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들은 더 이상 현금흐름 할인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멀티플만 쓸 것인가

주말에 재밌는 논문을 한 편 봤다. 내재가치를 계산할 때 미국의 애널리스트들은 더이상 미래 수익을 할인하는 현금흐름 할인법을 사용하지 않고 “예상 EPS x 트레일링 PER” 같은 간단한 멀티플을 활용한다. 논문 초록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우리는 513개 보고서(2003~2022) 샘플을 연구했고, 대부분 애널리스트가 할인율이 아닌 트레일링 P/E(주가수익비율) 비율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회사의 미래 수익의 현재 가치를 계산하는 대신 “작년에 ​​비슷한 수익을 낸 회사는 어떻게 가격이 매겨졌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이 항상 할인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자산 가격 책정 모델의 중심에 할인율을 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 멀티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2019년 홈데포(HD) 목표가격 241달러로 분석한 Chris Horvers(애널리스트로 꽤 유명한 사람인듯)의 예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년 뒤 주가를 예측하는데 2년 뒤 예상 EPS에 과거 3년 평균 PER를 사용하는데 논리를 보면 고든성장모델과 동일하다.

멀티플 사용 예 홈데포


애널리스트들이 보고서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멀티플은 다음과 같다. 표 중에서 All Am이 뭔지 궁금해서 살펴 보니 Institutional Investor magazine’s All-American research team 보고서 갯수를 의미하는데 애널리스트 중 최고의 애널리스트 집합으로 이해하면 된다.

애널리스트가 사용하는 멀티플 종류


멀티플 사용은 과거 평균과 경쟁기업 레벨을 함께 고려한다. 경쟁기업과 비교 비율(74.1%)이 과거 평균 비율(63.5%)보다 높은 이유는 신규 IPO 리포트 비중이 전체의 1/3이나 되기 때문이다.

과거 멀티플 동종업계 멀티플


멀티플도 하나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2개 이상을 함께 사용하기도 하고 최근에 SOTP 사용도 늘고 있다.

사용하는 멀티플 갯수


현금흐름 할인법(DCF)이나 배당 할인 모델(DDM) 같은 내재가치 계산법을 이용하는 애널리스트는 전체 30.2% 밖에 되지 않았고 멀티플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내재가치 계산법만 사용하는 비율은 고작 5.5%뿐이다.

현금흐름할인법 사용 비중


내재가치 계산은 주로 신규 IPO 기업이나 M&A가 있을 때, 그리고 특정 산업(부동산 리츠, 석유 가스)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대부분 공식 보고서는 주로 멀티플을 사용(92.9%)한다. 애널리스트 뿐만 아니라 투자자 대부분이 멀티플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체 멀티플 사용 비중


논문의 결론을 원문 그대로 가져와 보면,

The analysts in textbook models ask themselves: “What is the present value of a company’s expected future earnings stream in today’s dollars?” Real-world analysts ask a different question: “How would a comparable firm have been price last year if it had announced similar earnings?”

교과서적인 모델에서 애널리스트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회사의 미래 예상 수익 흐름의 현재 가치를 오늘 달러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실제 애널리스트들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비슷한 기업이 작년에 비슷한 실적을 발표했다면 주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Price equals expected discounted payoff” is clearly not a sensible assumption to make when modeling sell-side analysts.

셀사이드 애널리스트를 모델링할 때 ‘가격은 예상 할인된 수익과 같다’는 가정은 분명 합리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논문을 읽은 내 생각이다.
워런 버핏은 현금흐름 할인법이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지만 찰리 멍거는 버핏이 현금흐름 할인을 계산하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굳이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는 비즈니스에만 관심가진단 말도 된다. 버핏은 스스로 PER, PBR 같은 멀티플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멍거와 버핏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자 경험이 풍부하고, 주변의 정보를 끊임없이 빨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들은 산업별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사람들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을 외부에 절대로 공개하지 않듯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봐도 교과서에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투자 공부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할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주식 투자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워런 버핏이 깨닫고 후배 투자자들에게 말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 학습하면서 결국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PER는 쉽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PER 역시 깊이 들어가면 마냥 쉽지만은 않은 개념이다. DCF나 RIM이나 DDM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빠르고 쉬운 길은 없으며 가만히 있는데 남이 그냥 떠먹여 주지도 않는다.

주말에 논문을 읽고, 논문에서 언급한 홈데포 주가를 살펴 보니 5년 동안 70% 상승했다.

