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워크를 다룬 드라마 우린 폭망했다

1년 전, 애플TV에 가입해서 파친코를 보고 다른 거 뭐 볼거 없나 하다가 봤던 드라마다. 내용도 모르고 출연배우도 모르는(앤 해서웨이는 알았다) 상태로 보기 시작했는데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위워크를 다룬 드라마였다. 지금은 파산여부가 관심일 정도로 무너졌지만 위워크는 한때 기업가치 470억 달러(약 60조원)를 인정받았던 대표 유니콘 기업이었다.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유니콘이니 100억 달러 이상인 데카콘이 맞겠다.

우린 폭망했다 영화포스터

성장주에 투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도 보며 재밌을 장면들이 꽤 많았다. 비전펀드로 전세계 성장주 투자를 좌지우지했던 손정의(김의성 분)도 볼 수 있어 좋았다. 단 10분 내외의 만남으로 20조 투자를 결정하면서 손정의가 CEO인 아담 뉴먼에게 한 질문은, “미친 사람과 똑똑한 사람이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였다. 뉴먼은 “미친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손정의는 흡족해하며 “더 미쳐라”라고 말한다. 드라마를 보면 미친(?) CEO가 기업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잘 볼 수 있다.

WeWork 주가

야후에서 현재 주가를 조회해 보니 현재 시가총액이 1억불이 조금 넘는다. IPO 얘기나올 때 470억불 가치를 받던 회사가 불과 몇 년후에 1억불로 작아졌다. 손정의 회장 최고의 투자 실패로 남게 됐다. 이처럼 투자 세계는 1억 기업이 470억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가 훨씬 더 많은 곳이다. 실적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이기 때문에 과거에 아무리 투자를 잘했더라도 0을 곱하면 0이 된다. 그래서 분산이 중요하다.

위워크를 검색하다 기업은 폭망했지만 지분 매각과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제도로 조단위 돈을 번 창업자 뉴먼의 최근 인터뷰를 봤다. 새로운 부동산 임대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플로(Flow)는 위워크처럼 상업용이 아닌 주거용 임대를 주로 하는 기업으로 이미 3,000개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벤처캐피털 회사 a16z로부터 3억50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고 하니 인물은 인물이다.

위워크의 IPO 신청 당시 제기됐던 비판, 즉 회사의 실제는 부동산 사업인데 위워크를 기술 회사로 묘사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최고의 투자업체들이 계산한 밸류에이션은 실제로 돈을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재무제표를 아무리 열심히 보고 많은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살펴 보더라도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래는 JYP의 임직원 현황을 년도별로 살펴 본 그림이다. 직원 수, 임원 수, 직원 급여총액, 임원 급여총액, 평균 급여 같은 숫자들은 재무제표만 살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당 매출액이나 인당 영업이익을 통해 생산성 숫자들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이 숫자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임직원 현황 급여총액

(출처 : 버틀러)

임직원이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해서 급여총액도 증가하는 것이 보인다. JYP같은 엔터산업은 유형자산보다 인적자산이나 무형자산이 훨씬 중요한 산업이다. 저 증가하는 임직원 중에 핵심인력이 이탈하고 평범한 인력들이 충원된건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미래 매출을 좌우할 새로운 그룹의 준비상황을 알 수 있는가? 세계 진출을 위해 새롭게 충원한 인력에 대해 알 수 있는가? CEO가 어떤 생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가?

재무제표는 기업 분석의 시작일 뿐이다. PER 에서도 말했듯 모두가 아는 정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기업 분석은 남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보이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업이다. 물론 보이는 것을 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있는지를 돌아 보고 그런 능력이 부족하면 먼저 그 능력을 채워야 한다. 밸류에이션이나 투자는 그 다음이다.

일반 투자자들의 기업 분석을 도와주는 좋은 툴들이 많이 나왔다. 예시로 든 버틀러도 정말 좋은 사이트로 현재는 모든 정보를 무료로 제공중이다. 버틀러도 수익을 위해서 언젠가는 유료로 전환하겠지만 그 전까지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정리한 데이터를 이용할 때도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의 시각을 내 것으로 만들어 결국은 나의 분석모델을 업그레이드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버틀러에 들어 가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분석 정보를 남들과 똑같이 보면서 똑같은 시점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모델로 정리해서 나의 관점에서 기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저 위에 아무렇게나 나열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엄청난 지적 노가다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필립 피셔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했다). 투자할 자격은 그 다음에 얻어 진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직접 투자를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인덱스 투자를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서 인덱스 투자를 한다.

