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스스로 답해야 할 질문

직접투자를 그만 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기업에 대해 깊이 조사하고 기업분석을 철저하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정말 그 기업에 대해 알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늘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주주와 CEO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것인가. 물론 그 고민의 끝에서 알 수 있는 지식이 100이 될 순 없지만 노력을 통해 90가까이 끌어 올릴 수는 있다는 결론에 이르러 더욱 열심히 기업에 대해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헤지펀드들은 모두 다 하는 방법에서 더해 대체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열심이고 개인 투자자들 역시 지금은 다 아는 방법이 됐지만 지역별 항목별 수출입 데이터를 뒤지면서 좋고 유용한 정보를 남보다 먼저 선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필립 피셔처럼 기업의 질적 분석까지 하려면 탐정이 수사하듯 해당 기업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협력업체를 찾아다니면서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그레이엄은 굳이 질적 분석까지 할 필요없는 기업들만 양적 분석을 통해 구별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질적 분석의 가치를 폄하하진 않았다. 다만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하기에는 그런 방법들이 표준화도 쉽지 않고,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가르칠 수 없다 판단해서 배제한 것일 뿐, 전문 투자자들이 질적 분석하는 것을 반대하진 않았고 오히려 권장했던 편이었다. 코로나 이후엔 직접 방문보단 컨퍼런스콜이 잦아졌지만 전문 투자자들의 기업 탐방이 일상적인 일이 됐고 개인 투자자들도 탐방을 다니는 일이 흔해졌다.

“가드너(이번에 출간된 Buffett’s Early Investments 저자)는 마샬 웰스에 대해 “주식을 분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네소타 둘루스에 본사를 둔 이 하드웨어 도매업체를 분석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배럴과 컨테이너 제조업체인 그리프 브라더스는 중서부 증권 거래소에서 산발적으로 거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이런 주식을 분석하고 매수하는 데 있어 당연한 일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투자자로 유명해지기 수십 년 전, 그는 기업 본사로 가서 경영진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버핏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모든 출처의 자료도 읽었습니다. 인내심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그리프 브라더스 시설에 나타나 일선 직원으로부터 배럴에 대해 몇 시간 동안 배웠습니다.”
– 제이슨 츠바이크, “What You Can Learn from Young Warren Buffett”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기업을 바라볼 때 제일 먼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기업이 돈을 버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였다. 오래전부터 빌 게이츠와 절친이었지만 버핏이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사업모델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역량 범위를 벗어난 기업에 대해서는 “너무 어려움” 폴더에 던져 두고 바로 다음 기업으로 넘어간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역량 범위 주위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놓고 한정하면 그만큼 리스크도 줄일 수 있겠지만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업에 뒤쳐지게 될 위험도 있다. 다행히 애플은 잡았지만 버핏과 멍거가 아마존과 구글을 놓친 이유다.

오랜 시간 학습과 경험을 통해 역량 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응축되는 투자자가 있고 점점 더 확장되는 투자자가 있다. 이것 역시 기질과 관련이 있다. 새로운 것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호기심이 많은 투자자는 확장하고, 특정 분야에 깊이 침잠하면서 성공의 경험을 했고 편안함을 느끼는 투자자는 응축한다. 일론 머스크와 찰리 멍거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확장하는 투자자는 넓게 분산하고 응축하는 투자자는 자연스레 높은 확률에 집중한다. 가치 투자 1.0은 분산, 가치 투자 2.0은 집중, 그리고 다시 가치 투자 3.0은 분산으로 이동하는 이유다. 시간지평은 뒤로 갈수록 길어진다.

10Y 매출 이익

최근 10년 동안 매출 12.6%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최근 5년은 18%로 올라갔다. 주로 속해있는 시장의 향후 성장예측은 최소 8% 수준(아래 성장활주로 파란실선 수준)이다. 최근 주가가 40% 정도 하락해서 PER28 수준으로 내려왔다.

제약 주가그래프

이 시장은 내가 과거에 전혀 알지 못하는 시장이다. 가격 압박과 관세와 같은 여러가지 정부 규제, 그리고 향후 심화될 경쟁에 대한 염려로 최근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큰 기대와 큰 실망감이 함께 묻어 있는 그림이다.

