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흐름 할인법에 대한 논문 하나를 읽고

휴일 아침에 역시 습관처럼 인터넷을 어슬렁거리다 눈에 띄는 논문 하나를 봤다. 내재가치 계산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현금흐름 할인법에 대한 논문이다. 24년 동안 93개국 증권 보고서 78,000건을 분석한 Paul Décaire과 John Graham에 의하면 내재가치 계산에서 분석가가 주로 사용하는 현금흐름 할인법에서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연도 수, 즉 시간지평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분석가의 시간지평

일반적으로 분석가는 향후 3년 정도(이렇게나 짧은지 몰랐다..ㅋ) 동안의 자유 현금 흐름 성장을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다음 성장이 영원히 어떤 최종 장기 평균(보통 GDP성장률과 관련이 있으며 2.1% 내외로 가정하고 있었다)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관행적인 분석으로 영구가치가 전체 내재가치의 거의 75%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명시적 모델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영구가치의 비율은 줄어들게 되는데 3년의 경우 전체 가치의 78%를 차지하는 반면 9년 이상으로 모델링할 경우 62%로 감소한다.

영구가치 점유율

분석가들이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3~5년 성장 평균은 아래 빨간색이고 영구성장률은 파란색이다. 향후 3~5년 동안 12% 내외 높은 성장을 가정하다가 그 이후에는 뚝 떨어진 영구성장률 2% 내외를 적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기업의 내재가치를 일관되게 계산하면 경쟁우위가 있고 긴 활주로를 가진 훌륭한 기업들의 내재가치가 왜곡된다. 항상 고평가가 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5년 뒤에 2% 성장으로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래서 마이클 모부신 같은 사람들은 ROIC가 WACC를 초과하는 한 명시적 예측기간을 더 멀리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빨간색의 명시적 성장률을 보면 분석가들은 경기가 좋을 때는 낙관적으로 예상하다가 반대로 경기가 안좋을 때는 보수적으로 예상하는 어떤 경향성을 보여준다. 분석가들도 사람이라 편향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WACC

마이클 모부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그림 하나. 좋은 기업이든 나쁜 기업이든 훌륭한 기업이든 짧은 시간지평과 함께 WACC보다 훨씬 못한 영구성장률(TGR)을 가정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가치 투자 3.0 기업들을 이전의 현금흐름 할인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항상 고평가가 되기 쉽다.

이 연구는 분석가들이 주식 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주관적 할인율과 성장 기대치가 주식 가격 변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할인율은 주식 가격 변동의 28%를 설명하고, 처음 성장률은 38%, 영구성장률은 18%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왔다. 아래 파란선이 전체 보고서의 할인률 평균이고 빨간선은 미국의 보고서 평균을 나타낸다.

분석가가 사용하는 할인률 평균

분석가들의 주관적 할인률(무위험 이자율과 밀접한 관계)은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 있어 편향되지 않은 예측 변수로 나타났고 특히 주관적 베타는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 있어 표준 CAPM 모델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AI가 요약해서 설명해 준다. 좋은 세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미국 시장이 비싼 이유

토드 콤스가 말한 “할인율 10%에서 PER 26이 되려면 성장률이 15%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한창 밸류에이션 공부할 때 만들었던 그림인데 이 정도만 공유해도 전체 그림의 내용을 대충은 알아볼 듯. 빨간선 4개, 주황 점선 2개, 그리고 파란선 2개.

밸류에이션 그림

현재 미국 S&P500 PER 30 수준이고 포워드PER 22 수준이다. PER 22는 토드 콤스의 계산대로라면 성장률이 대략 12%가 되어야 한다. S&P500의 최근 5년 성장률이 대략 8.6% 내외 수준이고 10년으로 길게 놓고 보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미국시장은 AI 같은 테마로 현재 고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 열풍이 불 때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현재 밸류가 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S&P500 PER

그레이엄 시대에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하는 기업들을 성장주로 봤었다. 주말에 S&P500 가운데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세어 봤더니 거의 50%에 육박했다. 5년 성장 평균이 8.6%니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엄이 성장주라고 부를 기업이 거의 반 이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가치 투자 3.0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필립 피셔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이유다.

“저는 작은 수익을 많이 벌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아주 큰 수익을 원합니다.”
– 필립 피셔

필립 피셔의 15가지 질문 가운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도 있다.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이는 내재가치 계산기에서 “당신의 시간지평은 몇 년인가?” 와 같은 말이다. 내 어림 계산에 의하면 첫 문단에서 토드 콤스의 시간지평은 최소 7~10년이다. 버핏의 시간지평도 거의 비슷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오랫동안 소유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
“We find doing nothing the most difficult task of all.”
– 워런 버핏

“기다림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연된 보상 유전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The first rule of compounding is to never interrupt it unnecessarily”
– 찰리 멍거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좋은 기업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복리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도록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목에는 약간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인내에는 어마어마한 기질이 필요하다.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기질은 귀하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없는 기질을 활용하기 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능을 활용해서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가르쳤다.

