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투자 3.0

알을 깨고 나오는 게 쉬울까

과거의 오늘을 챙겨 보는 편인데 아침에 2021년 오늘 찍은 사진을 봤다.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찍은 사진인데 10개 기업을 2022년 예상 FwdPER와 성장률(두 조합이 PEG)로 찍은 것이다. 그레이엄이 가르친 가치 투자 1.0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10개 모두 엄두도 못낼 밸류에이션이고 버핏이 보여준 가치 투자 2.0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그래도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생필품에 가까운 아래 5개 기업에 눈이 먼저 갈 것이다. 물론 피터 린치(가치 투자 2.0 투자자)가 말한 PEG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애플이나 메타를 골랐을 수도 있겠다.

10개 기업 밸류에이션

그렇다면 내가 주장하는 가치 투자 3.0으로 진화한 투자자라면 당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금이라면 또 어떤 선택을 할까? 4년이 지난 이 시점에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익숙한 표로 2025년 4월 현재 10개 기업 현황은 다음과 같다. FwdPER는 애널리스트 예상EPS 평균으로 내가 따로 계산한 것이다.

10개 기업 현재 밸류에이션

오늘 현재 S&P500 PER 28 수준인데 저 10개 기업 평균 PER 27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상위 5개 평균PER 28.3 하위 5개 평균PER 26.2 로 별 차이가 없다. FwdPER로 보면 둘 사이 차이가 조금 더 벌어진다. 5년 성장률을 보면 10개 평균 10.7%에 상위 5개 16.9% 하위 5개 4.4%로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풍부한 현금흐름을 투자와 자사주매입을 통해 성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현금흐름의 거의 대부분을 배당(5개 평균 배당성향 72%)으로 돌려주고 있다. PEG로만 보면 구글과 메타가 1내외로 좋다.

10개 기업 투자 전략 지도

내가 고안한 투자 전략 지도로 보면 두 그룹을 따로 구분짓지 않더라도 상위 5개 기업과 하위 5개 기업이 자연스레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0×10 박스에 들어있는 4개 기업과 15×15 박스 밖에 있는 5개 기업이다. 가치 투자 3.0을 이야기하는 내 논리는 심플하다. 이처럼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10개 기업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는가?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나온 가치 투자 1.0 도구를 가지고 현재 기업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이들을 구분짓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투자자라면 이런 질문도 해야 한다. 아마존은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투자 전략 지도의 오른쪽으로 옮겨갈 수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코스트코처럼 현 위치를 고수할 수 있는가? 10×10박스 안에 있는 기업 중에서 박스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기업은 누구인가? 구글의 원은 왜 저렇게 작은가? 구글은 왼쪽 아래 박스로 떨어질 가능성은 얼마인가? 같은 질문들..

10개 기업 주가 상승률

10개 기업의 과거 5년 주가 상승률을 그림으로 그려 보면 위와 같다. 10개 기업을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었다면 S&P500보다 괜찮은 수익률이었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투표기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체중계다. 포트폴리오 평균을 기준으로 우상단에 위치한 5개 기업과 좌하단에 위치한 5개 기업을 이처럼 명확하게 가른 건 과연 무엇일까? 1.0 가치투자자들이 천금같이 믿고 있는 평균회귀는 이루어 질 것인가? 애플 주가는 왜 더 많이 올랐는가?

2025년 지금 현재 주식에 피같은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돈을 던져 넣기 전(투자란 던질 투 재물 자)에 한번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다. 과거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워런 버핏이 그레이엄의 그늘아래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의 버핏은 없었을거다. 주주총회에서 버핏에게 만약 50년을 더 산다면 능력 범위에 어떤 섹터를 추가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버핏은 기술분야라고 답했었다. 물론 늘 얘기했듯 당신은 버핏이 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업보고서를 읽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당대 최고의 투자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디저트를 먹을 무렵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연례 보고서와 10-K 및 10-Q를 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워런 버핏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포기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일종의 심리 치료와도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워런 버핏이 최고의 투자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워런 버핏의 최고 버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 가이 스파이어, 2007년 버핏과의 점심식사 낙찰자 with 모니시 파브라이

“제 생각에는 월스트리트 보고서를 읽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직접 해보고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40년 동안 월스트리트 보고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례 보고서(10K)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 워런 버핏

“비교적 간단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연례 보고서를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실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찰리 멍거

