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가치 계산기 추가

분석가의 역할은 주식을 채권처럼 바꾸는 것

블로그에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애초에 인터넷에 공개하려고 했다가 정보들이 너무 많아져서(유료인 구루포커스와 비슷할 정도) 포기했던 내재가치 계산기를 정말 핵심적인 기능만으로 방금 공개했다. 블로그 메뉴의 Calculator를 누르면 바로갈 수 있다. 90%의 투기자들에겐 아무 필요도 없는 기능이고 5~10%의 투자자들에겐 가끔씩 싸다 비싸다를 참고할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끔씩 올리는 10초 내재가치 계산기의 로직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기업분석 전에 사용해 본다면 나처럼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버전은 구루포커스와 거의 유사하다. 내가 먼저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고 나중에 구루포커스 DCF 계산기를 알게 됐는데 내가 만든 것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었다. 내 버전도 국내외 기업명만 입력하면 입력 변수가 자동으로 들어가도록 세팅되어 있다. 거기서 변수를 사용자가 직접 변경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구루포커스도 같은 방식..^^ 오늘 블로그에 공개한 계산기는 사용자가 참고자료 없이 직접 변수들을 알아서 입력해야 하는 기본 버전으로 UI도 거의 손대지 않은 거친 버전이라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충분히 참고할 수준은 되니 한번씩 사용해 보시길~

계산하는 뇌

“내재가치란 여러분이 미래에 대해 모두 알고 있고, 지금부터 심판의 날까지 기업이 여러분에게 줄 현금을 모두 예측할 수 있다면 적절한 할인율에 반대되는 숫자를 말합니다. 이 숫자가 바로 기업의 내재가치, 즉 지금 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하는 유일한 이유는 나중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죠? 그것이 바로 투자의 목적입니다.

이제 채권을 보면 미국 국채를 보면 무엇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매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채권에 바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자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나와 있습니다. 원금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채권의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이자율이 변하면 내일 바뀔 수 있지만 현금 흐름은 채권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 현금 흐름은 주권에 인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비즈니스에 대한 지분을 나타내는 주권을 채권으로 바꾸어, ‘앞으로 이 주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워런 버핏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좋아하는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이 나온 걸 얼마전에 알았다. 고잉 인피니트 GOING INFINITE 라는 제목으로 암호화폐 세계를 다룬 논픽션으로 한때 뉴스를 뒤덮었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BF)에 관한 이야기다. 연휴동안 책을 다 읽고 FTX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몇 개의 AI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DeepSeek의 결과가 제일 마음에 들 정도로 정리가 깔끔했다.

고잉인피니트 책표지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암호화폐 세계를 슬쩍 엿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창립자 샘이 금융시장의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효율적 이타주의자(Effective altruism)라는 사실도, 알고 보니 ADHD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예, 아니오로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바로 이 점때문에 트레이딩도 게임처럼 초연할 수 있어 초단타 매매회사인 제인스트리트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엔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다가 파멸을 맞았다.

역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자신의 직업을 살려 알라메다 리서치를 먼저 설립해서 암호화폐 트레이딩을 했다가 후에 암호화페 거래소 FTX를 만들었다. 거래소로 들어온 고객들의 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옮겨 전용하다가 손실을 크게 봐서 뱅크런이 왔을 때 줄 돈이 없어 파산한줄 알았는데 나중에 정산해 보니 고객들에게 돌려주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ㅋ 문제는 단기로 들어 온 돈을 다른 암호화폐나 비상장기업 투자(트위터나 AI업체) 같은 중장기로 투자해서 만기일 미스매치가 난 게 컸다. 당시 암호화폐 가격의 급락에 따른 인출요구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지만 몇 가지 안좋은 일이 연속으로 겹치면서 시장에 미스매치가 드러나면서 먹잇감이 됐다.

