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좋아하는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이 나온 걸 얼마전에 알았다.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라는 제목으로 암호화폐 세계를 다룬 논픽션으로 한때 뉴스를 뒤덮었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BF)에 관한 이야기다. 연휴동안 책을 다 읽고 FTX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몇 개의 AI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DeepSeek의 결과가 제일 마음에 들 정도로 정리가 깔끔했다.

고잉인피니트 책표지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암호화폐 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창립자 샘이 금융시장의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m)라는 사실도, 알고 보니 ADHD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예, 아니오로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바로 이 점때문에 트레이딩도 게임처럼 초연할 수 있어 초단타 매매회사인 제인스트리트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엔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다가 파멸을 맞았다.

역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 알라메다 리서치를 먼저 설립해서 암호화폐 트레이딩을 했다가 후에 암호화페 거래소 FTX를 만들었다. 거래소로 들어온 고객들의 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옮겨 전용하다가 손실을 크게 봐서 뱅크런이 왔을 때 줄 돈이 없어 파산한줄 알았는데 나중에 정산해 보니 고객들에게 돌려주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ㅋ 문제는 단기로 들어 온 돈을 다른 암호화폐나 비상장기업 투자(트위터나 AI업체) 같은 중장기로 투자해서 만기일 미스매치가 난 게 컸다. 당시 암호화폐 가격의 급락에 따른 인출요구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지만 몇 가지 안좋은 일이 연속으로 겹치면서 시장에 미스매치가 드러나면서 먹잇감이 됐다.

마이클 루이스는 21년 말 샘과 주식교환을 검토하는 지인의 요청(샘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 달라는)으로 샘을 만나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고 이 책을 썼다. 공교롭게도 FTX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 본 목격자가 됐다. 21년 FTX의 매출은 10억 달러(20년 1억 달러)였는데 마이클 루이스가 처음 만나서 어느 정도의 돈을 제안하면 FTX를 매각하고 돈 버는 것 이외의 일을 할 것이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한 뒤 1,500억 달러라고 답한 뒤, “무한 달러”라고 생각한다고 번복했다. 아마도 이 말때문에 책 제목을 고잉 인피니트로 한 것 같다.

“무한은 그 어떤 경험, 관찰, 지식에 호소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유가 그 대상과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사유 과정이 대상의 실제 진행 과정과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현실에서 사유를 제거할 수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샘은 효율적 이타주의자였기 때문에 무한 달러가 필요한 이유는 지구상의 생명체인 인류가 맞닥뜨릴 수 있는 주된 존재적 위협을 해소할 계획(그것도 40세 이전에)을 세웠기 때문이다. 위협에는 핵전쟁,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전염병,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AI)도 포함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격들(트럼프도 그런 사람으로 판단했고 후에 얼마를 주면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인가 비밀 접촉을 한 것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한다..ㅋ) 산책이 끝날 무렵 마이클 루이스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샘과 주식을 교환해도 된다고 확답한다…여전히 샘이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로.

“언젠가 샘은 한국의 일부 종목이 오르면 정확히 12시간 뒤에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일본의 특정 종목이 덩달아 오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데이터를 찾아보자 과거에도 몇 달 동안 관련 종목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한국 주식이 오를 때 곧바로 일본 주식을 매수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인 스트리트 시스템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주식 가격이 오르고 12시간 뒤에 일본 주식이 상승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샘은 더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ETF가격을 한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마다 이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는 한국과 일본에서 대량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일과를 마치기 전에 한국 주식을 매수한 다음 일본 주식은 도쿄에 주재하는 동료가 일과 중에 주문하도록 맡겼다. 이제 제인 스트리트의 트레이더는 한국 ETF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 독일인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어떤한 비용을 야기했는지 깨닫기 전까지 신나게 일본 ETF를 매수하면 되는 것이다. 샘은 많은 거래의 성공이 다른 트레이더나 매매 알고리즘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다.”