빌 밀러가 말한대로 가치 투자란 무엇인가가 비싸 보인다고 배제하거나 무엇인가가 낮은 배수로 거래되기 때문에 싸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실제로 묻는 것이다. 높은 PER와 낮은 PER 모두에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관건은 투자자가 최상의 가치를 알고 또한 시장의 잘못 매겨진 가격을 알아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높은 PER지만 잘못 매겨진 가격일 수도 있고 낮은 PER지만 역시 잘못 매겨진 가격일 수도 있다. 맹목적으로 낮은 PER만 뒤지고 있진 않은가? 비싸 보이는 게 진짜 비싼가? 싸 보이는 게 진짜 싼가? 적어도 사업보고서(엊그제가 2024년 보고서 마감일^^)를 읽는 투자자라면 스스로 이 질문들에 답을 찾은 후에 투자를 시작하기 바란다. 투자하는 기업의 보고서도 안읽는 투기자라면 뭐 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테고.

지금부터 5년 뒤 평균 회귀가 일어나면 어쩔려고 또 이런 글을… ㅉㅉ

추가) 우리나라에서 가치 투자 3.0 기업을 찾는다면 말리고 싶다. 기업에 따라 달라지듯 국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가치 투자 1.0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새로운 책을 안쓴다. 미국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나 벌어질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바야흐로 강도남작(Robber Baron) 전성시대 ㅍㅎ

우리나라 현금부자 20선

또 이런 리스트만 보고 혹할까봐 코멘트 남기자면, 시총대비 순현금비중 1위 세원물산을 간단히 보면 대주주 지분이 무려 78%를 넘는다..ㅋ 작년 순이익 220억은 영업이익 13억에 금융수익 63억, 자산처분이익 같은 일시적 기타이익 100억, 지분법 손익 76억에서 법인세(31억)를 제한 금액이다. 청년시절 버핏이 구사했던 행동주의를 할래야 할 수도 없는 기업으로 배당률을 보면 그저 대주주의 선의(?)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이다. 물론 일시적이라고 보지만 영업이익 13억 나오는 사업에 5년 평균 CAPEX는 370억 가까이 투자하고 있다. 역시 대주주의 혜안으로 투자가 잘 돼서 이익이 급증하길 기대할 수 밖에..

세원물산 주가

세원물산 주가 보다가 상한가로 급등한 흔적이 있어 찾아보니 대선 관련주(이유조차 김문수 고향 경북 영천에 위치하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ㅋ)로 들어갔었다..ㅋㅋ 이래야 국장이지. 여기서 무슨 가치를 찾고 있을까. 대선 주자들 성이나 고향이나 학교를 뒤지는 게.

시간이 아주 많은 투자자(내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라면 리스트의 다른 기업들도 하나하나 뜯어봐야 알겠지만 대체로 싼 기업은 싼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중에서 잘못 매겨진 가격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돌 하나 하나 뒤집어 봐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에선 이런 기업들이 있을수도 없지만 우리나라엔 즐비하다. 저평가된 기업이 많다고 마냥 즐거워만 할 일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일이다. 멍거 말대로 투자가 쉬울리가 없다. 왜 투자가 쉬워야 하나?!

“Intelligent investing is not complex, though that is far from saying that it’s easy.”
– 워런 버핏

현금흐름 할인법에 대한 논문 하나를 읽고

휴일 아침에 역시 습관처럼 인터넷을 어슬렁거리다 눈에 띄는 논문 하나를 봤다. 내재가치 계산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현금흐름 할인법에 대한 논문이다. 24년 동안 93개국 증권 보고서 78,000건을 분석한 Paul Décaire과 John Graham에 의하면 내재가치 계산에서 분석가가 주로 사용하는 현금흐름 할인법에서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연도 수, 즉 시간지평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분석가의 시간지평

일반적으로 분석가는 향후 3년 정도(이렇게나 짧은지 몰랐다..ㅋ) 동안의 자유 현금 흐름 성장을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다음 성장이 영원히 어떤 최종 장기 평균(보통 GDP성장률과 관련이 있으며 2.1% 내외로 가정하고 있었다)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관행적인 분석으로 영구가치가 전체 내재가치의 거의 75%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명시적 모델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영구가치의 비율은 줄어들게 되는데 3년의 경우 전체 가치의 78%를 차지하는 반면 9년 이상으로 모델링할 경우 62%로 감소한다.

