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장안의 화제인가보다. 넷플릭스 시청 1위에 랭크되어 있고 SNS 이곳 저곳에도 마케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 관련 코멘트가 줄을 잇고 있다. 사실 초반에 과도하게 많이 노출되길래 마케팅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재밌게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난 게 느껴진다. 국내 2위에 랭크된 ‘소년의 시간’은 해외에서 전체 1위를 하고 있는 영국 드라마다. 내 반골기질은 1위보단 2위를 선택한다. 폭삭 속았수다는 도입부만 살짝 보다가 관뒀다.

소년의 시간은 4회로 구성된 짧은 드라마다. 이제는 뭔가를 보기전에 시간을 먼저 가늠하게 되는데 4회 분량이라면 흔쾌히 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분량이기에 부담없이 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폭삭 속았수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16회차로 순서대로 공개된다고 하니 부담스런 분량이긴 하다.

소년의 시간은 모든 회차가 단 한 번의 카메라 롱테이크로 끝나는 어찌보면 이상한 철학을 가지고 만들었다. 거의 면담실 안에서만 진행되는 3회차 내용 정도면 충분히 받아들이겠지만 공간의 이동이 있는 다른 회차에서도 굳이 왜 그렇게까지? 싶은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롱테이크를 통해 극사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이상하단 생각을 꾹 눌러 담으며 몰입해서 봤다.

소년의 시간 3회

엊그제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도 이 드라마를 언급했다고 한다. “저도 16살 아들, 14살 딸과 함께 집에서 보고 있습니다.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에 영향을 받아 저지르는 폭력은 혐오스럽고 우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드라마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어떤 또래문화를 이루며 어떤 방식으로 기성세대의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소비하는지를 도파민이 뿜붐 터져나오는 자극적인 방식이 아닌 찬찬히 들여다 보는 방식을 선택해서 관객들이 생각하게 한다. 10대 청소년들의 커뮤니티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평범한 소년이 자신도 모르게 숨겨놓은 모습을 드러내는 사진 속 3회차는 압권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무래도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게 되는데…그래서 끔찍한 사실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극 중 부모들의 연기(배우들의 연기력도 꽤 좋았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극중 부모는 비록 자신은 강압적인 부모밑에서 자랐지만 아이들만은 절대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름 지금까지 잘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 아이들 세상은 부모들이 모르는 또다른 폭력으로 가득차 있다. 공부 잘하고 말 잘듣고 조용하게 가만히 방 안에만 있으면 괜찮겠지…괜찮을까? 4회차에 부모들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복기하게 된다. 물론 2회차에 약간의 답을 던져주긴 한다.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나서 든 생각은 이게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갈라치기와 비난과 혐오로 가득한 어른들의 스마트폰 세상은 다를까.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까지 이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범죄율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쪽에 치우친 극한 주장들에 대한 가짜 영상들을 쉽게 만들수 있는 AI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민자들에 대한 가짜뉴스로 점철된 SNS, 그리고 그런 가짜 정보에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소년들이야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제대로 된 교육을 아직 받지 못해 그렇다고 하지만 다 큰 성인들이 제대로 팩트 체크 되지 않은 가짜 뉴스에 선동되는 것을 보면 드라마처럼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금쪽같은 아들이 하루 아침에 살인자로 체포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당장 내일 정치인 누군가가 살해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판이다.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중국인이나 빨갱이로 치환하면 바로 우리나라와 똑같은 문제가 된다.

드라마 속 경찰이 회상하는 학교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바다 건너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잠깐 잠깐 나오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 역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상수업을 주로 하는 선생님, 음성이 소거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경찰, 돈 버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는 부모, 무너진 공동체와 이젠 단어속에서만 살아 있는 어른…쓴소리와 사랑은 중첩이다. 하지만 쓴소리는 때때로 거부의 언어로 받아들여진다. 쓴소리는 거부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다. 쓴소리와 거부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으로 보면 완전히 다르다. 이 드라마는 거부받은 소년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쓴소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쓴소리가 제대로 통할 수 있는 맥락이 살아있는 세상, 그리고 몸만 큰 어른이들이 아닌 제대로 된 어른들이 더 많이 살아계시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AI보다 건강한 인간 시민을 키워 내는 것

봉준호 감독이 AI가 쓸 수 없는 글을 고민한다는 얘기로 시작하는 글을 하나 썼었다. 엊그제 들은 팟캐스트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 ‘미키17’을 만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얘기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계약서에 감독판 편집 외 워너브러더스가 만든 편집판을 가지고 시사 관객들에게 일종의 A/B테스트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다고 했다. 거액을 투자하는 제작사의 입장도 있었겠지만 비록 감독의 거부권이 있었다고해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기분나쁠 일이다. 다행히(?) 평가는 감독판이 더 나은 것으로 나왔지만 이로인해 영화 개봉 일정이 예정보다 6개월 정도 지연됐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좋아하는 작가 장강명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선 차기작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AI 물결이 휩쓸고 간 바둑계를 취재한 이야기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에 바둑계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AI가 쓸 수 없는 글을 염두에 뒀듯 알파고 이후 바둑기사들 중에서는 AI가 둘 수 없는 수를 연구할 것이라는 기사들도 꽤 있었는데…지금 그런 말을 하는 프로기사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젠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오직 AI의 수를 새로운 정석으로 받아들이고 AI를 열심히 연구하는 기사들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알파고 이후 바둑의 모든 수는 확률로 계산된다. 이 수를 착점하면 승률이 2.48% 향상됩니다 같이 모든 착점은 숫자로 치환되는 세상이다. 지금 내가 블로그를 쓰는 걸로 예를 들면 이 단어를 사용하면 블로그 조회수가 0.73% 올라갑니다 쓰시렵니까? 혹은 영화를 예로 들면 이 장면보단 이 장면이 사람들의 몰입도를 1.57% 올릴 수 있습니다…같은 세상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시간에 골든크로스가 일어날 확률이 94%인 000주식을 매수하고 1.5% 수익이 난 순간에 자동 매도하시겠습니까? 아니 아예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AI가 로직대로 자동으로 매수매도를 반복하는 세상이다.

