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유심 해킹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원인모를 이유로 정전이 되어 혼란했었다는 뉴스가 흘러 나오고 우리나라는 유심 해킹으로 떠들썩하다. 전기도 데이터도 이젠 생필품에 가까운데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땐 남 일인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내 일이었다..ㅋ SK텔레콤을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알뜰폰을 접하곤 번호이동을 했었는데 그게 하필 또 SK텔레콤 망을 사용하는 거였다. SK텔레콤에선 알뜰폰 서버를 분리하지 않고 같이 사용하다가 이번에 함께 털렸다나..

유심보호 서비스는 해뒀었고 명의 도용 방지 서비스는 접속이 안되다가 1시간 기다렸다가 했다. 유심은 e심으로 교체할려니 귀찮아서 지난 토요일에 사이트 열린 것 보고 바로 온라인으로 유심신청을 해뒀는데 방금 발송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유심 바꾸면 또 이것저것 손봐야 할 것들이 연쇄적으로 생길텐데..(스미싱으로) 5천만원 털렸다는 기사가 뜨면서 사람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한 것 같은데…굳이 유심교체를 해야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SK텔레콤 주가

SK텔레콤 주가를 보니 최근 8영업일 주가가 -6.3% 빠졌다. 지금 시총으로 보면 대략 7,000억 정도 빠진 셈이다. 현재 배당수익률 6.52%로 조회되니 대충 배당받는 만큼 날아간 셈이다. 성장(1~2% 수준)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대신 배당성향 60%정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배당주였는데 시장 1위 기업의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고객 이탈이 얼마나 되고 매출이 얼마나 줄어들지, 보안관련 투자와 R&D에 어느 정도 추가 투자가 들어갈지, 관련 소송은 어떻게 될지(이 부분은 과거 사례로 볼 때 그리 큰 영향은 없을듯…그래서 기업들이 둔감한지도), 이익은 얼마나 줄어들지를 투자자라면 체크해 봐야 한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국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고, 분석을 올바르게 하고, 올바른 베팅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로서 아주 잘한다면 8번 중 2번만 틀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분명히 실수라고 말하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실수는 투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회사에 투자할 때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워런 버핏이 투자 초기에든 투자 주기의 후반기에든 투자 과정에서 항상 일관되게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경영진입니다.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경영진을 두는 것은 워런 버핏에게 있어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는 투자 경력 초기뿐만 아니라 중기, 그리고 말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24년 1.2조가 조금 넘는 지배주주 순이익이 올해 증가하긴 힘들것이다. 올해 순이익이 1조 정도로 줄어든다면 배당성향 50%로 현재(60%)보다 약간 줄여서 가정하면 5,000억 배당으로 현재 시총 11.66조로 계산하면 시가배당률 4.29%가 된다. 과거 5년 평균 시가배당률이 대략 6%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8.3조(28%정도 하락)…배당성향 60%로 지금과 같이 가정하면 6,000억 배당을 6%로 나누면 10조(9%정도 더 하락해야 한다)가 된다.

물론 배당으로 단 1년만 예상하는 이 간단한 계산에도 수많은 가정들이 들어가 있다. 가정대로 순이익이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배당주 투자에서는 배당을 줄 수 있는 재원인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배당성향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잘 고려해야 한다. SK텔레콤의 현재 부채비율은 150%가 넘고 사채 6.3조에 현금 2조를 들고 있다.

과거 5년 평균 PER 10내외였고 성장률을 감안한 적정 가치도 대략 그 주변 언저리에 있다. 1조 순이익에 PER10을 곱하면 역시 10조 정도 가치가 나온다. SK텔레콤의 올해 매출과 이익이 증가할 수 있을까?! 지금 들어갔다가 6% 배당을 얻고 -9%를 잃진 않을까?! 악재로 인해 주가가 빠졌다고 덜컥 들어가기 전에 따져봐야 할 일이다.

한국의 개

오늘자로 뽑은 한국의 개에도 1월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1월과 달리 KT빠지고 삼성생명 들어왔다. KT주가가 YTD로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ㅋ

KT 주가

누구든지 직접 계산해 볼 수 있는 내재가치 계산기를 따로 공개한 뒤로는 거의 올리지 않은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로 계산한 결과, 정말 딱 10초만에 나왔다. 안전마진없이 계산된 결과다. 그나저나 내일 유심 교체 해야하나?!

