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접한 재밌는 설정, 삼국지평화

왜 고리타분한 삼국지 이야기일까? 삼국지평화는 또 뭘까? 최근 즐겨 보는 EBS 위대한 수업에서 팡베이천 쓰촨대 교수의 정사 삼국지 강의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 삼국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또 아주 우연한 기회로 ‘삼국지평화’ 이야길 들었다. 찾아서 읽진 않겠지만 삼국지평화는 근래 새로 접한 흥미롭고 재밌는 설정이었다..^^

팡베이천 교수가 유비를 언급하는 강의 도입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도원결의(정사 삼국지에는 없다고 한다. 다만 침대를 같이 썼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있다고)를 맺은지 23년이 지났지만 실패만 거듭하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던 47살 유비가 화장실에 갔다가 일어서질 못하는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髀肉之嘆(비육지탄 : 허벅지 살을 보며 한탄하다) 하는 장면이었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며 근육으로 가득 찼던 허벅지가 살만 쪄있는 걸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기의 부족한 점에 대해 처음으로 각성하게 된다. 바야흐로 유비가 왕조로 레벨업 하게 되는 시작이 된 깨달음이다.

“미친 짓이란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유비, 조조, 손권으로 기억되거나 유비, 관우, 장비 혹은 제갈량으로 기억되는 삼국지에서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의 충격은 최후의 승자가 사마의라는 반전이었는데 근래에 접한 재밌는 설정은 ‘삼국지평화’라는 게 있어 삼국지 인물들의 전생을 초한지 인물들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거다. 삼국지 정사와 구전으로 내려 오는 내용을 나관중이 함께 엮어 삼국지연의를 썼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삼국지평화가 실제로 내려 오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다.

삼국지평화 : 평화가 유행한 시대는 원대초기. 삼국지연의보다도 이전에 쓰인 삼국지 창작물로 당시 만담가였던 강사들의 화본이다. ‘평화’는 우리말로 하면 ‘구어체’ 정도 의미인데,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듯 쓴 역사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 말에 성은 사마, 이름은 모, 자는 중상(仲相)이라는 천재가 익주에 살고 있었다. 사마모는 매우 영리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나, 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던 영제 시절이라 가난한 그는 50살이 되도록 초야에 묻혀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염라대왕이 된다면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불평하는 원사를 써서 태웠는데 옥황상제가 그의 뜻을 알고 하룻밤 동안 임시 염라대왕을 시켰다. 옥황상제는 지옥에 35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송사들이 있는데 사마모가 이것을 공정하게 판결하면 내생에 복을 받고 그러지 못하면 방자하게 입을 놀린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사마모는 자신 있게 송사를 판결해 보겠다고 했고 이에 판관이 네 가지 송사를 내놓았다. 모두 전한 초기의 사건으로 350년 이상 끌어 온 것이었다. 사마모는 문서를 읽고 원고와 피고를 모두 부르고 관련 있는 사람들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판결을 내렸다.”

“책은 후한 말기의 혼란과 십상시의 전횡을 묘사하며 바로 소설로 진입하는 ‘삼국지연의’와 달리 조조·유비·손권의 환생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의 건국 과정에 큰 공을 세우고도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팽월·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해서 한 헌제로 환생한 고조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유방에게서 독립하라고 말하는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군사로 활약한다. 저승의 판결을 내린 사마중상은 사마의로 환생해 진나라 건국의 기초를 놓는다.”

독서하는 제갈량


어릴적 삼국지를 읽을 때부터 워낙 제갈량을 좋아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전쟁에서 돋보이는 장수나 호걸 영웅보다 전략을 세우고 지략으로 승부하는 제갈량에 눈길이 갔다. 팡베이천 교수의 강의를 듣다 보니 제갈량은 27년 동안 준비를 하고 27년 동안 실행을 한 후 54세에 삶을 마감했는데 특히 27년 준비의 대부분은 친구와의 사귐과 무엇보다 주경야독(제갈량은 12년간 농사를 직접 지었다)의 독서, 특히 제갈량의 독특한 독서법은 주로 역사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육지탄 후 각성한 유비가 인재를 찾아 돌아다닐 때 그때 교우를 나눈 스승(사마휘)과 친구(서서)의 천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친구들과의 정보 교류와 독서를 통한 올바른 정세 판단으로 천하삼분지계를 유비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

“유비가 조금 전 양양성에서 채모에게 암살당할 뻔한 일을 털어놓자, 사마휘는 유비에게 계속 그런 수난을 당하는 건 밑에 쓸 만한 인재가 없어서 그렇다고 얘기했는데, 유비는 이에 놀라면서 비록 세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도 관우, 장비, 조운, 간옹, 손건, 미축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여럿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마휘는 이에 대해 관우나 장비, 조운은 분명 만 명의 적군을 능히 당해낼 만한 용맹한 장수들이지만 그들을 제대로 부릴 인재가 없다고 했고, 간옹, 손건, 미축은 시무에는 능하나 군략은 부족한 이들이라 가장 중요한 군사(軍師)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와룡봉추(제갈량과 방통, 제갈량이 정석을 기반으로 한 완벽하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정파같은 전략을 세운다면, 방통은 대담하고 훨씬 유동적인 상황 변화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데 능해 마치 사파와 같은 전략을 많이 세웠다) 같은 인재를 얻어야 하며, 이들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유비는 제갈량을 만난 후 승승장구했고 버핏은 그레이엄을 만난 후 승승장구했다. 제갈량과 멍거의 독서법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미래를 결정하는 데 역사보다 더 나은 교사는 없습니다… 30달러짜리 역사책에는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답이 있습니다.”
– 찰리 멍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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