마이클 루이스는 21년 말 샘과 주식교환을 검토하는 지인의 요청(샘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 달라는)으로 샘을 만나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고 이 책을 썼다. 공교롭게도 FTX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 본 목격자가 됐다. 21년 FTX의 매출은 10억 달러(20년 1억 달러)였는데 마이클 루이스가 처음 만나서 어느 정도의 돈을 제안하면 FTX를 매각하고 돈 버는 것 이외의 일을 할 것이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한 뒤 1,500억 달러라고 답한 뒤, “무한 달러”라고 생각한다고 번복했다. 아마도 이 말때문에 책 제목을 고잉 인피니트로 한 것 같다.

“무한은 그 어떤 경험, 관찰, 지식에 호소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유가 그 대상과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사유 과정이 대상의 실제 진행 과정과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현실에서 사유를 제거할 수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샘은 효율적 이타주의자였기 때문에 무한 달러가 필요한 이유는 지구상의 생명체인 인류가 맞닥뜨릴 수 있는 주된 존재적 위협을 해소할 계획(그것도 40세 이전에)을 세웠기 때문이다. 위협에는 핵전쟁,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전염병,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AI)도 포함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격들(트럼프도 그런 사람으로 판단했고 후에 얼마를 주면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인가 비밀 접촉을 한 것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한다..ㅋ) 산책이 끝날 무렵 마이클 루이스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샘과 주식을 교환해도 된다고 확답한다…여전히 샘이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로.

“언젠가 샘은 한국의 일부 종목이 오르면 정확히 12시간 뒤에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일본의 특정 종목이 덩달아 오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데이터를 찾아보자 과거에도 몇 달 동안 관련 종목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한국 주식이 오를 때 곧바로 일본 주식을 매수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인 스트리트 시스템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주식 가격이 오르고 12시간 뒤에 일본 주식이 상승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샘은 더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ETF가격을 한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며칠마다 이 독일 은행의 트레이더는 한국과 일본에서 대량 매수 주문을 넣었다. 일과를 마치기 전에 한국 주식을 매수한 다음 일본 주식은 도쿄에 주재하는 동료가 일과 중에 주문하도록 맡겼다. 이제 제인 스트리트의 트레이더는 한국 ETF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 독일인이 사망하거나 은퇴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어떤한 비용을 야기했는지 깨닫기 전까지 신나게 일본 ETF를 매수하면 되는 것이다. 샘은 많은 거래의 성공이 다른 트레이더나 매매 알고리즘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다.”

샘은 암호화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다.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는데 이는 제인 스트리트에서 했던 일이다. 다만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7일 내내 돌아가므로 사람이 직접 하기보단 봇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는데 고등학교 수학캠프에서 만났고 같은 MIT 출신 중국계 게리 왕을 영입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게리가 암호화폐 거래소 선물시스템을 혼자 몇 일 만에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눈을 의심했다..ㅋㅋ

“한국에서 비트코인이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될 때 리플 코인은 25퍼센트 이상 더 비쌌다. 리플은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비정상성을 이용할 길을 터줬다. 한국에서 XRP를 매도해 확보한 원화로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비트코인을 미국으로 보내 매도해서 달러를 마련한 다음 그 달러로 XRP를 매수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은 한국에서 미국보다 20퍼센트 더 비싸게 거래되었지만 리플 토큰에서 얻은 25퍼센트의 수익으로 충분히 매수할 수 있었다. 거래에서 기대되는 수익은 당초 2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줄어들었지만 제인 스트리트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매매에 5~30초가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한때 샘은 차세대 워런 버핏으로 추앙받았던 사람이었다. 금융계에서 떠오른 신성이자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었지만 책을 보면 조직 경영은 한마디로 엉망 진창이었다. 들어온 돈 233억 3500만 달러, 나간 돈 144억 4300만 달러, 예탁금 30억 달러를 빼면 60억 달러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해킹(10억 달러)도 포함됐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다른 예도 들었습니까?

