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그레이엄의 성장주 공식의 제대로 된 의미를 이해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공식을 다루는 국내외 수많은 글을 읽었지만 그레이엄이 공식을 만든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글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 이유는 물론 증권분석 4판에 있는 39장을 읽은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챕터를 읽는다고 해서 제대로 이해한다는 법은 없다. 꽤 깊게 파고들어야한다. 책에선 이걸 간단하게 설명하기도 했는데..
비슷한 걸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30년 수익률이 있겠다. 지금까지 그레이엄의 투자 수익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이건 AI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AI란 결국 인터넷에 사람들이 적어 놓은 글을 검색하고 학습하기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검색하더라도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두리뭉실한 답변뿐. 이것 역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책에서 이미 설명했다.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구루 수익률은 다음 두 장이다. 누가 작성해서 이런 대표성을 얻었는진 모르겠지만 많이들 인용하는 그림이다. 거기에 공통으로 그레이엄이 들어 있다.

이 표는 구루들이 시장을 얼마나 아웃퍼폼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레이엄은 20년 동안 9%p 시장을 비트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20년이라면 아마도 1936~1956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레이엄이 제대로 된 펀드를 시작한 건 1926년이니 여기엔 10년이 빠져있고 정확한 수익률이 얼마인지도 없다.

이 표에는 벤 그레이엄이 “20년 동안 2.5% 알파”를 보였다고 나온다. 앞의 20년 동안 9% 알파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난 이런 종류의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인터넷 정보를 학습한 AI가 정성스레 내뱉는 자료들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노력해서 찾고 계산한 그레이엄의 1926~1956년 동안 30년 투자 수익률은 약 12%였다(다르게 계산한 분이 있다면 알려 주시길~). 같은 기간 S&P 500(당시에는 S&P 500이 생기기 전이었다) 수익률은 4.25%였고 다우 수익률은 3.93%였으니 큰 차이로 지수를 비트했다. 여기에서 그레이엄이 급여와 성과보수로 가져간 2~3%를 포함시킨다면 총 수익률은 14~15%가 된다. 당시 미국 10년 국채수익률이 3% 내외에서 움직였으니 실로 대단한 수익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수익률 자료를 볼 땐 특히 기간을 주의해서 봐야 한다.
이번에 쓴 책에서 그레이엄의 2.0 투자로 예시를 든 GEICO 투자는 실로 놀랍다. 1956년 펀드를 해산한 그레이엄은 1965년까지 GEICO 이사회 역할을 했다. 파트너인 뉴먼은 1971년에 이사회를 사임1했다.

1948년에 투자한 GEICO 투자 수익률은 1972년까지 연평균 30.2% 수익률(일부 자료에는 22% 정도 수익률로 계산되는 것도 있다)이다. 이 하나의 투자로 그레이엄이 펀드를 운영하며 과거 30년 동안 거둔 수익률의 두 배가 넘는 수익률이니 그야말로 대박 투자였다.
재밌는건 1948년 그레이엄-뉴먼이 GEICO 지분 50%를 BPS 10% 할인가로 인수했지만 투자사는 보험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는 SEC 결정으로 그레이엄-뉴먼 파트너와 주주들에게 특별배당으로 배분되고 상장됐었는데 위 그림의 주가 꼭지였던 1972년에도 역시 SEC의 결정으로 강제로 매도하게 됐다. 지나보면 이것 역시 엄청난 행운~
1948년 분배 이후에도 그레이엄과 뉴먼, 그리고 일부 주주들은 GEICO 주식을 개인 자격으로 계속 보유하고 있었는데 1972년에 SEC가 투자회사의 창립자 및 주요 인사들이 특정 상장사 지분을 과도하게 오래 보유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SEC는 결국 더 이상 이 지분을 펀드 관계자들이 함께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판단, 보유하고 있던 GEICO 주식을 모든 주주들에게 최종적으로 현금 또는 주식 형태로 분배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장기간의 ‘가족 회사’적 관계를 청산하라는 규제 당국의 강제 분배였다.
만약 1972년에 SEC의 강제 분배가 없었다면, 그레이엄은 ‘가족 회사’라는 감정 때문에 GEICO를 계속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1976년 주가가 $61에서 $2로 폭락할 때 그대로 맞았을 것이다. 결국 그레이엄은 “1948년에는 규제 덕분에 구조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었고, 1972년에는 규제 덕분에 꼭지에서 강제로 팔렸다” 고 볼 수 있다. SEC 규제가 한 번은 기회를 살리는 지혜를 제공했고, 다른 한 번은 손실을 막는 족쇄를 채워준 셈이 된다.
GEICO는 1976년 들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CEO였던 Norm Gidden은 몸집을 키우는데 주력해서 수년 동안 부실한 인수 결정으로 이어졌고, 보험 청구비용도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1976년 중반 가이코는 파산 직전까지 갔고, 몇 년 전 최고 61달러에서 거래되던 주가는 주당 2달러로 급락했다. 1976년 5월 임시 CEO로 임명되었던 버틀러를 대신해 트래블러스 그룹을 회복시킨 보험업계의 천재 Jack Byrne2이 가이코의 CEO에 취임하면서 가이코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과 GEICO의 전 CEO 로리머 데이비슨을 통해 잭 번과 만났다. 버핏은 번에게 너무 감명을 받아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주식을 매수(보통주 130만 주에 대해 주당 $3.8)하기 시작했다.
“버핏은 워싱턴 DC의 보험 규제 담당자인 월락을 직접 찾아가 가이코에 부여된 규제 자본 요건의 정도와 마감 시한에 대해 협상했다. 또 살로몬은 7600만 달러 규모의 가이코 전환 주식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재보험사들도 곧 나서서 재보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2달러에 거래되던 주식은 8달러로 뛰어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