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단상

일요일 오전에 생각나는 게 있어 조금은 긴 글 한편을 써두고는 내일 아침에 올라가도록 예약해뒀다. 휘몰아치는 스팸을 지우면서 주말을 잘 보내고 저녁 무렵이 되니까 한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렸는데 이제 하루가 빈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냥 이빠진 채로 두면 좋을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아쉬움도 든다. 그래서 또 이렇게 흰 백지 앞에 앉아 짧게 주말 단상을 적는다. 아무래도 취미가 블로깅이 될 것 같다..ㅋ

주말에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100페이지 넘게 읽다가 문득 내가 왜 그동안 소설 책을 멀리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모비딕’이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그 섬세한 문학적인 묘사와 비유들이 내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마치 파인다이닝의 잘 차려진 요리같달까. 젊은 시절엔 참 많은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젠 그런 소설 속 재미를 예전처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유튜브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시청각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일까. 아니면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습성때문일까. 느릿느릿한 전개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한 묘사와 비유들이 오히려 책장을 잡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책을 덮고 드라마를 집어 들었다. 요즘 새로 재미를 붙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다. 홈페이지 이름이 ‘의심’이다..ㅋ 이야기도 재밌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영상미도 좋다. 하긴 드라마 소재라 봐야 형사, 변호사, 의사 같이 사건이나 대상이 계속 바뀌는 직업들이 주가 된다. 그래서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주인공인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는 참 드믈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는 법인데 한강 작가의 소설이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가 특별한 사건을 주제로 한다는 내 선입관이 들어가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도 주문을 넣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거 같다는 톡을 받았다. 이젠 책을 쥐면 자동으로 내 시간이 먼저 계산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번 책을 쥐면 끝까지 읽었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내 흥미를 끌지 못하면 중간에 그만 읽는다. 그래서 내겐 끝까지 읽은 책과 중간에 그만 읽은 책으로 나뉜다. 부디 한강 작가의 소설은 끝까지 읽은 책에 들어가길…

한강의 소설책을 구했다

모처럼 첫째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습관처럼 동네에 있는 교보문고로 걸음을 옮겼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면 사준다고 항상 서점에 들어가기 전에 얘기하지만 애들은 읽고 싶은 책이 없다고 한다. 아빠를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빠 마음은 좋은 책 한 권 사주고 싶은데.. 한강 작가가 노벨상 받았다고 온 나라가 난리인지라 덩달아 나도 한강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어서 책장을 뒤져보니 ‘여수의 사랑’ 딱 한 권 밖에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러곤 한강 노벨상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한강의 낭독을 들을니 소설책 중에 ‘작별하지 않는다’만 읽고 싶어졌다. ‘소년이 온다’는 시대를 아는지라 읽기 힘들 것 같았고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하도 어렵다고들 해서 복잡한 일도 많은데 굳이.. 당연히 서점에는 품절대란일테니 지금 예약해도 11월에나 받겠다는 뉴스보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늘 서점 매대에서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책을 발견해서 바로 구매..러키비키(무슨 말인지..ㅎ)잖아.

한강 작가 나이를 보고 모르긴 몰라도 함께 수업을 들었을수도..라고 행복회로를 돌렸다. 하다 못해 채플이라도~ 그러고 보니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상 받았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ㅋ

부쩍 늘어난 글쓰기 책, 그리고 AI

신간을 훑어 보다(일전에 언급한 것처럼 신간안내를 RSS를 통해 자동으로 받아본다) 보니 글쓰기나 블로그 관련 신간들이 부쩍 늘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몇 개의 목차를 대충 훑어 봤는데 AI를 이용한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신간이 제법 있다. 이런 것에 대한 비판(?)은 그간 많이 했으니 그만하고, 어떤 책은 내용 반절이 AI사용법에 할애되어 있다. 이 정도면 글쓰기 책인지 AI입문서인지 분간하기 힘든 실정이다. 글쓰기 분야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AI사용을 먼저 해 본 사람이 자신의 노하우를 설명하는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공개하는 거니까 듣는 사람 입장에선 효용이 있을 수도 있고 특별한 테크닉을 배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ChatGPT 사이트 하나하나 캡쳐하고 가입절차 하나하나 스크린샷을 떠서 가입과정을 소개하거나 아주 단순한 기본적인 사용법을 알려 주면서 책을 채운다는 건…그건 그냥 사용 매뉴얼 아닌가.

블로그 글쓰기

(AI에게 AI를 이용한 블로그 글쓰기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니까^^)

그런건 ChatGPT를 만든 OpenAI에서 직접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나눠줘야 할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매뉴얼을 만들지 않는 것은 사용법이 너무 쉽거나 사용법을 공개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용행태를 AI에게 학습시키려 하거나 아니면 이처럼 자발적으로 배포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그냥 들어가서 가입하고 궁금한거 물어보고 사용하면 되는 걸, AI 종류나 각 AI별 가입절차나 사용법을 일일이 세세하게 안내하는 게 책으로서 가치가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

뭐 이런 일은 주식 투자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네이버 증권 사용법이라든지 HTS사용법, MTS사용법, 각 증권사 프로그램별 세팅방법, PER PBR 같은 용어 설명을 AI 설명하듯이 설명하는 책들이 정말 많고 주식투자를 처음하는 독자들도 그런 책들을 제일 많이 찾는다. 수요가 공급을 낳고 공급이 수요를 낳는다. 그러면서 정작 주식투자에 필요한 사고체계나 역사, 그리고 핵심 노하우는 책에 없거나 생략된다. 두리뭉실한, 어디서 짜집기해서 본듯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런 방식의 사용 매뉴얼들도 필요하지만 그런건 증권사 사이트 들어가거나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시작할 때 무엇을 읽을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읽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어떤 책을 읽을까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읽지 않을까도 역시 중요하다.

“다음 세대 기업가와 창업자를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이 여기서 하루를 단축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내가 저지른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면, 아니면 그저 약간 조언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을 것이다.” Sequoia Capital의 투자 파트너이자 패션 웹사이트 Polyvore 전CEO였던 Jess Lee가 한 말이다. 기업가와 창업자를 “투자자”로 바꾸면 처음 책을 썼을 때의 마음이다. 내 책은 내 경험담이자 독후감이자 내가 저질렀던 실수에 대한 반성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블로그가 책이다. 수필같은,

투자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기보다 먼저 투자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쓰는 것이다. 길은 걸어가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물고기에게 육지를 걷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육지에서 보낸 하루는 그것에 대해 천 년 동안 이야기한 것과 같은 가치가 있고, 사업을 운영하는 하루는 정확히 같은 종류의 가치가 있습니다.”
– 워런 버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