홈데포 주가


보다시피 애널리스트들의 목표 주가 평균은 403달러다. 논문처럼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는 예상 EPS에 트레일링 PER를 곱해서 계산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 이제 당신의 홈데포 목표 가격은 얼마인가?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할거면 굳이 계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미 당신보다 뛰어난 애널리스트들이 같은 방법으로 다 계산해서 평균까지 구해 놓았다. 주가를 보는 것처럼 계산할 필요없이 클릭해서 숫자만 확인하면 되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숫자를 보고 같은 가격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비교하고 투자한다.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뿐이다.

홈데포 목표가격


다시한번 당신의 홈데포 내재가치가 얼마인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홈데포의 무엇을 보고 판단할 것인가? 홈데포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주식도 마찬가지다. 무슨 정보를 보고 어떤 예측을 하고 무슨 방법으로 내재가치를 계산해서 그 숫자를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매수 매도는 모두 투기다. 계산을 하기 위해선 무언가 선행작업이 필요하다. 홈데포가 도대체 뭘 하는 회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홈데포 투자 전략 지도


사실 복잡해 보이는 내재가치 계산도 학습하고 나면 멀티플처럼 단순한 작업이다. 예전엔 소수의 전문가들만 할 수 있었지만 이젠 엑셀같은 스프레드시트에 계산 로직만 입력하면 바로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이 될까. 결국 자신의 능력 범위에 달렸다. 기업의 경제적 해자를 찾는 것처럼 자신의 경쟁 우위를 찾아야 한다. 자신이 잘 알고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충만한 자신감! 그것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새로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같은 것들 말이다.

내 10초 내재가치 계산으로 홈데포는 몇 가지 숫자에서 기준에 미달이긴 하지만 좋은 기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좋은 가격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으로 계산하고 판단한 후에 매수, 매도하길 바란다. 당신이 투자하고 싶은 대로 투자하면 된다. 누가 추천하거나 유튜브에서 이야기한다고 사지 말고 자신이 공부하고 사고 싶은 것을 매수하고 팔고 싶을 때 매도하면 된다. 팔고 싶지 않으면 계속 가지고 가면 된다. 투자는 그런 방식으로 긴 시간동안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긴 학습과 시행착오의 과정조차 즐거워야 한다.

결국 좋은 건 무엇이고, 싼 건 무엇인가?

저는 기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이 이야기를 가끔 사용합니다. “이봐,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려고 한다고 상상해 봐. 셰르파 무리 중에서 골라야 해. 그리고 목표는 정상에 도달한 다음 살아서 내려오는 거야. 그게 목표야. 결과에 도달하고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거야. 가장 싼 셰르파를 고르고 싶은가, 아니면 가장 좋은 셰르파를 고르고 싶은가?”
– 리치 웡

간단한 투자 지도

추석연휴를 이용해 그간 머리속에 맴돌기만 했던 간단한 투자 지도를 하나 만들었다(보기엔 간단하지만 사실 만든 과정을 보면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S&P500 기업을 입력하면 그 기업의 현재 위치를 아래와 같이 2차원 평면으로 보여주는 지도다. 사실 원의 크기까지 고려하면 3차원에 가까운 3D 지도인 셈이다. 투자란 결국 500개의 유니버스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다. 500개 중에서 PER가 낮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 배당이 높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 조엘 그린블라트처럼 마법공식으로 고를 것인가, 피터린치처럼 PEG가 낮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선택할 것인가.

코스트코 COST 지도

11_11로 표시된 것은 수익률과 성장률이 좋은 기업을 고르는 나만의 방식이다. 11_11_11은 그중에서 다시 한번 필터링을 해서 고른 기업 그룹이다. 현재 13개 기업만 포함된 그룹이다. 내재가치는 역시 내가 계산한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 그룹 20개 묶음이다. 신기하게도 피터린치의 방법과 거의 유사한 결과다. 이렇게 몇 개의 그룹을 지도에 자동으로 표시해 놓으면 관심있는 개별기업의 위치를 그룹과 비교하며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니 고배당 그룹과 S&P500은 거의 같이 붙어있다.

멍거가 좋아하는 코스트코(COST)를 입력했더니 S&P500 평균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진다. 코스트코는 이익률을 낮게 가져가는 전략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테슬라 TSLA 지도

이번에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테슬라 TSLA 를 입력했더니 이런 그림이 나온다. 성장률이 대단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장률이 좋은만큼 역시 비싸다. 일반적으로 지도의 위 칸으로 올라갈수록 풍선의 크기는 커진다. 내가 찾는 것은 수익률과 성장률이 좋으면서도 풍선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저PEG과 내재가치 그룹에서 찾아보면 되겠다.