“어떤 회사를 사야 할지 분석하는 데 천재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인내심과 용기가 없다면 평범한 투자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좋은 투자자와 나쁜 투자자를 가르는 것은 항상 두뇌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규율입니다…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장기 투자자이며, 주식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어떤 사람들에게 장기 투자자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보일 것입니다. 요즘은 장기 투자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주식이 폭락할 때 진짜 시험이 옵니다.”
– 피터 린치

테리 스미스 연례 주주서한

주말 아침에 좋아하는 투자자 테리 스미스 연례 주주서한을 꼼꼼히 읽었다. 매년 읽다보면 느끼는 거지만 항상 똑같은 포맷으로 글을 쓴다. 먼저 펀드의 수익률을 벤치마크와 함께 비교한다. 2024년 +8.9%로 벤치마크 MSCI World Index(+20.8%)보다 못한 수익률이다. 2010년 부터 14년간 연평균 14.8% 수익률이다. 누군가에겐 겨우? 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5년에 더블이 되는 숫자로 내 눈엔 대단한 수익률이다. 초기에 1억을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내년에 약 8억이 되는 숫자다. 복리는 이렇게 작동한다. 16, 32, 64, 128…

펀드스미스 2024 실적

수익률 다음엔 2024년에 가장 실적이 안좋았던 종목에 대해 리뷰하고 가장 실적이 좋았던 종목에 대해 리뷰한다. 순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펀드매니저라면 자기가 제일 잘했던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테리 스미스는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은 아픈 부분을 먼저 공개한다. 로레알과 IDEXX, 그리고 나이키가 가장 아픈 부분이었고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와 필립 모리스가 가장 좋은 성과를 냈다.

그 다음엔 매도 종목과 신규 편입 종목에 대한 코멘트가 있다. 테리 스미스의 투자 철학은 단순하다. “좋은 기업을(Buy Good company)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사고(Don’t overpay) 아무것도 하지 마라(Do nothing).” 그래서 다른 펀드에 비해 회전률이 아주 낮은 편이다. 2024년 3.2% 회전율..ㅋ

좋은 기업인가? 에 대한 기준도 심플하다. 아래 다섯가지 지표를 보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는 ROCE다. ROCE는 ROIC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가장 큰 차이점은 ROIC와 달리 계산식의 분모에 장기부채가 포함(Capital Employed = Debt + Equity – Current liabilities)되기 때문에 회사 경영진이 어떻게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표다. Cash Conversion은 나도 즐겨 보는 지표로 FCF/순이익(투자가 증가하면 낮아진다)이고 마지막 Interest Cover는 이자보상배율로 영업이익/이자비용이다.

펀드스미스 포트폴리오 통계

이 표 제일 오른쪽에 우리나라 코스피200 숫자들을 적어 놓고 비교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대충 기억나는 영업이익률이 우리나라는 7~8% 수준인 걸로 알고 있고 Cash Conversion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히 낮은 지표인지라 50%가 될지 모르겠다.

전부 혹은 일부라도 매도 종목엔 3기업(Diageo, McCormick, 그리고 애플)이고 각각의 매도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신규 매수 종목으로는 Atlas Copco(스웨덴)와 이전에 포스팅했던 반도체 기업 Texas Instruments 2종목을 언급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XN) 투자 전략 지도를 다시 한번 찾아 봤다. 향후 EV증가에 따른 자동차 반도체 시장의 성장가능성과 미국 본토로 반도체 제조업을 다시 가져 오는 것(Onshoring)을 좋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관건은 역시 성장률이다.

TXN 투자 전략 지도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AI산업에 대한 견해를 짧게 밝히고 인덱스 펀드의 증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끝을 맺는다. 주주서한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정보가 딱 들어있다. 테리 스미스의 펀드 역시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만 일관된 투자 철학을 가지고 가치 투자 3.0에 가까운 투자를 하고 있는 몇 안되는 투자자라서 개인적으로 특히 관심있게 지켜 보고 있다.

테리 스미스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기업

개인 투자자라도 새해가 지나 맞이하는 이맘때 주말에 테리 스미스처럼 자신의 지난 해 투자를 복기해 보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을 권하고 싶다. 자신의 가장 잘못한 부분과 잘한 부분을 따져 보고 포트폴리오 기업의 숫자들을 리뷰하면서 생각이 틀린 부분이 있는지 체크해 보는 작업을 꼭 해보길 바란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배우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 인생에서 성공하는 열쇠는 잘 실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과 같이 실수에 대해 수행하는 작업이 흥미롭습니다. 그것에 대해 조금 알려주세요. 무엇이 당신을 그 이해로 이끌었습니까?

레이 달리오 : 시장입니다. 알다시피, 하지만 내 말은, 고통이 위대한 선생님인 것처럼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통과 성찰이 진보와 같다는 것을 배웠고,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은 겸손을 가르쳐줍니다. 공격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방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배운 것은 제가 인생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든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처리하는 방법과 더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수를 하고 그것을 반성하는 것, 그것이 배우는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