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어 눈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은 책
학자가 가장 좋아했던 단어 遊, 제대로 놀 줄 알았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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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가 가장 좋아했던 단어 遊, 제대로 놀 줄 알았던 사람
평소 크롬을 주로 쓰는데 문득 자주 사용하지 않던 브라우저를 띄웠더니 이렇게 깜찍하게 날 반긴다. 여름처럼 더웠던 5월의 하루였는데 지금도 22도…기어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었더랬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올 여름은 어떨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앞선다.
오늘 하루는…으로 시작하는 이런 짧은 문구 하나, 사진 하나에 미소를 짓게 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는가 되돌아 본다.
좋아하는 주제를 다루는 해외 블로거의 글을 읽다가 또 한번 미소를 지었다.
“뱀이 주로 한 종류의 도마뱀을 먹으면 그 도마뱀의 생물학에 맞게 저격용 소총처럼 독이 진화합니다. 따라서 복잡성을 위한 복잡성은 진화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간결하고, 잔인하고, 집중적입니다. 다양한 먹이가 넘쳐나는 섬에서 뱀들은 넓게 퍼지지 않고 매우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전문가가 되는 것이 생화학적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마뱀만 먹는다면 새를 죽이는 독소를 만들지 마십시오. 이를 생태학에서는 적응적 간소화라고 부릅니다. 사업에서는 집중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에서는 자신의 우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뱀의 입장에서 일견 최대한 먹이로 활용하고 싶은 다양한 종들을 목표로 삼고, 마주치는 모든 것을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려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춰야 하고 그것이 진화적 생존에 유리하겠다 생각하겠지만…아니다. 자연은 그보다 더 나은 투자 수익률을 원한다. 활용할 수 있는 틈새 시장만 있다면, 자연은 그렇게 한다.
여기서 핵심 아이디어는 모든 전략이 일종의 독과 같다는 것이다. 특정한 비효율성을 악용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종류의 독을 다 소유하려 드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데 무엇보다 자신의 강점(시간 지평, 도메인 전문성, 정보, 기질, 분석적 관점)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독을 자신의 생태적 틈새시장에 맞춰야 한다. 도마뱀을 잡아먹는 투자자라면, 새를 사냥하려 하면 안된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글로 또는 사진으로 누군가를 미소짓게 하는 것도 참 보람된 일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더운 날씨에도 기대했던 신간이 나와 버선발(?)로 교보문고로 달려갔었던 하루. 예전 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라인으로 구매했겠지만 하도 당해서 이젠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 나도 진화했다..ㅋ
추가)
물론 뱀의 독에 대한 저 짧은 이야기에도 많은 빈틈이 있고 반론을 말할 수 있다. 이야기는 논증이나 논변과 달리 그리 치밀하지 않고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그 빈틈들은 상대가 반론을 들고 끼어들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야기가 전하는 핵심은 뒤로 한채 그 빈틈만을 쥐고 흔들면서 이야기가 건네는 통찰을 쓸모없게 만들고, 이를 자랑하는 이들이 참 많다.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앞에서 장자가 부인의 주검을 앞에 두고 질그릇 두드리며 노래 부른 이야기 했지요? 이 모습을 본 혜자(혜시)가 말하죠. “아내의 죽음 앞에서 곡도 하지 않으니 무정하다 할 수 있겠는데, 거기다가 주검 앞에서 질그릇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자 장자가 우주의 원리를 잘 알고 보니 아내의 죽음도 우주가 움직이는 한 모습일 뿐이라서 울지 않았다고 말하죠.
논증에 빠진 보통 사람들은 이제 갈라져서 말들을 시작합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 우는 것이 바른 태도냐,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바른 태도냐. 두 태도 가운데 어느 쪽을 취해야 더 정의로운지를 놓고 다투다 결국에는 죽어라 싸우게 됩니다. 우는 것을 바른 태도라고 믿는 사람은 노래 부르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믿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 삶의 실력, 장자
대선 토론을 보다가 그만 두면서 맴돌았던 생각. 우리 사회는 이야기의 빈틈을 환대할 겸손과 똘레랑스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타임라인을 보니 작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8월부터 열심히 쓰다가 10월에는 모든 날을 글로 채우기도 했다. 소소한 목표를 달성하곤 다시 속도를 서서히 줄여 지난 4월엔 1주에 글 하나를 쓰는 정도로 템포를 늦췄다. 1주에 글 하나면 이번 달엔 벌써 목표치를 다 썼다..ㅋ 그리고 이 글이 올라가면 드디어 글 300개를 채운다. 처음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거리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목표치는 달성한 셈이다.