최초 알파고는 세상에 있는 기존의 모든 바둑 기보들을 미리 학습하는 방식으로 했다가 곧바로 기본적인 바둑 규칙만 알려 주고 스스로 바둑을 두면서 학습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인간이 1,000년 걸릴 시간의 대국을 AI는 3일도 안걸려 두고나서 기존 바둑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를 박살냈다. 투자에도 이와 비슷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 백만개의 미래를 본 뒤에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처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이런 수없이 많은 미래 시나리오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쓴 책에서도 사용했던 곳에 가면 누구나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볼 수 있다.

물론 규칙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바둑과 규칙이 매일 변하는 투자와는 다를 것이다. 어제까지 있었던 공매도가 하루아침에 금지되거나 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규칙들이 수도없이 추가되는 세상이다. AI가 지키는 규칙을 어기는 수많은 불법과 편법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들의 감정은 또 어떤가. 공포와 탐욕에 영향을 받는 감정의 기복을 감정이 없는 AI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AI학자 중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진정한 AGI가 되기 위해서는 AI도 인간의 몸을 가져야 한다고. 진정한 투자 전문 AI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게 가능하긴 할까.

얼마전 TV에 방영된 7세 고시 이야기를 다큐로 보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신문기사에는 더나가 4세 고시도 있다고 한다. 1년 전쯤 TV에서 10살 아이의 목표가 살아남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뜨악했던 기억도 난다. 어제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수능 만점을 받고 의대에 갔던 아이가 강남에서 연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내용이 나왔다. 장강명 작가에 의하면 이제 바둑을 관전하는 시청자들도 더이상 프로기사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두는 한수 한수를 음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옆에 AI프로그램을 놓고 대국을 따라 두면서 프로기사들의 착점을 AI 수와 비교하고 비판하면서 본다고 한다. 판사의 판결을 더 뛰어난 AI판결과 비교할 수 있는 세상, 의사의 진단을 더 정확한 AI진단과 비교할 수 있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지금처럼 판사와 의사들을 키워야 하는가. 4세부터 고시를 치루며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서 명문대에 보내고 나면, 의사와 판검사가 되어 그들이 마주칠 세상은 정녕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같을거라고 생각하는가. 뭐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러겠지만,

영화 Her 한 장면

영화 ‘Her’의 AI는 마치 사랑스런 연인같다. 항상 좋은 말을 해주고 내 감정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붇돋아준다. 늘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해준다. 죽을때까지 연애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나를 위해 쓴소리 하나 없이 좋은 말만 해주는 연인이 옆에 있다면 행복할까? 내 주위나 SNS에 그런 사람들(혹은 AI들)로만 가득 있으면 내 기분은 좋아질까? 4세 고시를, 7세 고시를, 혹은 명문대를 들어가는 저 아이들 주변에는 쓴소리를 해줄 친구나 어른들이 있을까. 아니 그렇게 힘든 경쟁들을 통과하고나면 AI보다 더 잘 외울 수 있을까? AI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습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결국 진짜 AI를 만나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사이비 AI들을 만들어내고 있진 않은가? (이런 생각을 남기고 있는 나역시 옛날 사람이자 꼰대..ㅋㅋ)

이젠 아이들 모두 성인이라 비오는 날이면 아주 가끔씩 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아이들에게 삼겹살 먹자고 하면 삼겹살만 구워내는 게 아니라 버섯이며 마늘이며 신김치며 이것 저것 함께 구워 내준다. 삼겹살 먹자는 소리에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을 곁들여 준비하면 내가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마음이다. 소주도 한 잔 하자고 하면 아빠 건강생각해서 먹지말자고 손사레치며 말린다. 난 안먹을테니 너희들이라도 먹으라고 해도 옆에서 먹으면 먹고싶어 진다면서 자기들도 안먹겠다고 내게 쓴 소리와 배려를 함께 건넨다.

언젠가 무심코 한 말 중에 내 아이들을 (권리와 의무를 가진)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시켜 제 몫을 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물론 다른 시민들도 동시에 배려할 수 있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 아이가 군복무를 잘 마치고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기뻤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할 때도 정말 기쁠 것이다. 지금처럼 사이비 AI로 자라서 굳이 진짜 AI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설령 가정을 꾸리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더라도 굳이 남들이 다 가는 4세 7세 고시 같은 그런 길은 피하길 바란다. 그저 건강하고 따뜻한 인간 시민이면 됐다. 물론 이것도 쉽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