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 주가순자산비율

PER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했으니 PBR 주가순자산비율에 대해서도 언급해 두어야겠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비율이다. 즉 시가총액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이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돈(주주 돈, 자본)과 타인의 돈(부채)으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것의 합이 자산총계가 된다. PBR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주주 돈의 비율이 된다.

회사가 운영을 잘 해서 이익이 나면 회계상 그 이익은 자본총계에 이익잉여금 항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총계가 증가한다. 따라서 가격의 수준을 가늠할 때 자본총계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회사 전체에 대해 장부가치는 채권자가 아닌 비즈니스 소유자(즉, 주주)에게 귀속되는 ‘영구적’ 자본의 양을 의미하므로 이론적으로는 회사가 매각될 경우 받아야 하는 가치가 된다. 물론 이론적으로다. 현실은 이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투자자들은 자기자본의 장부가치가 시장 가격과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직관적인 지표를 제공하기 때문에 PBR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투자에 응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시가총액 상위에 자리잡고 있는 IT기업이나 유형 자산이 거의 없는 서비스 기업인 경우 PBR의 효용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경제가 자산 집약적 기업에서 지식 집약적 기업으로 전환함에 따라 장부 가치의 관련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S&P500 기업들의 자산 중 약 80% 이상이 유형자산이었지만 지금은 80%이상이 무형자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익의 원천도 점점 더 무형자산에 의존하고 있다.

가치투자를 하는 버핏이 포트폴리오에 제일 큰 비중으로 가지고 있는 애플의 PBR을 조회해 보라. 현재 PBR이 무려 46배를 넘는다. 보통 그레이엄이 버핏에게 가르쳐 준 가치투자에서는 PBR 1배 이하를 좋게 보는데 46배라면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애플은 유형자산이 거의 필요없는 IT기업이자 서비스기업이면서 최근 대규모의 자사주매입 및 소각을 통해 자본총계를 계속 줄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숫자들이 나온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자본이 없어 숫자가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애플 PBR


버핏은 2019년 2월 23일 주주서한에서 버크셔의 장부가치의 연간 변화는 예전과 같은 관련성을 잃은 지표라고 언급하며 더이상 PBR이 버크셔의 기업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It’s now time to abandon that practice.” As if to pile on, Buffett next stated “that the annual change in Berkshire’s book value – which makes its farewell appearance on page 2 – is a metric that has lost the relevance it once had.” 버핏에게 “장부 가치는 미래의 성장과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보수적인 단일 시점의 회사 가치 스냅샷”일 뿐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인 2000년 주주총회에서 장부가치에 대한 주주의 질문에 버핏은 이렇게 답했었다. “The very best businesses, the really wonderful businesses, require no book value. They — and we are — we want to buy businesses, really, that will deliver more and more cash and not need to retain cash, which is what builds up book value over time…(“최고의 비즈니스, 정말 훌륭한 비즈니스는 장부상 가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부 가치가 쌓이는 현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고 점점 더 많은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사려고 합니다…)

Whether it’s The Washington Post or Coca-Cola or Gillette. It’s a factor we ignore. We do look at what a company is able to earn on invested assets and what it can earn on incremental invested assets. But the book value, we do not give a thought to.(워싱턴 포스트든 코카콜라든 질레트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무시하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회사가 투자한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 투자 자산의 증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장부 가치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DY, PER, PBR과 같은 일반척도는 물론 성장률조차 평가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들은 단지 기업의 현금 유출입 규모와 시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뿐입니다. 사실 사업초기에 들어가는 현금보다 이후 창출되는 현금의 현재가치가 작으면 성장은 오히려 가치를 파괴합니다.”
– 워런 버핏

보수적인 장부가치가 특히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다. 물론 PBR의 무용성을 이야기한 버핏은 미래의 성장조차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 그 자체는 가치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성장은 늘어나는 이익을 높은 수익률로 재투자할 수 있을 때에만 투자자에게 이득이 됩니다. 성장에 1달러를 투자했을때 창출되는 장기 시장가치가 1달러를 넘어야 합니다.” 자본을 더 투입시켜 이익을 늘리는 것, 부채를 더 투입시켜 이익을 늘리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성장의 질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버핏이 장부가치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자기자본수익률(ROE), 다시 말해 이익을 장부가치로 나눈 자기자본수익률에 대해 비판하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버핏은 ROE의 지속성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플의 ROE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애플의 PBR이 46배를 넘지만 애플의 5년 평균 ROE는 무려 119%에 이른다. 자사주매입/소각으로 줄어든 자본총계보다 훨씬 더 큰 순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5년 평균 투하자본수익률(ROIC)도 40%를 넘고 있다. 특히 최근 1년은 ROIC가 56%를 넘고 있다. 아래 그림의 러셀3000에 속한 기업 대부분 ROIC 5~15%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돈 버는 기계다. 애플은 향후 몇 년동안이나 이렇게 돈을 잘 벌까? 이렇게 돈 잘버는 기계인 애플의 자기자본을 얼마의 가치로 봐야 적정할까?

러셀3000 ROIC 평균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증권분석 서문에서 인용했듯, “지금은 실패했지만 회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지금은 축하받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높거나 일정하게 유지하던 ROIC도 순식간에 급락할 수 있다. 단순히 재무제표의 숫자만 쳐다봐선 안되는 이유다.

인텔 ROIC


고든의 배당성장모형으로 PBR을 분석해 보면, P/B=ROE*Payout/(R-G)가 된다. ROE가 크면 PBR도 올라가고 성장(G)이 올라가도 PBR이 올라간다. 결국 PBR은 f(ROE,Payout,R,G)가 된다. 단순한 식이 보기엔 좋지만 R < G 이면 제 구실을 못하기도 한다. 한편 PBR = ROE*PER, 즉 ROE/기대수익률(1/PER) 이다. 만약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ROE가 15%라고 가정하고, 대략 8%정도의 무위험수익률+주식위험프리미엄이라고 한다면 이론적으로 대충 PBR 2 이하에서 구매를 고려하는 게 적정하다고 하겠다. 핵심은 ROE다.