SK텔레콤 10초 내재가치 계산기

주식 시세를 계속 확인하지 말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라

“주식 시세를 계속 확인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투자 기간이 짧아진다. 장기 투자자는 기업을 분석하고 향후 10년의 사업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데, 모든 장기 분석을 부정하는 일일 주가 변동성에 집중하면 단타 매매자가 되고 만다. 매매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가치투자자가 좋은 단타 매매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똑같지만 이것은 내가 아니라 비탈리 카스넬슨이 한 말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접은 부분이다. 그의 뉴스레터를 오래전부터 구독해왔기에 대부분 눈에 익은 문장이다.

언젠가 적었지만 그 큰 돈을 투자하는 워런 버핏도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는 기업들의 주가를 매일 쳐다보지 않고 1~2주에 한번씩만 보며, 기업을 분석할 때도 기업 비즈니스 모델과 가치를 먼저 계산한 후에 가격을 나중에 계산한 가치와 비교해서 본다고 한다.

“우리는 활동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얼마나 오래 기다릴지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무한정 기다릴 것이다.”

“오늘, 내일, 다음 주, 또는 내년에 그 주가가 어떻게 오르내리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5년 또는 10년 동안 기업이 어떻게 성과를 내느냐입니다. 차트나 숫자와는 관련이 없어요. 비즈니스와 경영진이 핵심입니다.”

– 워런 버핏

매일 매일의 주가가 아니라 결국 시간이 진실을 드러내는 법이다. Time reveals all things. 비슷한 말로 동양에는 “水落石出 물이 빠지면 돌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고 버핏은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지 안다고 했다.

어느새 내가 쓴 책이 세상에 나온지도 거의 5년이 되어간다. 5년이란 시간은 진실이 드러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책에서 투자할 기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기업을 직접 고르지 못하는 투자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나 은행 예적금만 했던 사람들에게 즉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간단한 주식 투자 전략도 추천했었다.

투자 전략별 수익률 표

책을 읽다 생각난 김에 전략별 최근 5년 수익률을 간단히 계산해 봤다. 비용과 배당은 계산하지 않았으며 코스피를 제외한 나머지 전략들은 CAGR 계산시 환율효과(상단 기울림)도 포함해서 명목 수익률을 계산했다. 다만 나중에 추가한 듀얼모멘텀(GEM)은 누적수익률은 따로 계산하지 않았고 CAGR만 계산한 수치로 환율효과를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단 기울림을 더해 주면 같은 비교 값이 된다. 환율효과를 반영해서 다시 추가했다.

5년 수익률을 볼 때, 5년 전 이 시기에는 코로나로 가격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감안해서 봐야 한다. 시간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10년 수익률을 참고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인덱스처럼 생각했던 버크셔해서웨이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 버크셔를 추천했던 5년 전에도 내게 버핏이 죽으면 어쩔거냐는 사람들이 많았다..ㅋ

“투자 기업을 고르지 않는 방법에 따로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다섯 번째 방법으로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투자를 강력 추천한다. 이유는 다음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워런 버핏처럼 투자할 수 없다면, 워런 버핏을 나를 위해 일하는 펀드매니저로 고용하면 된다. 버핏의 나이가 걱정이라면, 버크셔해서웨이에는 잘 훈련된 그의 후계자들이 있다.”
– 내가 책에서 한 말이다..^^

5년 전에 내가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주식투자자들이 좁은 우리나라 시장에만 시야를 두지 말고 넓은 미국 시장(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도 함께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제일 앞 부분에 우리나라 시장의 낮은 수익률을 직접 계산해서 보여줬었다. “2000년 이후 최근 20년 주가성장률을 보면 3.87%로 4%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0년 이후 최근 9년의 성장률을 보면 2.71%로 더욱 떨어졌다.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목표 수익률을 물어 보면 20~30% 이상을 이야기한다..”

5년이 지난 지금 최근 3년 수익률 CAGR -1.7%, 최근 10년 수익률 CAGR 1.5% 수익률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 마이너스다. 그럼 지금부터 미래 5년은 달라질까? 달라진다면 또 얼마나 달라질까?! 물론 미국 시장이 과거처럼 10%이상 수익을 계속 내준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버크셔해서웨이가 과거 60년의 성과를 미래에도 계속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시간만이 진실을 드러낼 뿐이다. 내가 책에서 강조했듯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비탈리 카스넬슨의 이번 책도 본인의 혹독했던 경험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하고 있었다.