샘은 암호화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다.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는데 이는 제인 스트리트에서 했던 일이다. 다만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7일 내내 돌아가므로 사람이 직접 하기보단 봇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는데 고등학교 수학캠프에서 만났고 같은 MIT 출신 중국계 게리 왕을 영입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게리가 암호화폐 거래소 선물시스템을 혼자 몇 일 만에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눈을 의심했다..ㅋㅋ

“한국에서 비트코인이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될 때 리플 코인은 25퍼센트 이상 더 비쌌다. 리플은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비정상성을 이용할 길을 터줬다. 한국에서 XRP를 매도해 확보한 원화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비트코인을 미국으로 보내 매도해서 달러를 마련한 다음 그 달러로 XRP를 매수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은 한국에서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되었지만 리플 토큰에서 얻은 25퍼센트의 수익으로 충분히 매수할 수 있었다. 거래에서 기대되는 수익은 당초 2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줄어들었지만 제인 스트리트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매매에 5~30초가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한때 샘은 차세대 워런 버핏으로 추앙받았던 사람이었다. 금융계에서 떠오른 신성이자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었지만 책을 보면 조직 경영은 한마디로 엉망 진창이었다. 들어온 돈 233억 3500만 달러, 나간 돈 144억 4300만 달러, 예탁금 30억 달러를 빼면 60억 달러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해킹(10억 달러)도 포함됐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다른 예도 들었습니까?

네. 세계를 위한 선에 대해 고민하는 맥락에서 동전 던지기를 언급했습니다. 뒷면이 나오면 세계가 멸망하지만 앞면이 나오면 선이 두 배로 증가한다면 동전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암호화폐 가격의 급등으로 예치금을 맡긴 사람들은 자신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라는 기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판사는 피고가 지구상의 생명체과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더라도 재앙을 모면할 확률이 미세하게 높을 뿐인 동전 던지기를 기꺼이 할 사람이자 이런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의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향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에 했던 그런 일들을 몇 번이고 반복할 사람으로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물론 모범수로 잘 생활하면 반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퀄리티 투자

얼마 전 품질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 신간안내 메일에서 관심가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퀄리티 투자”로 지은이를 보니 워런버핏 에세이를 쓴 로렌스 커닝햄이 들어있다. 다른 두 사람은 AKO 캐피털 사람들이다. 이 책은 AKO 캐피털이 그동안 해왔던 투자 전략을 분석하고 사례들을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은 기업의 본질적 특성에 주목하며, 강력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 창출 능력, 지속적인 자본 수익률, 그리고 매력적인 성장의 기회를 겸비한 ‘퀄리티 기업’을 분석한다. 또한, 퀄리티의 정의와 성공 요인부터 투자 패턴, 위험 관리, 실행 전략까지 퀄리티 투자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투자 전략을 바탕으로 투자자들이 성공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AKO 캐피털 수익률

AKO 캐피털은 영국에 있는 투자 회사로 설립자(국가 정보기관 출신)가 2020년 노르웨이 국부펀드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회사인데 현재 약 22B을 운용하고 있고 최근 수익률은 위와 같다. 호기심이 생겨 현재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기업 숫자들을 내 관점에서 살펴 봤다. 대체로 좋은 데 비싸네?!

AKO 캐피털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내가 좋아하는 투자 전략 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10×10박스를 벗어나 있는 것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투자 철학처럼 퀄리티 기업을 목표로 하는 게 지도에도 보인다.

AKO 캐피털 포트폴리오 투자 전략 지도

책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기업 사례들을 시간나면 하나씩 분석해 보고 싶지만 요즘 내겐 그럴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 많은 분들이 알아서들 하시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다…책에서 다양한 성장 동력의 예로 지역 확장 전략을 사용하는 유니레버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투자 전략 지도만 살펴 봤는데 10×10 박스 안에서 성장을 하고 있다.