투자 전략 지도

투자 전략 지도로 보면 10년 전에 비해 2019년엔 수익률은 상승했고 성장률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최근엔 수익률이 많이 떨어졌고(그래도 여전히 다른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성장률이 최근 가장 높은 20% 가까운 수준을 보이고 있다. 재무제표를 보니 최근 투자가 많이 늘어 수익률이 떨어졌다(긍정적).

성장 활주로로 보니 안전마진이 약 4% 정도 수준이다. 사실 내가 사용하는 내재가치선에는 이미 25%의 안전마진이 들어있기 때문에 약 30% 정도의 안전마진으로 해석해야 한다..ㅋ 이렇게만 성장해 준다면 최저 가치선으로 보더라도 7년 시간지평에 연평균 15%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이다. 물론 그 사이 어떤 다이나믹한 일들이 일어날 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장에서 경쟁구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CEO가 어떤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결정을 내릴지도 역시 알 수 없다.

내 역량의 범위를 이 기업이 속한 산업까지 확장해서 공부한들, 내가 궁금한 것들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마냥 내 역량의 범위 안에 머무르면서 좋아보이는 기업을 외면해야 할까? 드러켄밀러처럼 먼저 조금이라도 구매하고 공부해야 할까? 버핏처럼 잘 모르는 기업은 아예 건드리지 말아야 할까? 정찰병으로 적은 금액만 넣었다가 주가가 날아가면 어떡해야 할까? 주력군을 투입했다가 대패를 하면 또 어떡할까?

그레이엄 말처럼 기업의 해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숫자들을 보고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저 기업의 숫자들은 분명히 해자가 있다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내재가치보다 싼 영역에 있다. 그럼 역시 버핏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90% 이상 확신을 가지고 나는 저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이 좋은 답으로 데려다 준다. 멍거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저 기업이 네가 죽을 곳은 아니니?”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미국 시장이 비싼 이유

토드 콤스가 말한 “할인율 10%에서 PER 26이 되려면 성장률이 15%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한창 밸류에이션 공부할 때 만들었던 그림인데 이 정도만 공유해도 전체 그림의 내용을 대충은 알아볼 듯. 빨간선 4개, 주황 점선 2개, 그리고 파란선 2개.

밸류에이션 그림

현재 미국 S&P500 PER 30 수준이고 포워드PER 22 수준이다. PER 22는 토드 콤스의 계산대로라면 성장률이 대략 12%가 되어야 한다. S&P500의 최근 5년 성장률이 대략 8.6% 내외 수준이고 10년으로 길게 놓고 보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미국시장은 AI 같은 테마로 현재 고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 열풍이 불 때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현재 밸류가 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S&P500 PER

그레이엄 시대에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하는 기업들을 성장주로 봤었다. 주말에 S&P500 가운데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세어 봤더니 거의 50%에 육박했다. 5년 성장 평균이 8.6%니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엄이 성장주라고 부를 기업이 거의 반 이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가치 투자 3.0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필립 피셔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이유다.

“저는 작은 수익을 많이 벌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아주 큰 수익을 원합니다.”
– 필립 피셔

필립 피셔의 15가지 질문 가운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도 있다.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이는 내재가치 계산기에서 “당신의 시간지평은 몇 년인가?” 와 같은 말이다. 내 어림 계산에 의하면 첫 문단에서 토드 콤스의 시간지평은 최소 7~10년이다. 버핏의 시간지평도 거의 비슷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오랫동안 소유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
“We find doing nothing the most difficult task of all.”
– 워런 버핏

“기다림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연된 보상 유전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The first rule of compounding is to never interrupt it unnecessarily”
– 찰리 멍거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좋은 기업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복리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도록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목에는 약간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인내에는 어마어마한 기질이 필요하다.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기질은 귀하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없는 기질을 활용하기 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능을 활용해서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가르쳤다.

