로 내재가치는 정확한 수치라기보다는 추정치이며, 이자율이 변동하거나 미래 현금 흐름에 대한 예측이 수정되면 변경해야 하는 추정치에 불과 하다. 따라서 내재가치 수치를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나타낼 필요는 없으며 일정한 범위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일전에 언급했듯 한 때 내 화두가 버핏과 멍거의 10초 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거기에 근접한 해를 찾았고 그 아이디어를 접목해 만든 게 바로 10초 간단 내재가치 계산기다. 간단한 계산기지만 각잡고 계산한 DCF 결과값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역DCF를 해보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계산기를 활용함으로써 앞서 얘기한 기업분석의 무수한 단계를 거쳐 기껏 마지막 내재가치 계산을 했는데 비싸다면 그간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이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었기 때문에 이제 난 관심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읽어 보기 전에 먼저 기업의 내재가치를 간단하게 계산해 보고 통과되었을 경우에만 사업보고서 읽기로 들어간다. 나만의 툴을 가짐으로써 순서를 바꾸는 간단한 변화만으로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시간은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가끔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은 내가 찾아 보기 위해서다. 로직을 공개하지 않은 내재가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별 의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단순 참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내겐 큰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주식투자를 공부하는 투자자라면 사업보고서의 재무제표를 읽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재무제표 분석 방법과 엑셀시트를 가끔 오픈하는 투자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로 공유하지 않는다. 나처럼 로직없이 공개하는 특정 기업의 내재가치 숫자와 달리 재무제표 분석에는 본인의 노하우와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PER PBR ROE 처럼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숫자들 속에는 더이상 특별함이 들어 있지 않다. 귀한 것은 드러 내지 않는 법이기도 하고 정말 귀한 것은 누구나 다 보는 것에 들어 있기도 하다. 숨겨진 행간 의미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드러난 숫자들의 진짜 의미를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투자는 정말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재무제표를 아무리 열심히 보고 많은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살펴 보더라도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래는 JYP의 임직원 현황을 년도별로 살펴 본 그림이다. 직원 수, 임원 수, 직원 급여총액, 임원 급여총액, 평균 급여 같은 숫자들은 재무제표만 살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당 매출액이나 인당 영업이익을 통해 생산성 숫자들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이 숫자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임직원 현황 급여총액

(출처 : 버틀러)

임직원이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해서 급여총액도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JYP같은 엔터산업은 유형자산보다 인적자산이나 무형자산이 훨씬 중요한 산업이다. 저 증가하는 임직원 중에 핵심인력이 이탈하고 평범한 인력들이 충원된건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래 매출을 좌우할 새로운 그룹의 준비상황을 알 수 있는가? 세계 진출을 위해 새롭게 충원한 인력에 대해 알 수 있는가? CEO가 어떤 생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가?

재무제표는 기업 분석의 시작일 뿐이다. PER 에서도 말했듯 모두가 아는 정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기업 분석은 남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보이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업이다. 물론 보이는 것을 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있는지를 돌아 보고 그런 능력이 부족하면 먼저 그 능력을 채워야 한다. 밸류에이션이나 투자는 그 다음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기업 분석을 도와주는 좋은 툴들이 많이 나왔다. 예시로 든 버틀러도 정말 좋은 사이트로 현재는 모든 정보를 무료로 제공중이다. 버틀러도 수익을 위해서 언젠가는 유료로 전환하겠지만 그 전까지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정리한 데이터를 이용할 때도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의 시각을 내 것으로 만들어 결국은 나의 분석모델을 업그레이드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버틀러에 들어 가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분석 정보를 남들과 똑같이 보면서 똑같은 시점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모델로 정리해서 나의 관점에서 기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저 위에 아무렇게나 나열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엄청난 지적 노가다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필립 피셔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했다). 투자할 자격은 그 다음에 얻어 진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직접 투자를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인덱스 투자를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서 인덱스 투자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