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블로그를 대하는 나의 질문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 AI가 생각하지 못하는 시나리오가 뭔지를 고민한다는 걸 들었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AI가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까 매일밤 고민하고 있다” AI 시대에는 좋은 질문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블로그를 대하는 나의 질문은 무엇일까를 종종 생각해 본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제목과 내용으로 트래픽을 끌어 모아 광고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가 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가 질문이 될 것이다. AI에게 자극적인 제목으로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고 잘 먹히는 키워드를 뽑아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아예 그런 글을 작성해 달라고 자동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SNS 활동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무작정 AI에게 맡길 순 없었다. 완전히 오픈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비교적 가감없이 남겨두려 노력했다. 물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보단 나 스스로를 위해서다. 내 글의 제 1 독자는 나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효과를 누구보다 내가 느꼈고, 기록해둔 글의 힘을 스스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오늘 저 멀리 영국의 한 블로거가 쓴 글을 읽었는데 자신은 트래픽이 제일 많은 글을 따지기 보단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꾼 글이 있는가’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난 나의 생각을 남기기에도 바쁜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이 경쟁하면 누군가는 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혼자만 있는 곳으로 가세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자신과 함께 레이스를 펼치세요.”
– 피터 틸

이 곳은 남과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 혼자만 있는 곳이다.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한다. 남을 의식하거나 남과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휴식의 장이자 생각의 안식처다. 내 글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면 기분은 좋겠지만 바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뭐 어쩔건가. 내 생각을 엿보고 나를 비판한다면 그것도 또 어쩔건가. 그러려니 해야겠지..ㅋ 세상은 다양하고 무상하고 불인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AI가 뭔가 대단하고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버핏이 투자에는 세계 최고지만 다른 분야에는 젬병인 것처럼 내가 경험한 AI도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격차는 많이 줄어들겠지만 봉준호 감독이 추구하는 것처럼 미래에도 AI가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은 할 수 있을 것이다. AI가 내 블로그 전체를 읽고 내 문체와 비슷한 글을 양산할 수는 있겠지만 내 오리지널한 생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블로그에 AI가 쓰지 못할 글을 쓸 생각도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만한 글을 쓸 생각도 없다. 엊그제 잡은 책(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 한 부분에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1이 있어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이 해결되면 아마도 정리된 생각을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도 나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만일 글로 써둔다면(요즘 내 상태로는 글을 남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비슷한 고민을 한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아하” 소리 칠 수도 있을거다. 내 글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진 못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더할 수는 있겠다. 아니면 전혀 의문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새로운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처럼 후다닥 쓰는 글도 오랜만이다. 이게 내 스타일이다. 오타도 있고 SEO에 맞지 않고 그림도 없어 검색엔진에게 낮은 점수를 받는 글. 그런 글들이 켜켜이 쌓여 역설적으로 사람냄새 나는 곳이 바로 내 블로그다. 그게 바로 AI가 결코 대체하지 못하는 곳이다.

  1. 시간을 두고 고민하는 부분은 내가 사용하고 잇는 버핏의 밸류에이션이 결국은 RIM(Residual Income Model)과 거의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핵심은 역시 꾸준하고 예측가능한 ROE다. RIM 도출 식을 봤는데 DDM에 잉여항을 더하고 극한으로 보내는 부분이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조금 헤매고 있다..ㅋ ↩︎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숫자들

몇 번 반복해서 올리지만 내가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숫자들이다. 숫자들을 기록하는 것도 블로그 운영의 묘미라 생각해서 이렇게 가끔씩 내가 보기위해 사진 찍어둔다. 방문자당 보는 페이지수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검색을 통해 들어 온 방문자들은 거의 대부분 그 글 하나만 읽고 빠져 나가지만 재방문자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는다. 지난 1월 한달 동안 지속적으로 4분 이상 유지하던 블로그 체류시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새로운 글이 올라가지 않으니 재방문율은 10% 밑으로 떨어졌다. 모두 다 새로운 글, 그리고 글의 품질과 상관관계가 높은 숫자들이다.

블로그 통계


이 작은 블로그 하나를 운영하는 것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최근엔 내재가치 계산기 하나를 만들어 놓고는 그만 새로 글을 쓸 에너지가 고갈돼 버렸다. 내리막 길이 아닌 이상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듯 블로그란 놈은 새로운 글을 계속 올려야 한다. 예전에 이 블로그가 그랬듯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고 방치된 블로그는 죽은 블로그다. SNS를 떠날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이 곳은 독자와의 상호작용은 거의 기대할 수 없이 그냥 인터넷이라는 허공에 소리치는 것과 같아서 운영자가 홀로 서지 않으면 블로그는 계속 유지할 수 없다.