여행 레스토랑 예약서비스 부킹홀딩스 숫자들이 괜찮아 보여서 한번 함께 입력해봤다. 좋은 위치에 들어갔다. 하나씩 입력해 보니 마치 사격의 표적지처럼 입력값들이 잘 표시된다. 세 개를 같이 모아 보니 테슬라와 코스트코 풍선크기가 거의 같다. 따로 표시는 안했지만 엊그제 아지트 자인이 200주를 팔았다던 BRK-A 말고 우리같은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BRK-B를 넣어봤더니 코스트코 오른쪽 옆에 딱 붙었다. 크기는 MF2와 거의 같다.

히트맵

국내 기업도 한번 넣어봤다. 모르긴 몰라도 국내기업 대부분은 제일 왼쪽 아래 칸에 들어갈 것이다. 좋은 기업으로 소문난, 특히 요즘 6만전자라고 난리도 아닌 삼성전자를 입력했다(나중에 보니 이 그림은 실수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다른 국내기업처럼 성장률이 3%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매력적인 가격대로 내려온 구글도. 이렇게 보니 구글이 좋은 기업인 게 한눈에 보인다. 내가 좋은 기업 그룹으로 꼽은 11_11_11 그룹과 풍선크기도 비슷하면서 거의 붙었다. 그렇다면 엔비디아 NVDA는 어디에 위치할까? 예상대로 오른쪽을 몇 칸 더 만들면서(50% 수익률) 제일 위 칸(40%에 가까운 성장률)이다.

투자지도

이번 추석연휴엔 간단한 투자 지도 만들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놀아야겠다. 블로그 글도 연휴동안엔 쉴 예정이다. 주인이 없는 연휴동안 이 곳을 우연히 찾은 모든 분들도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한가위

S&P500 최근 1년 수익률

S&P500 최근 1년 수익률을 검토하다가 시총 상위 10개 기업(현재 전체 지수의 35%를 차지)의 1년 수익률을 살펴 보니 42%를 넘는다. 인덱스를 사지 않고 상위 10개 기업만 구매하고 싶어지는 숫자다. 배당수익률이 높은 상위 10개를 고르든, PER가 낮은 10개를 고르든, PBR이 낮은 10개를 고르든, 내재가치 대비 할인율이 큰 10개를 고르든 어떤 방식으로 주식을 선별하는 것보다 수익률이 높았을 것이다. 물론 이건 사후편향이 들어간 결과다. 이 결과만 보고 미래에도 시총 상위 10개를 구매하면 목표수익률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S&P500 PER 28 수준인데 이것 역시 뜯어 보면 시총 상위 10개 평균 PER 48, 상위 20개 평균 PER 39, 상위 30개 평균 PER 42, 그리고 시총 하위 470개 평균 PER 20.38이다. 흔히 매그니피센트7으로 불리는 상위 7개 기업의 실적은 나머지를 압도한다. 과거 거품처럼 주가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지금은 좋은 실적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

매그니피센트7

AQR의 클리프 애스니스가 최근 발표한 논문을 보면 PBR 상위 30%를 하위 30%로 나눈 비율이 과거 3~6 밴드를 벗어난 8 수준인데 이는 과거 2000년 닷컴버블이후 처음이다. 싼 주식에 비해 비싼 주식들이 더 비싸지고 있다.

애스니스의 가설대로 인덱스펀드의 증가때문인지, 오랜기간 낮은 이자율때문인지, 또는 기술과 SNS의 발달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I’m far more certain that social media, the overconfidence that come when people think all the world’s data is at their fingertips, and gamified, fake-free, instant, 24/7 trading has done so in a significant way.”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도 대형주의 이런 엄청난 상승세가 계속될 수 있을까? 모멘텀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달리는 말에 올라탈 것이고 순환론에 익숙한 가치투자자라면 주저할 것이다. 그레이엄은 말년에 주식을 선별해서 투자하는 것보다 일정 필터를 적용해서 그룹으로 구매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테스트해 본 결과 저PER 주식을 그룹으로 구매하는 것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부채비율과 유동비율 단 2개의 필터만 적용해서 500개 중에 저PER 10개를 골라봤더니 10개 평균 PER 9.46 정도 수준1이다. 평균 EV/FCF는 15.9 로 올라간다. PER가 낮은 것는 낮은 이유가 있다는 주의인데 무지성으로 나온 저 10개를 그레이엄만 믿고 그룹으로 살 수 있을까? 자꾸만 10개를 돌 뒤집듯이 하나하나 살펴보고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고 싶어진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는 게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1. 아니나다를까 업종만 훑어 보니 철강, 농업운수, 에너지, 금융/보험 업종이 대부분이다. PER가 낮은데는 낮은 이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