최근에 장자를 다시 읽고나서 이야기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글보다 이야기가 이야기보다 시가 시보다 음악이 음악보다 춤이…그래서 AI에게 행복이란 주제로 장자의 우화같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달라고 졸랐다. 내가 평소 AI를 데리고 노는 방법중 하나다. AI가 건네줄 대충의 줄거리는 짐작됐지만 짐짓 처음 듣는 이야기인척 격려를 했었다. 3가지 종류의 무료AI를 이용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옛날에 한 젊은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밤이 찾아오고, 길을 찾으려 애썼으나 점점 더 어두워질 뿐이었다. 두려움에 떨며 걷던 중, 한 빛나는 나비가 그의 앞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생각했다. “이 나비를 따라가면 숲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
나비는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젊은이는 그 뒤를 쫓았다. 그런데 어느새 길을 찾기는커녕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가 있었다. 지쳐 쓰러질 듯할 때, 바람이 불어와 그의 뺨을 스쳤다.
그 순간, 젊은이는 나비를 쫓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바람은 그의 땀을 식혀주었고, 나뭇잎들의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람을 느끼며 가만히 있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자 어느새 어둠 속에서도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달빛이 보였고, 길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젊은이는 다시 나비를 쫓지 않고, 바람을 느끼며 자신의 걸음으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느 마을에 화려한 등불을 자랑하는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의 등불은 밤하늘을 비출 정도로 밝았지만, 그는 항상 더 큰 불빛을 원해 근심에 잠겼습니다.
한편, 마을 외곽의 초라한 집에 사는 노인은 어두운 밤이면 손에 반딧불 한 마리를 놓아두었습니다. 부자는 비웃었죠. “그 미약한 빛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노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빛은 눈이 아닌 마음을 비추는 법이네. 내 반딧불은 내 책 한 페이지, 차 한 잔의 따뜻함을 지켜주네.”
얼마 후 마을에 큰 폭풍이 닥쳐 부자의 등불은 모두 꺼졌지만, 노인은 반딧불을 손바닥에 감추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옛날 옛적, 강과 산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에 ‘진(眞)’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진은 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외부의 인정을 갈구했고, 성공만이 진정한 행복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으고, 명예를 얻기 위해 밤낮으로 애썼습니다.
진은 마침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고, 높은 관직에도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고, 그의 집은 날마다 손님으로 북적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진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비어 있는 듯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자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매 순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피로감은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는 성공이라는 껍데기 속에 갇혀 숨 쉬기조차 어려운 듯했습니다.
어느 날, 진은 너무나 지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다가, 문득 어린 시절 뛰놀던 뒷산의 작은 오솔길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마음 편히 피리를 불던 노인을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 다음 날 새벽 인적 없는 숲 속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피리를 불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세상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깊은 평온함과 고요한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진은 노인에게 다가가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어르신, 저는 평생을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재물을 쌓고 명예를 얻었지만, 제 마음은 오히려 더 텅 비어가는 듯합니다.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저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노인은 피리 부는 것을 멈추고 진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들린 값비싼 비단 주머니와 화려한 관복을 잠시 응시하더니, 옆에 놓인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노인은 그 돌멩이를 땅에 대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원을 그렸다가, 점점 더 큰 원을 그렸습니다. 마침내 노인은 진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그대는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만 달아나는 그림자를 쫓았으니, 어찌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그대는 마치 이 원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더 큰 선을 그리려는 자와 같구나. 원은 이미 온전한데도 말이다.”
진은 노인이 그리는 원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이라니요? 저는 그저 제가 가진 것이 부족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돌멩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이 원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라네. 우리는 종종 이 마음을 무엇인가로 채워 넣으려 애쓴다네. 더 많은 재물로, 더 높은 명예로, 더 큰 성공으로. 하지만 잘 보게나. 진정 온전한 원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하다네. 그대가 이 원 안에 억지로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할 때마다, 오히려 이 원은 그대의 짐이 되어 그대를 짓누르지 않았는가? 진정한 행복은 저 밖에 있는 무언가를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이 ‘텅 빈 원’이 본래 그러함을 깨닫고 그것에 기대지 않는 데 있다네.”
진은 노인의 말에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텅 빈 원’… 그것은 비어 있음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외부에 집착하며 정작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노인은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는 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불안과 갈등을 서서히 녹여내렸습니다.
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곧바로 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산 중 많은 부분을 마을의 어려운 이웃과 공동의 사업에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진은 단순히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살려 마을의 갈등을 해결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명예’를 쫓아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의 진심 어린 참여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얻게 했습니다.
진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텅 빈 원’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랐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햇볕을 즐겼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천진난만한 기쁨을 발견했고, 땀 흘려 일한 뒤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제어하려던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곁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은 그가 소유하려 할 때는 결코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지만, 그가 모든 것을 비우고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저절로 그의 삶에 스며들어 온 것입니다. 진은 더 이상 행복을 쫓아가지 않았지만, 행복은 언제나 그의 발걸음을 따라다녔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구글 Gemini가 만들어 준 이야기에 내 의견을 반영해서 한번 수정을 거쳐 나온 이야기다. 3개 모두 마치 장자처럼 그럴듯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게 흥미롭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겨둠으로써 내 행복이 조금 더 커졌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