물론 사업하듯 AI를 이용(아무리 사람 손을 탔다 해도 AI가 쓴 글은 티가 난다)해 하루에도 몇 십 건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엄청난 광고 수익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활발하게 독자와 소통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분야에는 그런 아웃라이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예외적인 상황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내 스타일은 그런 방법들을 모두 안다해도 안한다는 쪽이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하루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며 단타로 수 억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안한다. 효율, 비용편익, 기회비용, 로직, 확률과 기대값…이런 것들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블로그 국가별 통계

Contact을 통해 들어오는 거의 대부분의 메시지는 돈을 써서 광고하라는 글이다. 영어로 써놔서 그런지 대부분 해외 사이트다. 돈을 주면 블로그를 홍보해서 트래픽을 쏴주겠다는 글, SEO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글, 더 좋은 도메인을 구매해 보라는 글, 엊그제는 해외 대출을 해주겠다는 글이 들어오기도 했다. 다들 이 작은 블로그까지 들어와서 홍보하느라 참 열심히 살고 있다. 물론 하루에 1~2건의 해킹 시도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정말 열심히들 산다. 이런 조그만 블로그 해킹해서 뭐가 남는다고..

넘어진 자전거

아직까진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비용보다 편익이 크기 때문에 이리 주말에도 들어와서 글을 남긴다. 이게 뒤집히는 순간이 오면 아마 그때는 또 넘어진 자전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넘어지면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숫자들도 추락할 것이다. 늦은 숫자보다 빠른 숫자 이면을 미리 볼 수 있어야 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미국 시장이 비싼 이유

토드 콤스가 말한 “할인율 10%에서 PER 26이 되려면 성장률이 15%가 되어야 한다.”의 의미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한창 밸류에이션 공부할 때 만들었던 그림인데 이 정도만 공유해도 전체 그림의 내용을 대충은 알아볼 듯. 빨간선 4개, 주황 점선 2개, 그리고 파란선 2개.

밸류에이션 그림

현재 미국 S&P500 PER 30 수준이고 포워드PER 22 수준이다. PER 22는 토드 콤스의 계산대로라면 성장률이 대략 12%가 되어야 한다. S&P500의 최근 5년 성장률이 대략 8.6% 내외 수준이고 10년으로 길게 놓고 보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여전히 미국시장은 AI 같은 테마로 현재 고평가이긴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IT 열풍이 불 때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밸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시장의 현재 밸류가 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S&P500 PER

그레이엄 시대에는 연평균 7% 이상 성장하는 기업들을 성장주로 봤었다. 주말에 S&P500 가운데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기업의 수를 세어 봤더니 거의 50%에 육박했다. 5년 성장 평균이 8.6%니 일일이 세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그레이엄이 성장주라고 부를 기업이 거의 반 이상이다. 투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 가치 투자 3.0을 알아야 하는 이유, 필립 피셔의 책을 다시 한번 읽을 이유다.

“저는 작은 수익을 많이 벌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아주 큰 수익을 원합니다.”
– 필립 피셔

필립 피셔의 15가지 질문 가운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도 있다.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장기적인가?” 이는 내재가치 계산기에서 “당신의 시간지평은 몇 년인가?” 와 같은 말이다. 내 어림 계산에 의하면 첫 문단에서 토드 콤스의 시간지평은 최소 7~10년이다. 버핏의 시간지평도 거의 비슷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오랫동안 소유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
“We find doing nothing the most difficult task of all.”
– 워런 버핏

“기다림은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연된 보상 유전자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The first rule of compounding is to never interrupt it unnecessarily”
– 찰리 멍거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좋은 기업을 고르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복리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도록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목에는 약간의 지능이 필요하지만 인내에는 어마어마한 기질이 필요하다. 지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기질은 귀하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없는 기질을 활용하기 보단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능을 활용해서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가르쳤다.

“어떤 회사를 사야 할지 분석하는 데 천재가 될 수도 있지만,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인내심과 용기가 없다면 평범한 투자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좋은 투자자와 나쁜 투자자를 가르는 것은 항상 두뇌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규율입니다…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장기 투자자이며, 주식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어떤 사람들에게 장기 투자자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손을 들어 보일 것입니다. 요즘은 장기 투자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주식이 폭락할 때 진짜 시험이 옵니다.”
– 피터 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