영구가치 점유율

분석가들이 명시적으로 모델링한 3~5년 성장 평균은 아래 빨간색이고 영구성장률은 파란색이다. 향후 3~5년 동안 12% 내외 높은 성장을 가정하다가 그 이후에는 뚝 떨어진 영구성장률 2% 내외를 적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기업의 내재가치를 일관되게 계산하면 경쟁우위가 있고 긴 활주로를 가진 훌륭한 기업들의 내재가치가 왜곡된다. 항상 고평가가 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5년 뒤에 2% 성장으로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래서 마이클 모부신 같은 사람들은 ROIC가 WACC를 초과하는 한 명시적 예측기간을 더 멀리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빨간색의 명시적 성장률을 보면 분석가들은 경기가 좋을 때는 낙관적으로 예상하다가 반대로 경기가 안좋을 때는 보수적으로 예상하는 어떤 경향성을 보여준다. 분석가들도 사람이라 편향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WACC

마이클 모부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그림 하나. 좋은 기업이든 나쁜 기업이든 훌륭한 기업이든 짧은 시간지평과 함께 WACC보다 훨씬 못한 영구성장률(TGR)을 가정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가치 투자 3.0 기업들을 이전의 현금흐름 할인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항상 고평가가 되기 쉽다.

이 연구는 분석가들이 주식 가치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주관적 할인율과 성장 기대치가 주식 가격 변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할인율은 주식 가격 변동의 28%를 설명하고, 처음 성장률은 38%, 영구성장률은 18%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왔다. 아래 파란선이 전체 보고서의 할인률 평균이고 빨간선은 미국의 보고서 평균을 나타낸다.

분석가가 사용하는 할인률 평균

분석가들의 주관적 할인률(무위험 이자율과 밀접한 관계)은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 있어 편향되지 않은 예측 변수로 나타났고 특히 주관적 베타는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 있어 표준 CAPM 모델보다 더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AI가 요약해서 설명해 준다. 좋은 세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미국 시장이 비싼 이유

토드 콤스가 말한 “할인율 10%에서 PER 26이 되려면 성장률이 15%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한창 밸류에이션 공부할 때 만들었던 그림인데 이 정도만 공유해도 전체 그림의 내용을 대충은 알아볼 듯. 빨간선 4개, 주황 점선 2개, 그리고 파란선 2개.

밸류에이션 그림

현재 미국 S&P500 PER 30 수준이고 포워드PER 22 수준이다. PER 22는 토드 콤스의 계산대로라면 성장률이 대략 12%가 되어야 한다. S&P500의 최근 5년 성장률이 대략 8.6% 내외 수준이고 10년으로 길게 놓고 보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미국시장은 AI 같은 테마로 현재 고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 열풍이 불 때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현재 밸류가 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S&P500 PER

그레이엄 시대에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하는 기업들을 성장주로 봤었다. 주말에 S&P500 가운데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세어 봤더니 거의 50%에 육박했다. 5년 성장 평균이 8.6%니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엄이 성장주라고 부를 기업이 거의 반 이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가치 투자 3.0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필립 피셔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이유다.

“저는 작은 수익을 많이 벌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아주 큰 수익을 원합니다.”
– 필립 피셔

필립 피셔의 15가지 질문 가운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도 있다.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이는 내재가치 계산기에서 “당신의 시간지평은 몇 년인가?” 와 같은 말이다. 내 어림 계산에 의하면 첫 문단에서 토드 콤스의 시간지평은 최소 7~10년이다. 버핏의 시간지평도 거의 비슷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오랫동안 소유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
“We find doing nothing the most difficult task of all.”
– 워런 버핏

“기다림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연된 보상 유전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The first rule of compounding is to never interrupt it unnecessarily”
– 찰리 멍거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좋은 기업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복리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도록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목에는 약간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인내에는 어마어마한 기질이 필요하다.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기질은 귀하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없는 기질을 활용하기 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능을 활용해서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가르쳤다.

“어떤 회사를 사야 할지 분석하는 데 천재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인내심과 용기가 없다면 평범한 투자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좋은 투자자와 나쁜 투자자를 가르는 것은 항상 두뇌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규율입니다…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장기 투자자이며, 주식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어떤 사람들에게 장기 투자자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보일 것입니다. 요즘은 장기 투자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주식이 폭락할 때 진짜 시험이 옵니다.”
– 피터 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