“만약 당신은 어떤 사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당신은 그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만약 회사가 장부가치로 5%의 수익을 올린다면, 그리고 향후 장부가액에서 계속 5%의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회사를 장부가치로 사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흥미를 주지 않습니다.”
– 1998년 워런 버핏

“In fact, if anything, we are less likely to look at something that sells at a low relationship to book than something that sells at a high relationship to book, because the chances are we’re looking at a poor business in the first case and a good business in the second case.”
– 워런 버핏

1987년 코카콜라는 장부가의 4배에 거래되고 있었고 ROE는 27%였다. 버핏은 단순히 장부가치를 보지 않고 비즈니스모델을 분석하고 코카콜라가 향후 10년 동안 높은 ROE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보는 ROE게임을 했다. 향후 10년동안 27%의 높은 ROE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설령 장부가의 4배를 지불하고 구매한 후 10년 뒤 장부가격이 되더라도 향후 10년간 10%가 넘는 복리수익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장부가의 2배가 된다면 18%가 넘는 복리수익을 얻게 된다.

코카콜라 1987년 ROE


끝으로 아래 메모는 전략적 가치투자를 쓰신 故 신진오님이 돌아가시기전 입원 중 메모한 글이라고 한다. PBR은 ROE와도 관련이 있지만 밸류에이션 중에서는 사경인 회계사가 사용한다해서 널리 알려진 RIM(잔여이익모델)과 관련이 깊다.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은 이익 개념이다. 즉, ROE > 채권수익률인 영역이 안전마진이 있는 주식이다. ROE < 채권수익률이더라도 Value > Price 면 예외적으로 투자할 만 하다.”
– 신진오

신진오님 RIM 밸류에이션


버핏과 가치투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투자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저PER, 저PBR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가 곧 버핏처럼 비즈니스모델과 ROE에 몰두하게 되는데 곧 우리나라에는 높은 ROE를 유지할 수 있는 고품질의 기업이 몇 개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버핏처럼 향후 10년을 내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레이엄의 투자방식, 즉 초기 버핏의 투자방식을 모색하게 되거나 아니면 버핏의 후계자,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의 가치투자 3.0 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두서없이 써내려가다보니 블로그를 쓰고 제일 긴 글이 됐다. 영양가 없는 글만 쓸데없이 길게 쓴건 아닌가 모르겠다. 버핏은 좋은 기업(멍거의 영향)을 좋은 가격(벤저민 그레이엄의 영향)에 사서 오래 가지고 가는(필립 피셔의 영향) 자신만의 투자 방법을 찾았다. 단순히 그레이엄을 따라 저PBR을 추구하다 가치함정에 빠질 수도 있으니 PBR을 사용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

“PBR 주가순자산비율”의 3개의 생각

  1. 과거의 오늘 좋네~ 1년 전 공을 많이 들여 쓴 글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글.. 뻔 한 PBR 설명 글을 쓰면 됐을 것을. 끌끌

    1. 현금흐름이 탁월한 기업들만 채택가능한 모델 이겠습니다.
      한국처럼 변방에 있어 대외변수에 휘둘리고
      IMF같은 거대한 위기를 한번 맞이해본 나라에서는
      보수적인 경영자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큰 충격을 대비하는 자세도 일정부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아래 기사에 예를 든 것처럼 보잉의 사례도 있구요. 우리나라 주가가 제 평가를 못받는 이유 중 큰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잉의 문제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회사에 쌓여있지 않다는 데 있다. 보잉의 몰락은 작년부터 시작된 영업부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량기업으로 불리면 돈을 잘 벌었던 이전 20여년 동안에 잉태됐다. 연속 흑자행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1997년 말 보잉의 총 부채는 250억달러였다. 이후 21년 동안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8년 말의 총 부채는 1169억달러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기자본은 129억달러에서 4억달러로 줄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연속 흑자를 낸 21년 동안 부채는 4배 넘게 늘었고, 자기자본은 96%나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은 과도한 주주환원에서 비롯됐다. 보잉은 벌어들인 돈을 모두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배당금을 계속 지급했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은 자기자본을 줄인다. 이익만 자사주 매입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빚까지 내면서 자사주를 사서 소각했다.

        보잉은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통적 제조업은 공급과잉에 시달려왔다. 미국의 주가는 얼마 전까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설비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과잉생산이 존재한다면 사업기반을 조금 줄여도 당기순이익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ROE(자기자본이익률=당기순이익/자기자본)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ROE 계산에 사용되는 분모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빚까지 내면서 자사주를 매입했던 것도 경제적으론 합리적 선택이다. 최근과 같은 저금리 환경에서는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율이 기업이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배당수익률보다 낮았다. 보잉은 미국 증시에서도 손꼽히는 배당주였는데,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서 남은 주주들에게는 더 큰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자본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했지만 그 결과는 자기자본의 과도한 축소로 귀결됐다.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에 반하는 행동이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셈이다. 자기자본은 위기 때 기업이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다. 자기자본이라는 버퍼가 취약해진 21년 연속 흑자기업 보잉은 2019년 단 한 해의 손실로 자본잠식기업으로 전락했다. 몰락 한 해 전인 2018년 보잉의 ROE는 985%였다. 자기자본이 너무 작아졌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1000%에 육박하는 ROE가 희극이라면 한 해 만에 부도위기에 내몰린 21년 연속 흑자기업의 추락은 비극이다. 극단의 자본 효율성만 추구하며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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