“투자는 기복이 심한 비선형적인 일이다. 모든 투자자는 자신의 전략이 시장 상황과 완전히 어긋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시장은 급등하는데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급락하면 고통은 추악한 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치투자는 정반대 방식의 역 투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장주 투자자는 사랑, 화합, 평화, 합의의 열차를 타고 미스터 마켓이 열광하는 회사를 매수하고 사랑에 대한 댓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사랑은 값비싸고 적어도 성장주에 있어서는 영원하지도 않다.
반면 가치투자자는 증오의 영역에 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주식을 매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에 성장주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던 회사를 가치투자자들이 소유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랑이 식으면 증오가 난무하는데, 아무도 증오에 대해 웃돈을 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매우 저렴하다.
투자 스타일은 순환 주기를 거친다. 당신이 투자한 주식에 대한 선호도가 완전히 없어질 때가 있다. 당신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당신은 스스로 계속 되뇐다. 단기적으로는 어떤 결정과 그 결과 사이에 연관성이 적거나 전혀 없다고. 이것이 투자의 기본 진리다. 머리로는 그렇게 믿지만 매일 출근하면 시장이 반복해서 말한다. 당신이 틀렸다. 당신이 틀렸다. 당신이 틀렸다.”
– 비탈리 카스넬슨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나는 장기적으로는 우리 포트폴리오가 좋아질 것을 알았지만 ‘장기’는 언제나 ‘단기’보다 훨씬 더 먼 미래의 일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 에픽테토스, 스토아 철학자

추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5년 동안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책 말미에 실제 기업 분석 사례로 기업 분석 방법을 자세히 적어 놓은 바로 그 기업이다. 과거에 내가 읽었던 모든 주식관련 책에서 실제로 기업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없어서 내가 실제로 기업을 조사하고 투자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 거의 그대로 책에 남겼었다. 누구는 뭐하러 개별 기업을 넣었냐 그러고 누구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그 부분이다. 5년 CAGR 54.8% !!! 정말 미친 수익률…이게 바로 인덱스가 아닌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기도. 물론 난 책에 적어 놓은 그대로..ㅋ

“투자는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평균 수익률을 얻는 것은 정말 쉽습니다. 인덱스 펀드를 사기만 하면 됩니다. 평균 이상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평균 이상이 되고 싶다면, 평균 이상이 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이 평균 이하가 될 위험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 하워드 막스

도덕경에 이른 책의 흐름

최근에 읽은 책이 “다산의 마지막 습관”이다. 다산(정약용의 호, 강진 유배시절 차가 많이 나는 산 이름을 따서 지음)이 말년에 ‘小學’으로 몸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돌아갔다는 내용(마음을 다스리는 ‘心經’은 ‘다산의 마지막 공부’로 같은 저자가 출간)인데 최근 계엄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책 내용이 내게 더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산의 생각처럼 우리가 배울 모든 것은 이미 초등학교에서 다 배웠으니 고위 공직자들이 몰라서 안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에게 하도 실망해서 이참에 여유당전서에 있는 ‘목민심서’를 한번 읽어볼까 하다가 왜 다산전서가 아니라 여유당전서일까 싶었다. 다산이 호라면 여유당은 두물머리에 있는 당호(집의 호를 말하지만 주인을 칭하기도 한다)다. 다산이 직접 당호를 지었다고 하는데 도덕경 15장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내 병은 내가 알고 있다. 용기는 있지만 지모(智謀)가 없으며,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마음에 따라 곧바로 행하고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만 둘 수 있는 일이지만 진실로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실로 마음에 걸리거나 통쾌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서는 일찍이 세속을 초월함에 치달리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과거공부에 빠져 돌아보지 않았으며, 서른 살이 넘어서는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깊이 진술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을 좋아하여 싫어할 줄을 몰랐으나 홀로 비방을 많이 받았다. 아! 이것 또한 운명인가? 성품이 이에 있으니 어찌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겠는가?”

정약용은 자신이 비방을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 바로 자신의 이런 기질에 있다고 본 것이다. 정약용이 지침으로 찾은 구절은 가장 널리 알려진 왕필본 도덕경 15장의 바로 이 구절이다.

