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금매소. 글자 그대로 큰 돈을 주고 웃음을 산다는 말이다. 웃음을 사는데 왜 돈을 쓸까. 그렇게 어리석고 쓸모없는 일에 큰 돈이나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말이다. 비록 중국 역사를 잘 모르지만(사기를 읽은 정도 수준) 계엄사태를 겪고 나서 지인과 통화에서 주고 받은 말중에 생각난 건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해 둔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다.
중국 4대 폭군은 걸주유려(桀紂幽厲)라고 한다. 걸은 하나라를 망하게 한 왕이고 주는 상나라(은나라)를 망친 왕이고, 유는 공자가 그리워했던 봉건제를 만든 주나라(서주)의 마지막 왕이고 여는 유왕의 할아버지로 백성들의 탄핵으로 폐위됐다. 시간상으로는 여가 앞이고 유가 뒤가 된다. 하 은 주 이후에 수도를 낙읍으로 옮겨 동주(東周)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곧 우리가 잘 아는 춘추전국시대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진다.
‘걸주유려’의 걸은 하나라 마지막 임금이고 주는 상나라 주왕이다. 주왕은 처음에는 훌륭한 정치를 펼쳤지만 달기라는 미녀에게 빠져 달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 술로 된 연못과 고기로 이루어진 숲을 만드는데 이를 ‘주지육림’이라 한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나라를 잃은 상나라 사람들은 정치 활동에 제약이 생겨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전념하는데 이를 ‘상나라 사람이 하는 일’ 이라는 의미에서 “상업(商業)”이라고 불렀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 칭했으니 과거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천금매소는 걸주유려중에서 유왕의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포나라 제후가 유왕에게 바친 포사라는 절세미녀에게 빠져 왕후 신씨와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맞이해서 아들 백복을 낳고 태자로 세웠다. 미녀 포사는 좀처럼 웃는 일이 없었는데 유왕은 포사의 환심을 사려고 별짓을 다했다. 포사가 비단을 찢는 소리가 좋다고 하자 큰 돈을 주고 비단을 사들여 포사앞에서 비단을 찢으면서 웃음을 샀지만 이것도 곧 시들해져 더이상 웃지 않았다.
당시 외적의 침입이나 국가에 변이 있을 때 봉화를 올려 제후국들에게 알리는 시스템(지금으로 따지면 계엄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후국은 봉화가 올라가면 즉시 군대를 이끌고 밤을 새워 달려와 중앙군을 도와야 했다. 한번은 잘못 올라간 봉화를 보고 수많은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산에서 보고 포사가 큰 소리로 웃자 유왕은 그후에도 틈만나면 거짓 봉화(여산봉화驪山烽火)를 올려 군대를 불러 모아 포사를 웃게 했다. 그러다 폐위된 왕후의 아버지 신나라 신후와 견웅 오랑캐가 연합해서 진짜로 쳐들어와 화급하게 봉화를 올렸지만 아무도 오지않아 서주는 멸망하게 되니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라를 말아먹게 한 말희, 상나라 달기, 그리고 주나라 포사로 이어진다.
防民之口 甚於防川(방민지구 심어방천)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심하다. 앞서 언급한 유왕의 할아버지인 주나라 려왕은 폭군이었다. 무당을 데려와 점을 쳐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처단했다. 그러자 소공이 려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을 막는 것보다 심한 일로 냇물을 둑으로 막았다가 터지면 난리가 나는 것처럼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으므로 물이 잘 흐르도록 물길을 터주는 것과 같이 백성들이 자유롭게 말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려왕은 이런 충언을 외면했고 그의 말대로 민란이 일어나 탄핵되어 외국으로 쫓겨 나고 그 후 15년간 중국에서 처음으로 공화정치를 하게 된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M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 한강, 빛과 실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보면서 ‘여산봉화’가 떠올랐고 김건희를 보면서 나라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이 생각났다. 국가의 돈과 에너지를 어리석고 쓸모없는 일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천금매소’를 생각했다. 전두환의 12.12를 경험하고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은 모든 사람들의 머릿 속,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들이 지금 산 자를 구했다.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과거를 통해 모두가 알았기 때문에 이처럼 빨리 막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들의 입을 반국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막는다면 탄핵만이 답이다.
이는 과거가 현재에게 이야기해 주는 답이다. 자신만의 망상에 사로잡힌 나르시스트 대통령이 탄핵도 되지 않고 국가 비상사태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상이 파괴되어 여전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이상 시시각각 쏟아지는 속보에 시선을 두지 않고 어서 빨리 온전한 일상으로 회복됐으면 좋겠다.