기업 재무제표 분석 속도

내 기업 재무제표 분석 속도는 어느 정도 일까? 딱 1년 전, 싸고 좋은 기업들이 제법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한 주동안 매일 하나의 기업을 골라 그야말로 간단하게 훑어봤던 적이 있었다. 기업 재무제표 분석이라는 게 간단하게만 봐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일주일이 7일이니 7개 기업을 주마간산으로 재무제표를 살펴 보고, 나름 미래를 예측해 보고, 재무건전성을 평가하고, CEO의 자본배분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략적으로나마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해 보고 현재 가격과 비교하는 작업도 했었다.

미리 걸러 선정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일주일 간단 분석한 7개 중 2개 정도는 꽤나 매력적인 숫자들이 나와서 향후 제대로 각잡고 사업보고서 몇 년치를 보면서 더 깊은 분석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생각만 하고 보다 깊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책을 쥐면 먼저 읽을 시간이 계산되듯 기업을 보면 얼마의 시간을 투입해야 할지가 계산된다. 내 시간은 소중하다.

워런 버핏 주주서한

(워런 버핏 주주서한 중 : 버핏은 재무상태표의 자산을 항목별로 할인했다)


투자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은 한 달에 200개까지도 살펴본다지만 나같이 직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는 매일 하루에 하나씩만 시간을 쪼개 간단히 살펴봐도 1년에 대략 250~350개 정도밖에 볼 수 없다. 1년에 300개를 본다면 8년 정도면 2,400개를 볼 수 있다. 기업은 생물처럼 다이나믹해서 8년 전에 살펴 본 기업은 8년 뒤엔 완전히 다른 기업일 수도 있다. 속도를 높여 하루에 두 개씩 살펴본다면 1년에 600개로 총 4년 정도가 걸린다. 만일 2,400개가 아니라 1,000개 내외로 목표 기업을 좁히면 하루에 3개씩 1년이면 모두 살펴볼 수 있겠다.

직업이 있는 일반인이 하루에 3개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시스템만 갖추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본인만의 그 시스템과 재무제표를 보는 안목을 갖추는 데만 최소 3~5년이 걸린다. 표준속도는 바보들에게나 해당된다고 하지만 잘못된 시스템을 만들게 되면 살펴보는 작업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차트만 살펴 본다면 하루에 2,000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다.

투자가 어려운 것은 제대로 시스템을 만들고 올바른 방법으로 기업들을 샅샅이 살핀다고 해서 실적이 쏟아 부은 노력에 비례해 좋아지지 않아서(원숭이가 임의로 찍은 종목의 수익률이 더 좋은 시기도 많다) 중간에 좌절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히 끈기와 인내와 맷집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작업은 인내와 용기의 기이한 조합이 반드시 필요한 지적 노가다(이 두 개도 다소 기이한 조합) 작업이다. 또 분석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고(의미 있는 규모의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모을 때 기술과 투자할 때 필요한 기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운과 실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운좋은 원숭이들도 많다. 운좋은 원숭이들을 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의 시험을 해 보면 된다.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1년 전, 첫 주엔 7개 중 2개 발견, 다음 주엔 9개 중 1개 발견, 3주 차엔 열심히 해서 17개를 살펴 2개를 건졌었다. 3주에 30개를 살폈으니 대략 내 속도는 1주에 10개 정도, 1년에 500개 정도다. 물론 그것도 아주 열심히 했을 때 이야기다. 대략 3개월 동안 170개를 살피고 그만 두었었다. 그 중 30개 정도가 괜찮아 보였으니 약 17%로 10개를 뒤집으면 숫자가 괜찮은 기업 1~2개를 만날 수 있었다. 1년 뒤 30개가 조금 넘는 이 기업들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약 10% 정도.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란 말이 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을 말하고, 견문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을 말한다. 시청과 견문은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시청`하면서 `견문`했다고 착각한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데도 `시청`이라도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본 사람이 흘려 본 사람을 이기고, 흘려본 사람은 제대로 본 사람을 앞선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제대로 보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청에 머물 게 아니라 견문을 넓히는 연습이 무던히도 필요한 나날이다.”

재무제표를 간단분석하면 생길 수 있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