豫焉若冬涉川(예언약동섭천) : 겨울에 개울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신중하다

이 구절의 첫 두 글자를 가져와 당호로 썼다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유’가 되어야 할텐데 왜 ‘여유’가 됐을까? 왕필본 보다 조금 앞선 하상공본 도덕경(이 두 개를 통상 통행본이라 한다)을 보면 다음과 같다.

與兮若冬涉川(여혜약동섭천) : 겨울에 개울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猶兮若畏四隣(유혜약외사린)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신중하다

1973년 호북성 장사시 마왕퇴 한나라 묘지에서 발견된 백서본(백서갑과 백서을, 전국시대 말기 추정) 도덕경에도 ‘예’가 아닌 ‘여’로 되어 있지만 200년 전 정약용이 백서본을 봤을리 없을테니 아무래도 왕필본이 아닌 하상공본 도덕경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중국에는 왕필본(학자층이 주로 사용)이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하상공본(중국 민간이 주로 사용)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1993년 중국 호북성의 곽점촌에서 죽간 형태로 발굴된, 현재로선 가장 오래된 곽점본 도덕경(전국시대 중 후기)에는 이것이 夜로 되어 있고 해설을 찾아 보니 豫의 가차자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추측컨대 한자의 予는 나/줄 여 라고들 하는데 ‘미리’를 뜻하는 豫의 약자로도 쓰인다. “予는 豫(미리 예)의 성부이며, 속자(俗字)이기도 하다. 다만 予는 쓰임이 그리 많지 않고, 與(줄 여), 豫(미리 예)에 대부분의 용례를 빼앗긴 형편이다.” 대충 이런 흐름으로 與가 되지 않았을까?!

대충 눈치 챘겠지만 다산의 책을 읽다가 기어이(?) 도덕경의 판본에 이르렀고 평소 벼르고 있던 도덕경의 가장 원형이라는 곽점본 도덕경을 읽기에 이르렀다..ㅋ

죽간에 반영된 노자의 언어

이 책을 읽어 보면 우리가 알던 도덕경이 도덕경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도덕경하면 누구나 먼저 떠오르는 제 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조차 곽점본에는 없다. 백서본에서부터 있는데 이조차 ‘도가도 비상도’가 아니라 道可道 非恒道다. 한나라 5대 황제의 이름을 피휘해야 해서 후대에 恒을 常으로 바꿔썼다. 이런 피휘는 문서의 작성 연도를 파악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마천 사기에 적힌대로 노자가 함곡관을 넘어가면서 5천자 도덕경을 남겼다고 했지만 곽점본 원형을 보면 단 2002자 뿐이다. 또 백서본을 보면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으로 도경이 뒤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노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오래전 읽은 노자 도덕경(왕필본을 읽었다)은 내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책이다. 특히 36장이 특별하게 다가왔었는데 이번에 읽어 보니 곽점본에는 내가 좋아하는 36장이 없었다. 아마도 후대 도가, 법가들이 도덕경에 통치술을 추가하면서 들어간 부분일텐데 36장 뒷 부분은 얼마전 읽은 장자 외편에도 그대로 나오는 걸로 봐선 메이광 교수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36장의 ‘거두어들이고자 한다면’이 포함된 구절에 대해 왕필은 횡포에 대항하고 폭동을 없애는 수단을 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논변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팩트는 매우 간단합니다. 이런 장절(가령 7장, 36장)들은 후대에 추가시킨 것들이며 원래 ‘노자’의 내용에는 속해 있지 않았던 것들이었습니다.”
– 메이광

이번에 도덕경 판본을 따라가면서 또 느꼈지만 모든 원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현학적이지 않고 투박하다. 곽점본 제일 첫 장은 다음으로 시작한다. 통행본 19장 내용으로 곽점본 노자 출간 이후 철학사상계에 가장 큰 파장을 가져다 준 장절 중 하나다. 특히 도가가 유가를 배척하는 대표적인 구문으로 알려져 왔던 통행본 문장(절성기지, 절인기의, 효와 자애)이 곽점본에는 다르게 적혀 있다(절지기변, 절위기려, 계자).

앎과 말재주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된다. 술수와 이익을 버리면 도적은 사라진다. 행하려는 마음과 사사로운 걱정을 버리면 백성들은 아이처럼 순수한 상태로 돌아간다. 이 세 문구로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또 이렇게 당부할 수도 있겠다. ‘투박함을 지니고 사리사욕을 줄여라’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