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엔 목요일이 비었다
어쩔수가 없다.
buddy's insight & investment
어쩔수가 없다.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변해가네
11월 나무는 이렇구나. 찬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그간 버텨왔던 잎들이 모두 나무와 이별을 한다. 찬 겨울을 대비해서 나무가 스스로 잎들을 떨어뜨린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악역은 바람역할이다. 배경이 되는 11월 하늘은 높고 푸르다.
근처 인천공항으로 발령 난 공무원 친구보러 공항에 다녀 왔다. 해외 나가지 않으면서 공항에 다녀온 건 처음이다..ㅋ 4층에 있는 식당에서 가볍게 점심하고 커피 한 잔 놓고 한껏 수다떨다 왔다.
공항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들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오가는데 목적지가 있어서 그런지 발걸음은 경쾌하다. 무겁고 경쾌하고 묘한 리듬감과 대비를 느꼈다. 가끔 점심 같이 먹자는데 공항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ㅋㅋ 예전 영종도에 괜찮은 곳 많았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새로운 곳들도 많이 생겼을텐데 검색하는 것도 성가시다. 이 정도 나이먹었으면 뭔가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야 될 나인데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나는 그대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공식은 똑같다. 종잣돈 x (1 + 수익률)^기간 이다. 정말 심플한 공식이지만 처음 의미있는 종잣돈을 모으기까지가 정말 어렵다. 3루부터 시작해서 주위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홈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종잣돈 모으는 1루까지 살아나가는 것만해도 벅찬 일이다. 대부분 아웃된다. 종잣돈을 모으면서 동시에 두 번째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정말 많은 공부와 실패 경험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시련이다. 여기서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오된다. 1루에 진루한 대부분이 2루까지 살아가지도 못하고 아웃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일이 아직 남았다. 마지막 “기간”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가. 사람마음이 급등하면 팔고 싶고 급락하면 또 팔고 싶어진다. 미스터 마켓이 거의 매일 찾아와 가격을 제시하며 팔거나 사길 종용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이 세 번째 장기 투자다. 버핏의 가장 큰 장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복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통해 복리 기계를 찾아 낼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장기간 복리가 작동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조급하게 부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요소 중 하나는 시장의 등락을 덤덤히 견뎌내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이길 투자자는 극소수라는 현실을 인식하세요… 단기 투기가 아닌 장기 투자에 집중하세요. 주식 가격의 순간적 정확성보다는 기업의 내재 가치의 영원한 모호성에 집중하세요.”
– 존 보글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주식 가격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속에서 안 볼 자신이 있는가, 평상심을 유지한 채 그대로 있을 수 있는가.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상 시 할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세찬 바람이 부는데도 끝까지 버틴 나뭇잎처럼 살아 남을 수 있는가.
엊그제 뉴스를 보니 ISA 는 나라에서 혜택을 많이 주는 제도지만 가입하는 사람들이 설명을 듣고 나면 주저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3년 의무 가입때문이란다. 아무리 많은 혜택을 주더라도 3년 투자하기도 주저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장기 투자라니..
친구의 머리도 어느 새 희끗희끗해졌다. 친구는 덕담으로 나보고 안본 새 젊어졌다고 했지만 나도 그럴거다. 모두 변해간다.
일요일 오전에 생각나는 게 있어 조금은 긴 글 한편을 써두고는 내일 아침에 올라가도록 예약해뒀다. 휘몰아치는 스팸을 지우면서 주말을 잘 보내고 저녁 무렵이 되니까 한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렸는데 이제 하루가 빈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냥 이빠진 채로 두면 좋을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아쉬움도 든다. 그래서 또 이렇게 흰 백지 앞에 앉아 짧게 주말 단상을 적는다. 아무래도 취미가 블로깅이 될 것 같다..ㅋ
주말에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100페이지 넘게 읽다가 문득 내가 왜 그동안 소설 책을 멀리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모비딕’이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그 섬세한 문학적인 묘사와 비유들이 내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마치 파인다이닝의 잘 차려진 요리같달까. 젊은 시절엔 참 많은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젠 그런 소설 속 재미를 예전처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유튜브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시청각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일까. 아니면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습성때문일까. 느릿느릿한 전개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한 묘사와 비유들이 오히려 책장을 잡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책을 덮고 드라마를 집어 들었다. 요즘 새로 재미를 붙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다. 홈페이지 이름이 ‘의심’이다..ㅋ 이야기도 재밌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영상미도 좋다. 하긴 드라마 소재라 봐야 형사, 변호사, 의사 같이 사건이나 대상이 계속 바뀌는 직업들이 주가 된다. 그래서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주인공인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는 참 드믈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는 법인데 한강 작가의 소설이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가 특별한 사건을 주제로 한다는 내 선입관이 들어가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도 주문을 넣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거 같다는 톡을 받았다. 이젠 책을 쥐면 자동으로 내 시간이 먼저 계산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번 책을 쥐면 끝까지 읽었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내 흥미를 끌지 못하면 중간에 그만 읽는다. 그래서 내겐 끝까지 읽은 책과 중간에 그만 읽은 책으로 나뉜다. 부디 한강 작가의 소설은 끝까지 읽은 책에 들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