유니레버 투자 전략 지도

퀄리티 투자가 맞나 싶어 바로 다음에 있는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예로 든 무형의 아름다움을 제공한다는 로레알 투자 전략 지도를 살펴 봤다. 10×10 박스를 뚫고 나오는 좋은 움직임이다.

로레알 투자 전략 지도

우호적인 중개자 사례로 얘기하는 게버릿(수조 및 피팅을 포함한 화장실 설치 기술 및 수세 시스템, 건물 배수 및 공급 시스템으로 구성된 배관 시스템)의 투자 전략 지도도 봤다.

게버릿 투자 전략 지도

책을 읽으면서 나처럼 이렇게 사례로 제시된 기업을 함께 찾아 보면서 읽으면 훨씬 나은 독서가 되겠지만 노파심에 추가하면 우리나라엔 훌륭한 퀄리티 기업을 찾기가 아주 힘들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책은 이렇게 생겼다. VIP자산운용 최준철 대표 추천(내가 직접 운용하는 대표 펀드의 이름이 왜 ‘하이퀄리티 밸류’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이 책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유형과 이와 연관된 종목 사례를 접하고 나면 성장주 투자와 퀄리티 투자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이니 책 내용이야 믿을만 하지 않을까.

퀄리티 투자

“우리가 보기에 어떤 기업이 퀄리티 기업임을 시사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강력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 창출 능력, 둘째, 높은 수준의 지속적인 자본 수익률, 셋째, 매력적인 성장의 기회다. 이 재무적 특징들은 하나하나가 이미 매력적인 요소지만, 이들이 한데 합쳐졌을 때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간만에 쓰는 글을 아직 읽지도 않은 새로 나온 책 소개로..ㅋ

댄 애리얼리 새 책 미스빌리프

신간을 뒤적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 댄 애리얼리가 이번에 새로 책을 낸 “미스빌리프”,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로 전작인 “상식 밖의 경제학”과 “부의 감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EBS 위대한 수업 강의에서 댄 애리얼리 교수의 얼굴을 직접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남는다. 나중에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한번 더 놀랐다.

미스빌리프

고등학교 3학년 때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피부 70%가 불에 타 지옥같은 3년의 입원 생활을 겪고 난 후 자신이 직접 경험한,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치료 과정을 겪는 환자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다. 환자나 의료진이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어떤 패턴을 가졌는지 분석해서 나온 책이 “상식 밖의 경제학”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 비합리성에 예측 가능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정리했다.

얼마 전 코로나 팬데믹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온라인에서 누군가 악의적으로 짜깁기하고 편집한 영상이 퍼지면서 자기가 코로나 팬데믹 음모론의 중심 인물이 된 걸 지인을 통해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별일 아닌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올바르게 해명하면 음모론이 풀릴 줄 알았지만 상황은 댄 애리얼리 교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만나보니 애리얼리 교수를 지상 최고의 악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은 극히 평범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쉽게 믿게 된 걸까? 왜 사람들은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고 스스로 가짜뉴스를 퍼트릴까?

댄 애리얼리 교수는 학자답게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의 원인을 찾아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믿게 되는 이유를 조사해서 역시 책으로 정리했다. 쉽게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을 감정적 인지적 성격적 사회적 요소로 분석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자기가 실제로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내 인생에서 겪은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는 운전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나는 이틀 동안 운전 연수를 받았고, 연수가 끝난 뒤에 운전 능력에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다.그런데 딱 두 주 뒤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는 순전히 과신 탓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식이나 기술 수준이 아니라 인지된 지식이나 기술 수준을 토대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반드시 위험한 간극, 즉 주의하지 않으면 빠지고 마는 차이가 발생한다.”
– 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그리고 어제 팟캐스트로 접한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과 라디오로 접한 쑨중싱의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 그리고 일요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접한 개봉 예정영화 “원정빌라” 각각 다른 매체를 통해 거의 동시에 내게 다가온 비슷한 주제로 연결된 3권의 책과 1편의 영화. 삶엔 어떤 리듬이 있다. 틀림없이.

영화 원정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