“어떤 회사를 사야 할지 분석하는 데 천재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인내심과 용기가 없다면 평범한 투자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좋은 투자자와 나쁜 투자자를 가르는 것은 항상 두뇌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규율입니다…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장기 투자자이며, 주식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어떤 사람들에게 장기 투자자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보일 것입니다. 요즘은 장기 투자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주식이 폭락할 때 진짜 시험이 옵니다.”
– 피터 린치

필립 피셔의 말

인질(?)로 잡혀 있는 글들을 읽기 위해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과거의 오늘을 돌아보고 나오는 게 아침 루틴중 하나다. 그곳에 오랜 기간 너무 많은 글과 생각들이 담겨 있어 한꺼번에 구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은 정말 잘 기획된 기능이다. 대부분의 내 생각과 스크랩들은 그 곳에 비공개로 남아 있다. 한글날인 오늘은 필립 피셔의 말을 스크랩해 둔게 눈에 들어왔다. 블로그에 쓸 소재들도 떨어져 가는데 오늘은 스크랩해 둔 이 녀석을 구출하면서 블태기를 극복하련다. 필립 피셔의 단기간은 최소 3년이고 그레이엄의 투자기간은 최대 3년이었다.

“투자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 있습니다. 벤 그레이엄이 개척한 접근법은 본질적으로 너무 싸서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종목을 찾는 것입니다. 그는 이에 대한 재정적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고 조만간 가치가 상승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접근 방식은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매우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것을 찾는 것입니다. 장점은 제가 투자하는 주식 중 더 많은 비율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주식은 시작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고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식이 정말 이례적인 경우에는 비교적 단기간에 많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벤 그레이엄식 접근법의 단점은 그가 설교한 것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그의 공식에 맞는 것을 채택한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방식이 성공의 유일한 공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만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성장주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 필립 피셔

모건 하우절의 말처럼 “영감적으로 대담함”과 “어리석을 정도로 무모함” 사이의 경계는 두께가 1밀리미터에 불과할 수 있으며 지나고 나서 나중에야 볼 수 있지만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과정은 본받아야 할 것으로, 실패로 이어진 과정은 피해야 할 것으로 보기 쉽다. 아무리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과정을 본받더라도 가끔씩 발생하는 실수를 완전히 피할순 없다. 실수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견디고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면 오히려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누가 말했듯 투자에는 결국 신념과 프로세스만 남는다. 필립 피셔가 말했듯 실수를 할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투자는 결국 인내심 없는 사람의 돈이 인내심 많은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게임이다.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진정한 성공의 일부는 100% 반대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도시의 오래된 전차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아무도 전차 주식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전차 주식을 사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투자 비즈니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 필립 피셔

큰 성공을 거두려면 기존의 통념을 깨뜨려야 하지만 통념은 대개 옳고 따를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통념이다. 가치투자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역발상으로 무조건 반대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싸고 소외된 것을 찾아 반대로만 가다 밸류트랩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시장은 꽤 똑똑하고 대체로 효율적이기 때문에 싼 데는 싼 이유가 있다. 싼 것을 찾아 가는 게 목표가 아니고 잘못 점수가 매겨진 것을 찾아가야 한다. 잘못된 채점을 찾으려면 필립 피셔가 강조한 것처럼 투자자가 직접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스스로 투자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정말 옳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수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에서 성공은 열정과 지성, 그리고 성실함을 모두 겸비해야 이루어 진다. 버핏이 버크셔에서 직원을 뽑을 때 중점적으로 보는 항목도 바로 이것이다. 결국 투자란, 잘못된 채점표를 찾을 수 있는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가?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자신이 틀렸을 때 솔직히 인정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거기에는 호기심과 열정, 상식과 지성, 그리고 정직과 성실,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매일 성실하게 돌멩이를 뒤집어야 하는 투자는 정말 어렵다.

“시장이 선호하는 주식도 사지 않습니다. 특히 기술주 관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사람들이 회의실에 꽉 들어차 있는 것을 볼 때 특히 그렇습니다. 입석만 있다면 보통 그 주식을 매수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꽤 공정한 신호입니다.”
– 필립 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