네. 세계를 위한 선에 대해 고민하는 맥락에서 동전 던지기를 언급했습니다. 뒷면이 나오면 세계가 멸망하지만 앞면이 나오면 선이 두 배로 증가한다면 동전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암호화폐 가격의 급등으로 예치금을 맡긴 사람들은 자신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았을 것이라는 기사들도 많다. 그럼에도 판사는 피고가 지구상의 생명체과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더라도 재앙을 모면할 확률이 미세하게 높을 뿐인 동전 던지기를 기꺼이 할 사람이자 이런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의 본성이라고 판단하고, 향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에 했던 그런 일들을 몇 번이고 반복할 사람으로 가석방 없는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물론 모범수로 잘 생활하면 반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양날의 검

SNS에 잡힌 인질 하나 또 구출

“2022년 11월에 있었던 송년회때 대화를 하다가 생긴 아이디어를 계기로 해외주식 재무제표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일주일만에 만들었다. 데이터가 문제일 뿐, 분석방법이야 국내주식이나 해외주식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능했다.

그리고 2023년 중반쯤 벤저민 그레이엄을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공부하면서 새롭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의 머릿속 10초 분석을 생각하면서 초간단 내재가치 계산기를 하나 만들었다. 그레이엄이 쓴 모든 책을 다시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은 꽤 길었지만 만들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애시당초 이걸 만들려고 시작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쥔 건 계산기(또는 체중계)가 됐다.

초간단계산기이므로 그야말로 초간단했었는데 현재(24년 1월) 버전 5까지 오며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추가되면서 처음 컨셉인 초간단은 사라지고 온갖 정보들이 덕지 덕지 붙은 복잡한 계산기가 돼 버렸다. 만들고나서 처음엔 간단한 계산기니까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해 놓을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런 저런 정보들(다른 곳에서 가져온 정보들도 있다)이 추가되면서 복잡해지고나니 그냥 조용히 나만 사용하자로 바뀌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사실이다. 고립된 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 일어나며 감소하지 않는다. 질서는 무질서로 바뀌기 마련이다. 다시 버전 1로 되돌리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보고싶은 정보에 대한 갈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비가역적이다. 경제학 용어로 비탄력적이라고 할까..ㅋ 이젠 간단히 10초만에 기업의 개요를 확인하고 기초체력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간단한 허들을 만든 셈이다. 작년에 V1.0일 때 기본 아이디어를 살짝 공개하긴 했었다~”

딱 1년 전 SNS에 남긴 글이다. 그리고 다음은 댓글로 남겨 둔 글.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 사업에 대해서 즉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알지 못한다면 한 달을 주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 워런 버핏

“버핏은 기업 매도를 위한 전화를 받는 순간 기업의 질적 측면을 즉시 이해한다며, 지금까지 매수한 기업들을 분석하는 데 기껏해야 5~10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제가 살펴보고 있는 기업에 대해 찰리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그는 처음 보는 기업인데도, 거의 10초 안에 끝냅니다. 머릿속에서 그렇게 빨리 처리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제가 몇 주 동안 살펴보고 있던 기업이었는데, 그는 바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 모니시 파브라이

“배런스 기사를 읽은 후, 주식에 대한 멍거의 실사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참 아이러니인게 난 누구처럼 탭댄스를 추며 출근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업 재무제표 하나하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어 10년 넘은 스터디도 그만 두고 직접투자도 거의 안하고 맡겼는데 정작 남는 시간에 재무제표 분석 시스템을 만들었다..ㅋㅋㅋ 물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자동화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라고 본다. 돈은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버틀러나 스톡워치 같은 국내 사이트들이 잘 되길 바란다.”

구루포커스의 DCF계산기(유료고객만 4만명이 넘는다)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유사해서 놀랐던 감상도 댓글에 적어놨었는데 바로 엊그제 그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내재가치 계산기를 제공하는 미국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료도 거부감없이 잘 받아들여서 그런지 이런 종류의 분석 서비스는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이다.

검을 든 버핏

추가로 작년 추석즈음엔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로 투자 전략 지도를 만들었다. 좋은 기업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계다. 이로써 좋은 가격인지 판단하는 내재가치 계산기와 함께 양날의 검을 가지게 됐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