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앓고 나서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고 두었는데도 곧잘 트래픽이 들어왔다. 그래서 통계를 보니 인기있는 글 중 하나가 기업의 내재가치 계산하기다. 내재가치란 검색어 자체가 워낙 대중성이 없고 인기없는 검색어인지라 트래픽 자체가 크진 않지만 어쨌든 기업의 내재가치 계산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검색으로 조회해서 내 블로그로 들어 온다. 검색이란 게 어떤 방법이 궁금해서 검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특정 방법들에 대해 정리한 글이 인기가 좋다. 물론 내 글은 좀 불친절하지만,
그 글에서 내가 내재가치 계산에 큰 도움을 받은 책 제목까지 적어 놓고 말미에는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내게 어떻게 10초도 안걸려 75만 달러라는 숫자가 나왔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내가 순순히 가르쳐 주겠는가? 당신이라면 이 방법을 유튜브를 찍어서 알려 주겠는가? 전자책을 써서 알려 주겠는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은 어려울 수도 있고, 간단하고 쉬울 수도 있다. 사실 10초만에 DCF를 하는 방법을 안다고 투자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세상엔 자신만 아는 비법들을 가르쳐 주지 못해 안달난,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추천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10초 내재가치 계산기를 만들 수는 없다.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10초만에 내재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이기 때문에 블로그에 거리낌없이 결과를 올릴 수 있다. 만일 내가 각잡고 기업에 대해 많은 시간 분석했다면 내가 계산한 내재가치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10초만에 나왔다고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아니고 오래 분석한다고 결과가 옳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10초 내재가치를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는 기업의 내재가치라는 것을 계산하고 투자하는구나를 예시로 보여주기 위함도 있고 DCF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투자란 게 계산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금흐름 할인법(DCF)로 계산하는 방법이나 엑셀로 DCF 계산하는 양식(이전에 다모다란 교수의 양식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은 책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면 이미 남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자료들이 나온다. 투자하기 전에 그 방법들을 하나 하나 익히고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만들면 된다. 이건 아주 쉽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 만든 방법들을 실제 기업분석에 한번씩 적용해 나가면서 업종별로 수정해서 업그레이드하면 제대로 된 투자자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조금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번 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쉬운 방법을 찾아 남이 만들어준 양식을 덥석 받아서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다보면 곧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 방법들이 통하지 않는 많은 사례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음식점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을 주방장에게 맡겨선 안되고 주인 스스로도 간단한 음식은 만들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주식 투자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전문가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투자자 스스로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기업 분석의 마지막은 결국 밸류에이션이다. 참여하는 투자자의 수만큼 다양한 내재가치 평가법이 나올 수 있고 나는 그저 나에게만 의미있는 나의 계산 결과를 잠깐 블로그에 (내가 기억하기 위해) 공개할 뿐이다. 그러니 성장률이 얼마인지 할인율이 얼마인지 영구성장률이 얼마인지 기간을 얼마로 예상했는지 같은 가정들은 어찌보면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모든 투자는 결국 확률의 문제일 뿐, 누구 계산이 옳고 정확하며 누가 틀렸는지를 판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아도 잃을 수 있고 틀려도 벌 수 있는 세상에는 절대로 계산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의 결정은 숫자를 더하면 이성적인 답이 나오는 스프레드시트에서 내려지지 않습니다. 정량화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렵고 원래 목표에서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인간적 요소가 있습니다.”
– 모건 하우절
DCF가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예 중 하나가 가치 투자 3.0 기업들이다. 요즘은 블로그에 가치 투자 3.0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최근에 가치 투자 2.0과 가치 투자 3.0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가치 투자 1.0에 해당하는 기업과 가치 투자 2.0에 해당하는 기업의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오래전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을 일들을 몇 가지 했었다. 만일 내가 그것에 대해 책을 쓴다면 남들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내가 한 일에 대해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자세히 쓰겠지만 블로그에 그런 내용을 세세하게 쓸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2.0과 3.0의 차이에 대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고 있지만 굳이 내가 알게된 것들을 이곳에다 공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책을 쓴다해서 자신의 지식을 모두 공개하는 사람도 거의 없긴 하다. 현재는 책을 쓸 생각도 없고.
망치만 들고 못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유료지만 무료보다 못한 콘텐츠들도 많다. 비법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의 비법은 결국 뻔한 이야기거나 망치인 경우가 많았다. 교과서나 요즘은 유튜브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과거 MBA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무슨 대단한 정보인양 포장해서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말 가치있는 비법(그런 게 있다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하기보단 숨기려 할 것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이 영원히 비밀로 유지되듯이 버핏과 멍거 역시 본인들의 정수는 공개하지 않고 두리뭉술하게만 이야기했다. 내재가치에 대한 질문에 버핏은 항상 이솝우화로 답한다..^^ 뻔한 이야기나 시장에 널려 있는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은 투자자 스스로 할 일이다.
이제 음식점을 시작하려거나 초보 음식점 사장이 자신의 고민을 먼저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혹시라도 길을 아는지 친절하게 문의한다면 먼저 그 길을 지나가며 무수한 실수를 한 사람으로서 고민한 결과와 경험을 아는대로 설명할 용의가 있지만 온라인에서 이런 친절을 기대하기는 무리란걸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지금 내겐 그런 에너지조차 별로 없기 때문에 설령 내게 그렇게 묻는다해도 남들처럼 뻔한 답을 짧게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버핏이 말한 이솝우화에 진리가 숨어 있는 것처럼 뻔한 답을 하는 이유가 있고 때로는 뻔한 답에 진짜 답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나만 아는 비밀이란 것도 사실 내가 알면 또 얼마나 알겠는가. 기껏해야 10초 계산기 뿐인걸.
“한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간범위, 목표, 야망 및 위험 허용범위를 갖는다면 모든 것이 계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5% 하락한 후 공황 상태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장기 투자자라면 끔찍한 생각이고 전문 트레이더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당신이 보는 모든 비즈니스 또는 투자 결정이 당신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해야 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 모건 하우절
나보다 훨씬 고수 한 분이 내가 만든 투자 전략 지도 개념이 마음에 들어 그 아이디어를 카피해서 업종에 따라 서로 다른 세 가지 팩터를 가지고 비슷한 지도를 만들어 봤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또 누군가는 내가 만든 5년치 현금흐름표 그림을 바탕으로 10년치 현금흐름표를 만들어 봤다고도 했다. 내가 올리는 다소 불친절한 글이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인사이트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감기에 걸려서도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한다는건 확률값의 조합일뿐 확률은 시시각각 변하고 세상에는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는걸 하나씩 겪게되면서 갈수록 불가지론자가 되고 겸손해지는 과정으로 접어들게 되네요. 투자가 참 어렵습니다. 몸조리 잘하셔서 쾌차하세요!
네 덕분에 이젠 많이 나았습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지만 이번 감기는 독하네요.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결과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기를 종종 겪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